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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메시지 둘 다 드릴 테니 ‘넷심’ 주세요

중앙선데이 2017.02.26 00:54
대선 전초전, 모바일·SNS 주도권 경쟁
노잼 문재인, 안깨비 안희정, 사이다 이재명, 아재 안철수, 국민 장인 유승민, 심블리 심상정.
 

패러디는 기본, B급 예능 출연 불사
‘재미=가벼움’ 넘어 친근감 줘야
온라인 화제성 문재인·이재명 선두
지나친 팬덤 ‘양날의 검’ 될 수도

대선주자들에게도 ‘친근 캐릭터’가 필수인 시대다. 근엄하고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보다는 편안하고 유머감각도 있는 리더를 선호하는 유권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었지만 ‘오바마 리더십’이 한국에서 호응을 얻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선에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역할도 커졌다. 대선주자들은 JTBC 시사예능 프로인 ‘썰전’과 ‘말하는 대로’, SBS 인터넷 기반 예능 프로인 ‘양세형의 숏터뷰’ 등에 출연해 예능감을 뽐내고 있다. 때론 과감하게 망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방송에서 자신에 대한 악플(악성 댓글)을 직접 읽으며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잘하진 못해도 무반주로 노래도 부른다.
 
정통 예능 프로는 아니지만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대선주자들을 상대로 한 패널들의 집단 인터뷰에 재미 요소를 곁들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 프로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스스로의 단점이 ‘노잼(재미없음)’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방송 이후엔 역설적으로 노잼 이미지를 어느 정도 탈피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책 많이 읽는 사람 중 제일 말 못함’이란 악플을 읽은 뒤 “저도 말을 좀 더 잘하면 좋긴 하겠어요”라고 웃어넘기는 등의 여유도 보였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같은 프로에서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동물은 팬다(판다)”라며 자신이 개발한 ‘아재 개그’를 발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떠도는 대선주자들의 각종 패러디물도 예전엔 배척의 대상이었다면 이젠 오히려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나는) 망가져도 좋으니 사진을 맘껏 이용해달라”며 패러디물 제작을 독려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얻은 이 시장의 ‘사이다’ 발언이 빠르게 확산되는데도 움짤(사진이나 동영상 캡처)의 힘이 컸다. 문재인 캠프에서도 ‘문아트 공모전’이란 형식으로 각종 패러디물과 영상을 모으고 있다.
 


 
‘충남 엑소’‘상정몬’ 등 캐릭터 띄우기 골몰
안희정 충남도지사 캠프에선 자체 제작한 패러디물로 ‘안깨비’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을 본뜬 사진 속에서 빨간 목도리를 즐겨 하는 여주인공 역할은 안 지사의 부인 민주원씨가 맡았다. 안 지사 지지자들은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라는 드라마 속 유명 대사를 패러디해 “대통령으로 올게”라는 댓글을 달며 환호했다. 한때 ‘진지빤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안 지사가 요새는 자신을 소개할 때 정치계의 아이돌이라는 의미로 ‘충남 엑소’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많이 뻔뻔해졌다.
 
하지만 ‘재미=가벼움’에 머물러선 곤란하다는 게 대선주자들의 고민이다. ‘B급 예능’으로 분류되는 양세형의 숏터뷰는 그 경계선상에 있다. 이 시장과 안 지사가 과감하게 그 틀을 깼고 24일 남경필 경기도지사에 이어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곧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안 지사는 숏터뷰 출연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정치인들이 너무 경박한 건 싫어하면서도 웃음 뒤에 메시지가 포함되길 바란다”며 “우리는 얼마나 진지한 메시지를 가지고 재밌게 놀 수 있는가에 대해 아직 문화적으로 축적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 역시 그 축적의 과정이다.
 
심 대표는 의정활동에서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호통치는 이미지와 달리 인터넷상에선 ‘심블리(심상정 러블리)’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엔 히트텍 광고 패러디로 그야말로 ‘히트’를 쳤다. “저는 지금 청계광장에 나갈 준비를 합니다. 가능한 한 오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거니까”라는 멘트와 함께 히트텍을 입는 1분짜리 짤막한 영상이다.
 
