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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의 상큼 인터뷰]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의 낭만, 지금이 나의 최전성기

중앙선데이 2017.02.26 00:58 520호 8면 지면보기
[김수정의 상큼 인터뷰]
노래 인생 ‘불혹’ 콘서트 여는 최백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발표 이후 40년
자작 신곡·젊은 뮤지션 컬래버 공연

호흡도 불안정한 내 노랜 좀 엉터리
정통파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수업 중

음악창작소 ‘뮤지스땅스’서 충전
시나리오 완성 ‘미사리’ 영화 만들 것

궂은비 내리는 날 그를 만났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을 홀짝거렸으면 좋으련만, 젊은 음악인들의 열정 호흡과 따뜻한 커피 향기만 대신 마셨다. 부드러운 허스키 음색으로 우리 인생을 노래한 ‘낭만 가객’ 최백호를, 그의 ‘놀이터’에서 만났다. 다음달 11~12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여는 콘서트 ‘불혹’을 앞두고서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지하 238번지, 음악창작소 ‘뮤지스땅스’. 67세의 싱어송라이터는 언제나처럼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맞아요. 그렇죠.” 추임새가 오가는 편안하고 소탈한 인터뷰. 노래와 사람이 참 많이 닮았다.
최백호는 제대 후 평생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다. 그저 “다른 옷은 불편해서”다. 다양한 포즈를 요청하자 “이정재를 만들려 하느냐”며 웃었다. 김경빈 기자

최백호는 제대 후 평생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다. 그저 “다른 옷은 불편해서”다. 다양한 포즈를 요청하자 “이정재를 만들려 하느냐”며 웃었다. 김경빈 기자

 
노래 인생 40년, 꽤 긴 시간이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음반 발매를 기준으로 40년이 된 거다. 돌이켜 보니 대단한 세월이다 싶어 뭔가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콘서트를 열게 됐다. 끝맺음은 아니고 그다음 단계로 나가는 그런 포인트다. 그동안 젊은 친구들이랑 교류하며 많이 배웠는데 이번 공연을 거치면서 내 노래가 업그레이드될 것 같다.”
 
매번 달리 불러, 립싱크 제일 못해
가르치고 배우는 주체가 바뀐 것 아닌가.
“나는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고 가수가 됐다. 우리 땐 많이 그랬지만. 요즘 친구들은 제대로 배운 정통파다. 배울 게 많다. 기타리스트 박주원씨를 통해 ‘에코브릿지’ 등 젊은 뮤지션들과 많이 교류하고 배웠다. 이 친구들이 하는 노래는 대중가요라는 범위를 조금 벗어난다. 내 노래는 호흡도 일정하지 않고 같은 노래도 부를 때마다 다르다. 그래서 제일 못하는 게 립싱크다. 예전엔 야외 녹화를 하면 립싱크를 해야 했는데 방송국에서 아예 카메라 샷을 멀리 잡아 줬다.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지금 두 번 불러도 다르게 부른다. 좀 엉터리였다. 이젠 안정된 노래를 만들려고 한다.”
 
이번 콘서트엔 신곡 ‘위로’ ‘하루종일’을 포함,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등 본인이 만든 기존의 노래 6곡에 ‘에코브릿지’가 만든 6곡이 포함된다.
 
평생 매니저 없이 일해 온 그다. “1980년대 후반 밤무대 공연할 때 잠시 연락 매니저를 둔 것 빼곤 내가 했다. 그게 편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되니까.”
 
반짝반짝 사랑 노래를 부르진 않았다. ‘낭만에 대하여’ ‘영일만 친구’ ‘입영전야’ 모두.
“내 삶을 노래로 만들었다. 굴곡도 심했고, 다들 그렇지 않나. 3집 영일만 친구를 내고 힘들었다. 돈에 무관심하다가 85년 딸을 낳은 뒤부터 미사리 밤무대에 섰다. 그게 너무 지겨워 이민 생각까지 하고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갔다. 다시 돌아와 95년 ‘낭만에 대하여’를 내놓을 때까지 힘들었다. 그런 마음이 노래에 녹아 있었고, 그래서 여러분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그 이후 좋은 일만 생겼다.(웃음)”
 
