본문 바로가기

노량진 학원 거쳐야 교사 되는 임용체제 확 바꾸자

중앙선데이 2017.02.26 02:15 520호 14면 지면보기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안 바꾸면 미래 없다
“1교시 시험 문제 보고 당황했어요. ‘2015 개정 교육 과정’의 실질적 구현방안을 쓰라는 건데 예상을 전혀 못했거든요.”

4년 전공 또는 2년간 대학원 거쳐
2급 정교사 자격증 따고 학원으로

직강·인강 듣고 좁은 문 통과해도
경직된 학교 조직과 마주쳐 좌절감
‘교사 된 것 후회’ 20%로 OECD 1위

임용 후 자질 향상 기회 제공하고
융합 인재 기르게 교육과정 바꿔야


2017학년도 서울 공립 중등학교 임용 후보자 선정 경쟁시험(임용고시)에서 최종 합격한 김모(26)씨는 1차 시험 ‘교육학 논술’ 과목이 합격으로 가는 고비였다고 했다. 그는 “교장이 고민해야 할 걸 왜 교사 되려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테스트하려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B임용고시학원의 유명 강사는 기출 문제 설명 강의에서 “전년도(2015학년도)엔 교육학에서 비공식 조직을 묻는 문제를 내고, 이번엔 이따위 문제를 내고 ××이야”라며 욕을 퍼붓기도 했다. 중등(중·고교) 교사 임용고시의 1차 시험은 2013학년도부터 객관식에서 논술·서술식으로 바뀌고, 2차 시험에서 수업 실연이나 면접이 중요시되는 등 시험제도가 바뀌었다. 그렇다고 학원을 거치지 않는 합격자는 거의 없다. 김씨는 “같은 대학 교육학과 동기 60명 중 공립 정교사가 된 사람은 나 혼자인 거 같다”며 “학원 수업은 단순 지식 암기에서 암기된 지식 서술하기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교사가 되려면 대학에서 4년간 전공으로 나뉘어진 학과 교육 또는 교직 과정을 거치거나 2년간 교육대학원을 이수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따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격증을 딴 대부분은 노량진 학원이 제공하는 직강(직접 강의)이나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달려간다. 지난해 12월 중등(중·고교) 교사 임용시험(3889명 모집)에 4만3648명이 지원해 낙방한 3만9759명은 올해 다시 도전하거나 기간제 교사 등의 길로 향했다. 이처럼 저출산 여파로 학생 수가 점차 줄어드는 대신 교원 임용 숫자는 늘지 않으면서 교사 되는 길은 더 험난해졌다. 이에 따라 교사는 대학에서 자격증을 받고 노량진에서 합격증을 받는다는 공식도 점점 확고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몰려오고 있는데도 변화의 무풍지대 중 한 곳이 교원 양성·임용제도다.
 
노량진 고시원 생활 2년차에 들어선 임용고시 재수생 윤모(27·여)씨는 “3월까지 이론 강의에 집중하고 4~7월엔 문풀(문제 풀이), 8~11월엔 모플(모의고사 풀이)로 연간 계획을 짰다”며 “1차 시험을 본 다음엔 학원이 제공하는 수업 시연 강좌를 듣고 스터디 모임을 구성해 2차를 준비한다”고 말했다.
 
올 1월 교육부가 발표한 교원양성기관(사범대 없는 대학의 교육학과) 평가에서 ‘A’ 등급을 받은 대학에서도 졸업생 10명 중 한 명 정도가 임용고시를 통과할 정도로 교사 되기가 쉽지 않다.
 
관련기사
사범대 또는 교육대학원이나 학부 교직 과정은 이수자에게 2급 자격증을 주는 교원양성기관이다. 자격증엔 표시 과목이 적혀 있는데 이 과목은 학문(교과) 분야별로 세분화돼 있다. 새로운 영역의 지식을 가르치거나 과목을 융합하려 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국의 교사는 대학에서 칸막이 교육을 받은 뒤 표시 과목별로 뽑는 임용고시를 통과한 다음 학교에 와서도 자기가 맡은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다.
 
정작 임용고시라는 좁은 문을 통과한 소수도 또 경직된 학교 조직이란 새로운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임용 7년차 경기도 J고교의 김모(42) 교사는 임용고시에서 삼수해 경기도 고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영어과의 높은 경쟁률(20대 1)을 뚫었다. 그는 “학교에 오자마자 1·2학년 정규수업, 보충수업까지 6개 학급을 맡았고 연구부 기획업무도 했는데 이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연차가 높은 교사가 자기 수업만 하고 나머지는 나이 어린 순으로 넘기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강생으로 가득 찬 노량진 학원 강의실 모습. [중앙포토]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강생으로 가득 찬 노량진 학원 강의실 모습. [중앙포토]

그는 임용 후 3년여 뒤 ‘1정 연수’를 받고 2급 정교사에서 1급 정교사가 됐다. 교사로서 승진을 제외하고 자격이 갱신되는 건 이때가 사실상 유일하다. 김 교사는 “아이들과 소통하고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결심이 이 연수 이후 조금씩 무너졌고, 이젠 학교 내 관료적 조직문화에 젖어 버린 거 같다”고 했다. 한국의 교사는 임용 이후 교사 자격을 갱신해야 하는 과정이 별도로 없다. 교장·교감 등 보직 승진을 위한 연수 기회는 있으나 교사가 수업을 개선하려 한다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박영숙 한국교육개발원 본부장은 “교사 임용 후 현직 교원의 전문성 개발에 취약한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의 중학교 교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3년 교수·학습 국제 조사(TALIS·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2013)’에서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응답 비율이 20.1%로 회원국 34개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교사들은 직업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만족도가 높지 않다.
 
이런 가운데 교사들의 자발적인 변신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최필향(47) 인천 부원중 수학교사는 인천 북부 지역 학교 11곳의 교사 15명과 수학교사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싫어하는 수학에 재미를 붙게 해 주기 위해 수학 단원 중 작도와 도형 부분을 학생들의 활동과 체험 위주의 수업으로 바꾸고 지난해 1년 동안 이를 각 학교에서 실현했다. 최 교사는 “인천뿐 아니라 전국에서 요즘 교사들이 주제별·교과별·학년별 교사 연구모임을 꾸려 수업을 바꿔 보려 노력하고 있다”며 “지난해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서울 무학중 과학 담당 손미현(39) 교사도 같은 학교 내 수학·도덕·체육·음악·진로 등 각기 다른 과목 교사들과 함께 ‘세계시민교육’을 주제로 수업안을 만들고 융합수업을 진행했다. 손 교사는 “융합수업을 하면서 다른 과목 선생님의 수업방식을 보고 이걸 내 과목에서 참고할 수 있었다”며 “여러 과목 교사가 협력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체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2015 개정 교육 과정에 따라 교사가 학생을 중심에 두고 수업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움직임에 한몫하고 있다.


김재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은 “이미 외국에서 교사(teacher)는 학생의 멘토(mentor)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조력자)로 불린다”며 “학습협력자나 지원자의 역량을 길러줄 수 있게 대학교육부터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 강홍준 사회선임기자, 강기헌 기자


자문단: 권대봉 고려대 교수(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김세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노동시장), 김진영 건국대 교수(경제학), 김태완 한국미래교육연구원장(전 한국교육개발원장), 김희삼 GIST 교수(기초교육학부), 박준성 교육부 기획담당관, 이민화 KCERN(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혁신),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부 장관),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교육학), 이화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원장(교육과정),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정철영 서울대 교수(산업인력개발),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 한유경 이화여대 교수(교육학) ※가나다순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