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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트라우마

중앙선데이 2017.02.26 00:02 520호 4면 지면보기
21일 오전 국제갤러리에서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개인전 관련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관계기사 18~19면> 두 개의 안장이 마주 보게 만든 자전거, 핸들 두 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도록 붙여 놓은 자전거 앞에서 제작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작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이렇듯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 아닌가요.”


이렇게 꼼짝달싹 못하게 된 원인으로 그는 세월호 사태를 꼽았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수준이 실제로는 여기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잘못 배달된 선물을 다시 반납해야 하는 낭패감이랄까요. 여기까지 이룬 것을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엉뚱하게 연결된 사물을 통해 우리의 시스템이 이렇게 어긋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직접적인 분노로 표현하는 것은 조심스러웠기에 저만의 방법으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실망감을 담아냈죠.”


가만히 다른 작품을 보았습니다. 의당 여행 가방 밖에 달려 있어야 할 바퀴가 가방 내부에 설치된 ‘상자 II’(2017)는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무엇을, 누군가를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의자의 다리 네 개를 배 젓는 노의 형상으로 만든 ‘노/의자’(2017)는 뭍으로 나온 물고기 같기도, 강으로 돌아가려는 배 같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는 세상. 예술가의 예민한 촉수에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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