‘낭만에 대하여’엔 도라지 위스키, 다방 풍경이 나오는데.
“71년 1년 만에 의병 제대한 뒤 생활이 배경이 됐다. 부산 동래시장 옆을 지나다 비를 피하려 2층 허름한 다방에 올라갔는데 색소폰 연주 음악이 너무 좋았다. LP를 보니 에이스 캐넌의 ‘로라’란 곡이었다. 그냥 앉아 열 몇 번인가 들었다. 바바바~. 가슴을 후벼 파는, 참 좋은 곡이다. 도라지 위스키는 나도 궁금해 노래를 만든 뒤 주류협회에 전화도 해 봤는데 단종됐다고 하더라.”(도라지 위스키는 전후 유행한 일본 산토리사의 ‘도리스 위스키’가 판매 금지된 뒤 국내 양조사가 비슷한 이름으로 만든 위스키향 기타재제주다. 76년 즈음 단종됐다.)
 
위스키 시키면 마담이 옆에 앉던 시절
위스키를 즐겨 마셨나.
“비싸서. 다방에선 ‘위티’라고 불렀다. 위스키에 티(차)를 합한 말일 거다. 다방에서 술을 팔면 불법이니까 홍차 한 잔에 도라지 위스키 한 잔 이렇게 세트로 팔았다. 보통 술을 홍차에 부어 마셨다. 메뉴 중 제일 비쌌다. 위티를 시키면 다방 마담이 옆에 와 앉았다. 잠자리 날개 옷 같은 한복 입고, 높은 힐 슬리퍼 신고서.”
뮤지스땅스를 이용하는 인디밴드 연주자들이 벽에 쓴 메모. 한 시간에 4500원을 내면 작업실을 쓸 수 있다. 김경빈 기자

뮤지스땅스를 이용하는 인디밴드 연주자들이 벽에 쓴 메모. 한 시간에 4500원을 내면 작업실을 쓸 수 있다. 김경빈 기자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어머니를 그린 노래다. “마흔여덟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초등학교 교사셨다. 시를 쓰셨는데 누님 둘, 나 모두 메모하는 습관을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10월 중순 돌아가신 뒤 입대하면서 마음을 메모해 둔 게 바탕이 됐다. 맥주클럽에서 노래하다 상경한 뒤 가사를 피아니스트 최종혁씨에게 보여 줬더니 일주일 만에 곡을 만들었다.”
 
부모님은 일찍 작고했지만 그의 삶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었다고 한다. 부친은 부산 영도의 2대 민의원이었다. “당선 직후 스물아홉에 돌아가셨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였다. 안방 미닫이문 위에 사진이 있었는데 굉장히 무서운 인상이셨다.”
 
고교(부산 가야고) 시절부터 노래를 불렀나.
“전혀 아니다. 마이크를 잡아 본 적도 없다. 3년 내내 생활은 ‘꽝’이었다. 반 정도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공부하는 게 싫었고, 그림 그리기만 좋아했다. 지금도 책 잡고 공부하라면 졸린다. 단기 기억력이 좀 심각하다. 일본 공상과학(SF) 만화 ‘파이브 스타 스토리’도 한 여덟 번 읽으니 줄거리가 잡히더라.”
 
어머니의 걱정이 컸겠다.
“막내이자 집안 장손인데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셨다. ‘니는 점쟁이한테 가 보이 말년이 좋단다. 걱정하지 말거래이’ 그러셨다. 그래서 어머니 말씀만 믿고 산다.”
그는 2008년부터 SBS 라디오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진행하고 있다. 매일 오후 10시5분부터 밤 12시까지. 가끔씩 노래도 들려준다. ‘백호 행님’ ‘백호 오라방’. 청취자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다.
 
“청취자들 중엔 운전하시는 분, 식당하시는 분이 많다. 힘든 사연이 많은데 해 드릴 수 있는 말은 힘내시란 말밖에 없다. 그런 작은 위로를 청취자들이 잘 받아 주시는 것 같다. 10년이 되는 내년까진 하고 싶은데 중간에 잘리면 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친구를 꼽자면.
“사람을 사귀는 데 템포가 느리고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 친구가 손에 꼽힐 정도다. 배철수씨, 구창모씨 정도. 아주 오래전 미사리 축구팀 때부터 함께했다. 두 사람은 축구계에선 은퇴했고, 지금은 골프를 함께한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축구장에 가는데 제일 연장자다. 필드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정도다. 축구, 골프 운동을 꾸준히 해서 건강은 괜찮다.”
 
