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급 호텔 하나 없는 광주, 정치권은 “사막에 지어라”

중앙선데이 2017.02.26 00:02 520호 4면 지면보기
전국서 경제 옥죄는 정치 바람 
신세계가 특급호텔ㆍ면세점을 신축하려는 광주 터미널 일대 공터. ‘개발 반대’를 주장하는 플래카드가 왼쪽에 붙어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신세계가 특급호텔ㆍ면세점을 신축하려는 광주 터미널 일대 공터. ‘개발 반대’를 주장하는 플래카드가 왼쪽에 붙어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시민의 편인가, 재벌의 편인가. 윤장현 광주시장은 답하라’.
 지난 23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고속버스터미널(유스퀘어) 주변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유스퀘어 내 영풍문고에서 만난 대학생 송명진(25)씨는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이지만 특급 호텔이 단 한 곳도 없다”며 “터미널 일대를 백화점·면세점·호텔 등 다목적 상권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에 일부 상인과 정치권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터미널 주차장 바로 옆에는 빨간색 글씨의 간판 서너 개가 잇따라 걸려 있다. ‘××모텔’ ‘△△무인텔’ 같은 숙박업소들이다. 광주에는 라마다(170실)·홀리데이인(210실) 같은 중급 호텔만 있을뿐 특급 호텔이 없다. 이곳에 신세계가 200실 규모의 조선호텔을 지으려 하지만 중소상인뿐만 아니라 중앙정치권의 거센 반발에 멈칫하고 있다.

광주시, 신세계에 호텔 신축 제안
대선 주자 반대에 사업 존립 위기

광주 GRDP, 광역시 중 가장 낮아
“언제까지 정치의 볼모 돼야 하나”

군산에선 LG 스마트팜 사업 좌초
불황 맞은 조선·자동차에 매달려

 
민주당·국민의당 대립이 사태 악화시켜
 이번 논란의 발단은 2015년 5월 광주시와 신세계그룹이 맺은 투자협약 양해각서(MOU)에서 비롯된다. 당시 윤장현 시장은 신세계그룹에 먼저 특급 호텔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고, 신세계는 이를 받아들였다. 양측은 버스터미널 옆 기존 이마트를 허는 대신 지하 7층, 지상 21층 규모의 백화점 및 특급 호텔(200실 규모)을 짓기로 합의했다. 총 14만5000㎡(약 4만3939평) 규모의 복합쇼핑시설로 이마트 주변 공터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개발계획이다. 신세계는 기존 백화점 자리엔 면세점을 유치해 지역 청년을 고용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광주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시 당국이 기업 수십 곳으로부터 퇴짜를 맞은 상황에서 1995년부터 이 자리에서 영업해 왔던 신세계가 광주시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유치한 광주시 입장에선 외국인 고객을 수용할 수 있는 특급 호텔 건립이 시급한 과제였다. 더군다나 2015년 한전이 나주혁신단지로 이전하면서 전시·컨벤션시설도 필요하게 됐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신세계 복합쇼핑몰 입점 저지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광주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신세계 복합쇼핑몰 입점 저지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MOU 체결 직후부터 유치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이마트에서 100m 떨어진 금호월드쇼핑몰 상인 약 1000명의 반발이 거셌다. 중앙정치권도 개입했다. 2015년 9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규모 판매시설이 들어서면 골목상인들이 다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 방문 이후 광주시는 돌연 재검토로 돌아섰다. 결국 2년 가까운 공전 끝에 신세계는 올 1월 연면적을 기존 대비 40% 축소해 호텔·백화점을 짓겠다는 수정계획을 내놨다.


 신세계의 발표 직후 정치권의 개입은 더 심해졌다. 지난 14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역 상권을 초토화할 광주 신세계 복합쇼핑몰 입점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아웃렛은 사막 한가운데 있다”고 말했다. 전날 민주당 소속 을지로위원회는 이 시장, 문 전 대표 등 같은 당 소속 대선 주자에게 “복합시설 건립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해 달라”고 요청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광주시민들은 대선을 앞두고 격화된 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의 대립도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손중호 양동시장 상인회장은 “언제까지 호남이 중앙정치에 묶여 경제 성장에서 비켜 나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4·13 총선에서 광주 지역 9개 선거구를 석권한 국민의당은 유치 찬성 쪽에 기울어 있다. 민주당은 시당 차원에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양동시장은 대지면적 1만563㎡(약 3201평)에 불과한데도 광주·전남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다.
 
