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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노장이 들려주는 인생 찬가

중앙선데이 2017.02.26 00:02 5220호 6면 지면보기
너무 식상한 말이 되어 버렸지만, 호세 카레라스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더불어 이른바 ‘쓰리 테너’로 불린다. 파바로티가 1935년생이었고, 도밍고가 41년생이니 46년생인 카레라스의 나이가 가장 적다. 1990년 로마 월드컵 당시 첫 쓰리 테너 콘서트가 열릴 적만 해도 ‘막내’로 통했던 카레라스가 이제 칠순을 넘겨 ‘마지막 월드 투어’라는 타이틀로 세계를 돌고 있다. 우리나라 공연은 3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다.
 

3월 4일 내한 공연하는 호세 카레라스

솔직히 카레라스는 파바로티나 도밍고에 비하면 대형 테너다운 풍모가 떨어지는 편이다. 체구도 크지 않고 무대를 장악하는 힘도 두 라이벌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하드웨어는 시원한 목청의 소유자 파바로티, 몸 자체가 엄청난 공명통인 도밍고와 비교할 수 없고, 레퍼토리에 있어서도 그 폭이 도밍고보다 훨씬 좁고, 가장 인기 높은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에서는 파바로티만큼 최적화된 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인기도 마찬가지다. 파바로티가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대중적 친화력으로, 정말 멋지게 생긴 남자인 도밍고가 탁월한 오페라 행정가로도 찬사를 받은 반면 카레라스는 ‘교과서적인 분위기의 테너’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카레라스는 스물넷(1970년)부터 세상에 이름을 알렸으니 성악가로는 젊은 나이에 성공한 편이지만 십 수 년 동안 자신의 이름보다는 같은 고향(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인 13년 연상의 세계적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의 파트너로서 유명했다. 80년대 중반에야 파바로티, 도밍고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는가 싶었는데 절정기인 87년에 생존율 10%에 불과한 악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비극이 될 뻔한 상황에서 행운이 찾아온다. 카레라스를 경쟁자로는 무시하는 듯 보이던 파바로티와 도밍고가 기꺼이 카레라스를 포함한 ‘쓰리 테너’라는 표현을 받아들이며 병상의 카레라스를 격려한 것이다. 특히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같은 스페인 테너임에도 그 이전까지 앙숙으로 표현되곤 했다. 도밍고는 카스티야 지역인 마드리드, 카레라스는 카탈루냐 지역인 바르셀로나 태생이었기에 때문에 각각 카스티야와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적대적 경쟁자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도밍고는 카레라스가 머물던 미국의 시애틀 병원을 직접 찾은 것은 물론 자신이 후원하던 마드리드의 백혈병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남몰래 주선하기도 했다. 극적으로 회복한 카레라스는 자기 이름을 딴 백혈병 재단을 세웠는데, 좀처럼 성사될 것 같지 않던 쓰리 테너 콘서트가 세계적 이벤트로 벌어진 것도 카레라스의 백혈병 재단을 후원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었다.
 
그런데 카레라스가 앞서 가던 두 선배를 추격하여 쓰리 테너의 반열에 오른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카레라스에게서 풍기는 ‘진정성’에 있는 것 같다. 카레라스는 진심과 영혼이 담긴 열창으로 유명해서 ‘오페라의 연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배역에 몰입하여 마치 피를 토하는 듯한 노래를 부르면 여성 관객들이 성적 쾌감마저 느낀다는 주장도 있었다. 유머 감각도 별로 없는 카레라스는 늘 진지하고, 심각한 백혈병을 불과 1년 만에 극복한 의지의 화신이기도 하다. 극장 운영이나 예술재단이 아닌 순수한 의료재단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점도 예술가로는 남다른 부분이다.
 
병에서 회복한 이후의 카레라스는 더욱 표현력이 깊어졌다고 하지만 예전과 같은 폭발적 표현력은 떨어졌다. 그래서 오페라 무대보다는 콘서트를 중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왔다. 이번 내한 공연 프로그램을 봐도 어려운 대곡의 오페라 아리아에 도전하는 대신 노(老) 대가가 오랜 팬들에게 이별을 고하기에 적합한 곡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역시 카레라스 특유의 ‘진정성’에 부합한 선곡이라고 믿는다. ●
 
 
글 유형종 공연칼럼니스트ㆍ무지크바움 대표 divino@hanmail.net, 사진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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