마음의 쉼터를 이곳 뮤지스땅스로 꼽았다. 동해의 ‘영일만’을 기대했는데.
“노래에 담긴 영일만의 그 친구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방송국 편성부장을 지냈고 시와 그림, 음악에 재주가 많은 친구였는데. 독립음악하는 젊은 친구들이 창작하고 공연할 수 있는 이곳이 내 쉼터다. 내가 ‘대장’(실제 명함엔 대장으로 돼 있다)이기도 하지만 하루 서너 시간 이곳에 와 있으면 마음이 가장 편하다.”
 
‘뮤지스땅스’는 2014년 12월 6차선 대로 아래 지하보도를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뮤지션의 뮤지션에 의한 뮤지션을 위한 음악 지하본부’를 표방했다. ‘뮤직’과 ‘레지스땅스’를 합성한 말. 최 대장이 작명했다.
 
어떻게 뮤지스땅스 일을 맡았나.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제안했다. 평생 맘대로 살아온 내겐 안 맞는 일이었다. 5년 전 싱어송라이터들이 어려운 원로음악인 등을 도와주자고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를 만들고 1대 소장을 내가 맡았는데 괜찮게 운영했다. 2년 정도 지나니까 문체부에서 음악창작소를 만들테니 함께 운영해 보겠느냐고 제안한 거다. 유 장관 사임 이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수익단체도 아닌데 자생하라며 예산을 깎는 통에 싸우며 해 왔다. 인디밴드들이 어떻게 이곳을 활용하는지 와서 볼 생각도 않고.”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아닌가.
“처음에 뮤지스땅스란 이름을 못 쓰게 하긴 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어쨌든 이곳은 장르 상관없이 젊은 친구들이 와서 마음껏 창작할 수 있도록 최고의 시설을 갖췄다. 연습실 사용에 한 시간 4500원, 공연장은 한 시간에 1만5000원(3회 사용 시 1회 무료)을 받는다. 음향과 조명을 세계적 수준으로 갖췄다. 화장실을 제일 좋게 만들라고 했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온다. 소속사 없는 친구들을 위한 ‘무소속 프로젝트’ 행사도 두 차례 열었는데 지난해엔 371개 팀이 참가했다. 상금도 주고 컬래버레이션 앨범 제작 자문위원을 연계해 주고 있다. 처음엔 정부 운영이라니깐 꺼리더니 이젠 소문도 많이 났고 인기가 좋다.”
 
70대엔 더 멋진 노래, 90대엔 신선같은 노래
매일 2시간 노래 연습을 한다고 하던데.
“꼭은 아니지만 집에서든, 운전하면서든 한다. 차 안이 좋다. 내 목소리를 정확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어서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난 연습을 안 하면 확 떨어지더라. 성대가 긴장이 풀리는 건지. 안 그래도 불안한 소린데. 근데 연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노래를 부르는 게 난 좋다.”
 
3년이면 일흔. 그의 인생 계획은 어떻게 잡았을까. “내가 볼 때 지금이 나의 최고 전성기다. 새로운 단계의 노래를 만들고 또 하겠지만, 이제 내려간다. 한번 떨어져 봤기 때문에 견뎌내는 방법도 안다. 더 나이 들면 여행 다니고 시골로 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싶다. 그리고 꼭 하나.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시나리오는 내가 써 놨다.”
 
어떤 내용인가.
“미사리에서 노래하는, 한때 잘나가던 인기 떨어진 가수 얘기다. 제목은 ‘미사리’다.”
 
겪어 본 삶이니 직접 출연하셔도 될 듯한데.
“난 늙어서 안 되고 감독만 할 거다. 40대 중반 역인데 여러 배우를 만났지만 딱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시작을 못했다. 사람을 찾으면 은행 빚을 내서라도 만들려고 한다.”
 
100세 시대지만 67세에 콘서트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40대 때는 어떻게 쉰 넘어서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50대 땐 60대가 되면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다. 이젠 70대를 바라본다. 삶에 대한 기대가 있다. 더 멋진 노래를 만들 수 있고 90이 되면 신선처럼 세상사를 노래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먹을 나이다. 기대와 긍정이 좋다. 좋은 일은 좋은 마음에 오지, 나쁜 마음에는 안 들어온다. 자석처럼. 하하.”
 
 
김수정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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