 지역 상공인들도 광주시와 정치권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김상열(호반건설 회장) 광주상공회의소장은 “지역 행정이 지역 기업과 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러다가 광주는 이슬만 먹고 살 판”이라고 비판했다. 고용노동청 집계 결과에 따르면 광주의 지역총생산(GRDP)은 29조6000억원으로 전국 7대 특별·광역시 중 가장 낮다. 이 지역 고용률도 2014년(63.4%)을 기점으로 2015년 63.1%, 지난해 62.6% 등 내리막이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고용률이 2014년 65.3%, 2015년 65.7%, 2016년 66.1%로 소폭이나마 상승 추세에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광주시 관계자는 “현재 신세계에서 제출한 복합시설 지구단위계획을 검토 중”이라며 “호텔과 복합쇼핑몰 인허가 문제를 연내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5월 또는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 이후로 결정을 미룬다는 의미다.
 
군산은 “현대중 폐쇄 반대” 1인 시위 
 광주에서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정치논리가 지역 경제를 압도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남 순천에선 지난해 1월 회원제 할인점 코스트코의 입점이 지역 상인 반발로 무산됐다. 2013년 1월 코스트코가 이 지역 진출계획을 밝힌 지 3년 만이다. 여수~순천~광양으로 이어지는 산업단지 지역의 소비자들은 호남 최초의 회원제 할인점 입점을 환영했지만 지역 상인들과 시민단체의 반대를 넘어서기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9월엔 LG의 스마트팜 사업이 무산됐다. 스마트팜은 작물 재배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온도와 습도, 일조량 등을 자동으로 제어하여 수확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첨단 농장을 말한다. LG CNS는 전북 새만금에 3800억원을 투자해 76㏊(약 23만 평) 규모 스마트팜 단지를 2022년까지 세우려 했지만 정치권과 지역 농민단체 반발로 무산됐다. LG CNS 관계자는 농작물 재배가 아니라 사물인터넷(IoT)에 기반해 생산량을 대량으로 늘릴 수 있는 스마트 농업 설비·솔루션을 확보하는 게 목표라고 수차례 해명했지만 지역 여론이 완강해 굳이 이를 거스르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설명했다.


 잇따라 신규 사업이 수포로 돌아가는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일감 부족으로 6월 도크 가동를 멈출 예정인 전북 군산에서는 반대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군산조선소 폐쇄 금지’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 태세다. 문재인 전 대표는 최소 수주물량을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재명 시장은 공공용선을 발주하고, 선박펀드를 늘리고, 선수금 보증을 빨리해 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만 “정부가 관여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지역 정치권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지난달 24일 울산에서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을 만나 “울산 도크 물량을 군산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동신 군산시장을 비롯한 군산시민 약 700명은 지난달 25일 서울 평창동 정몽준 전 의원 자택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 전 의원의 자택 앞에서는 아직도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불황에 휩싸인 조선소 일감만 인위적으로 유지해 달라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기아자동차의 구조조정이 정치권 반대로 지연되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한국GM 군산공장은 2015년부터 1교대로 운영되고 있다. 일반적인 완성차 공장에서 볼 수 있듯 주간과 야간의 2개 조로 분리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주간조 1개만 근무하는 시스템이다. 군산공장의 연간 생산 규모는 26만 대이지만 지난해 이곳에서 생산된 차량은 8만 대에 머물렀다. 
-

-

 
서울 상암동 쇼핑몰도 4년째 공전
 표를 둘러싼 다툼이 지역 경제를 왜곡시키는 현상은 서울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상암동 복합쇼핑몰 조성계획은 4년째 헛바퀴를 돌고 있다. 2013년 4월 서울시는 롯데그룹에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인근 부지 2만644㎡(약 6255평)를 1972억원에 팔았다. 당초 롯데는 이 자리에 백화점과 영화관·업무시설·대형마트·기업형수퍼마켓(SSM)을 짓기로 구상했다. 전체 3개 동을 건설한 다음 지하에 광장형 통로를 만들어 건물을 모두 연결한다는 계획이었다.


 쇼핑몰 부지에서 2㎞ 이상 떨어진 망원시장 상인들이 ‘복합쇼핑몰 강행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거세게 반발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전통상업구역 내 상인들의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신축 점포 반경 1㎞ 이내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참여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가세했다. 롯데는 지난해 5월 “대형마트·SSM 없이 입점하라”는 서울시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롯데의 기대와 달리 정치권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해 11월 전국상인대회에 나가 "상인들과 상생 없는 롯데복합쇼핑몰은 서울시에 들어올 수 없다"며 "땅을 다시 사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시민단체ㆍ지역 상인들은 기존 입장에 더해 쇼핑몰 3개 동 가운데 1개 동을 백화점과 매장이 없는 '비(非) 판매시설'로 만들라는 요구했다.


 하지만 상암·성산동 주민들의 목소리는 다르다. 상암월드컵파크·시영아파트·휴먼시아 등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 약 3000명으로 구성된 ‘상암동 공동주택연합회’는 지난해 12월과 올 2월 두 차례 “쇼핑몰의 빠른 입점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서명서를 서울시에 냈다. 롯데는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군산=김영민 기자bradkim@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