지난달 18일엔 대선 출마를 예고하는 영상도 드라마 ‘도깨비’ 패러디로 준비했는데 ‘심깨비’라는 별명은 안타깝게도 ‘안깨비’에 밀린 분위기다. 지역 순회 일정을 알릴 때는 모바일 게임인 ‘포켓몬고’를 패러디한 영상에 심 대표가 ‘상정몬’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석현 홍보총괄보좌관은 “온라인에서는 재미가 없으면 아예 화제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노잼은 탄핵’이란 기조 아래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통왕’ 이재명 페이스북 라이브 인기몰이
온라인 강자인 이 시장은 아무 각본 없이 심야에 진행하는 페이스북 라이브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이 시장이 편안한 옷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앉아 실시간 댓글을 읽어가며 1시간 이상 유권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다. 지난 10일 밤 진행된 라이브는 동시 접속자가 3000명 이상이었다. 25일 현재 좋아요 2만1000여 명, 댓글 2만8000여 개, 공유 2600여 회를 기록하고 있다. 이 시장은 이런 방식으로 기존의 싸움닭 또는 사이다 이미지 대신 ‘소통왕’ 콘셉트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안철수는 ‘썰전’서 예능감 뽐내 화제
안 전 대표는 지난달 29일 부인 김미경씨와 함께 ‘설 민심 따라잡기’ 페북 라이브를 진행하는 등 모바일 소통에 주력하고 있다. 김태형 공보실장은 “안 전 대표는 정치인 중 최초로 페리스코프라는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 앱을 쓸 정도로 모바일과 SNS를 활용한 소통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JTBC ‘썰전’에서는 ‘돈이 많지만 잘 쓰지 않는다’는 소문에 대해 “1500억원을 기부한 짠돌이도 있느냐”고 받아치는 등 아재 개그를 넘어선 예능감을 뽐내 화제가 됐다.
 
유 의원은 온라인 전략에 있어 다소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대선 출마 당시 ‘Don’t Blink’라는 아이폰 광고 패러디로 혁신적인 보수 이미지를 강조하고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패러디한 ‘국민닥터 유사부’로 경제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알리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지도 상승이란 측면에서는 ‘잘 키운 딸 하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 총선 당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는 이유로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딸 유담씨의 미모가 화제로 떠오르면서 ‘국민 장인’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유담씨가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를 때마다 유 의원의 인지도 또한 쑥쑥 상승했다. 반대세력에겐 딸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유 의원은 JTBC ‘썰전’에 출연해서도 “딸을 선거에 계속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딸 바보’ 아버지들의 표심 확보 등 긍정적 효과를 아예 무시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유승민, 딸 덕분에 ‘국민 장인’ 별명 얻어
대선주자들이 이처럼 온라인에서의 네티즌 민심, 즉 ‘넷심’ 잡기에 골몰하는 이유는 그만큼 대선 판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게 노사모를 결집시킨 인터넷 공간이었다면 2017년에는 모바일과 SNS 시장을 잡는 게 중요해졌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성인 남녀 10명 중 9명은 스마트폰을 쓴다. 2012년 1월 53.4%에서 2017년 1월 기준 93.4%로 크게 늘었다. 20대 사용률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눈에 띄는 건 60대 이상 연령층의 변화다. 5년 전 불과 13%였던 사용률이 76%까지 급증했다. 모바일, 특히 SNS를 활용한 소통 전략이 더 이상 젊은 층만 겨냥한 방식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대선주자들이 온라인에서 얼마나 화제를 모으는지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여론조사도 등장했다. 화제성 조사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은 이번 달부터 매일경제와 공동으로 매주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네이버·다음 등 대형 포털과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등을 대상으로 주자들 이름이 얼마나 언급됐는지 조사하는 방식이다.
 
지난 13~19일 조사에선 화제성 점유율에서 문 전 대표가 25.1%로 1위, 이 시장이 19.4%로 2위를 차지했다. 안 지사(14.5%)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14.3%)은 근소한 차이로 3, 4위에 올랐다. 이어 안 전 대표(11.4%)와 유 의원(4.4%) 순이었다. 원순우 굿데이터코퍼레이션 대표는 “대선주자들이 자신의 정책이나 가치관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에 따라 넷심도 기민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문 전 대표가 온라인 화제성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지지자들의 적극성이다. 김경수 대변인은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재미있는 콘텐트를 만들어 인터넷상에 확산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문 전 대표 본인이 출퇴근길에 대폿집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도 같이 한잔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대통령상을 추구하는 만큼 SNS를 통해서도 친근한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기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위까지 올랐다가 최근 주춤하는 추세지만 온라인 시장에선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장에게는 ‘손가락 혁명군(손가혁)’이라 불리는 SNS 기반 지지자들의 모임이 든든한 지원군이다. 지난달 광주에서 열린 손가혁 출정식엔 7000여 명이 몰렸다. 공식 계정인 네이버 밴드에는 2800여 명이 가입한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인 팬덤 현상은 양날의 칼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문 전 대표의 열성 지지자를 일컫는 표현인 문빠가 등장했고 “문빠 때문에 문재인은 싫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빠들이 문 전 대표 비판세력에게 18원 후원금 문자 폭탄 등 극렬한 공격성을 드러낸 일화 때문이다. 손가혁도 문 전 대표를 겨냥한 도를 넘은 비판과 “민주당을 점령하라”는 등 거친 표현 탓에 비판을 받곤 했다. 김남준 대변인은 “이 시장이 직접 나서 민주당 내 다른 후보를 음해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고 최근엔 자정 노력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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