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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일이 없어야 하는, 그래도 있어야 하는

중앙선데이 2017.02.26 00:02 520호 20면 지면보기
살면서 피하고 싶은 일이 많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시달리거나, 빚쟁이가 되는 상황 같은 거다. 누군들 이런 일을 당하고 싶을까. 파행의 삶은 숙명이다. 예측불허의 순간에 잘 대처하거나 극복의 힘을 갖추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말은 쉽다.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일까지 일일이 대비하며 사는 사람이란 얼마나 될까. 많을 수도 있겠다. 매사 치밀하지 못하고 근거 없는 낙관론에 기대며 타고난 팔자를 신봉하는 내 생각일 뿐이니까.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56>
오딘 안전 라이트


돌아다닐 일이 많은 나는 위의 경우를 다 당해봤다. 눈길에 미끄러져 차가 절벽에 처박히는 사고를 낸 적 있다. 차는 폐차시킬 만큼 부서졌고 나는 충격으로 병원 신세까지 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빚까지 졌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프리랜서의 수입구조로 보아 당연한 일이다. 단 한 번의 교통사고가 몰고 온 풍파는 생각보다 컸다. 나한테 생긴 불운을 원망도 했다.


불운의 사건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파행의 백신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있다 해도 항체의 지속기간도 길지 않다. 벌어진 일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 자리와 순간의 교차점에 있었던 건 누가 시키지 않았다. 제 발로 찾아갔으니 원망할 것도 없다. 벌어진 일의 결과는 모두 제 탓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게 상책이다. 벌어질 일이 무서워 꼼짝하지 않는다면 역동의 삶은 차지할 수 없다. 나른한 평온함은 거저 줘도 싫다. 불안과 위태로움마저 끌어들인 탱탱한 긴장의 매력을 친구 삼기로 했다.


아찔한 사고가 내게 일어났을 때
사고 순간을 복기해 보았다. 사륜구동의 SUV 차량을 너무 믿었던 게 잘못이다. 얕은 눈이 쌓인 고속도로 정도야 당연히 헤쳐 나갈 줄 알았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얼어붙은 표면에선 사륜구동의 장점도 힘을 쓰지 못했다. 순간 핸들이 헛돌았다. 중심을 잃은 차가 미끄러져 고속도로의 차선 세 개를 오가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경사진 길에서 가속된 속도까지 더해진 차는 통제 불능의 쇳덩이 일 뿐이다.


한참 동안 미끄러지던 차는 산 사면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처박혔다. 영화에서 보던 굉음과 연기가 치솟는 충돌장면은 현실로 바뀌었다. 순식간 차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얀 가루를 쏟아내며 부풀은 에어백이 너풀거렸다. 단선된 전기장치는 불빛을 잃었고 충격으로 뒤엉킨 차안의 물건들이 어지러웠다. 벨트를 맨 가슴이 답답해지며 통증이 전해져 왔다. 정신을 잃으면 곤란하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더 큰 피해가 없다.


몸에 죄인 안전벨트부터 풀어야 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시트 옆에 있는 벨트의 연결해제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충격으로 변형된 것이 분명했다. 난감했다. 몸을 버둥거릴수록 조여지는 벨트는 완강하고 질겼다. 차 문도 열리지 않았다. 잠금장치마저 찌그러진 문짝이 열릴 리 없다. 차안에 갇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의지로 통제 되지 않는 차가 괴물처럼 느껴졌다.


영원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사고 처리를 위한 렉카의 사이렌 소리와 어지러운 경광등의 불빛이 보였다.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의 심정이 이해됐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차 문짝을 자르는 쇠톱이 잠금장치를 겨우 풀었다. 문이 열리자 찬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칼로 벨트를 잘라내고 나서야 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앰블런스에 실리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긴장이 풀어진 탓일 것이다.


비상용품은 트렁크 아닌 바로 곁에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교통사고의 교훈이 생겼다. 눈길에서 무리한 운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스노우 타이어를 끼우지 않은 잘못도 반성했다. 한 번도 쓸 일 없었던 차 안의 비상 용구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소를 잃어봐야 비로소 외양간을 손보게 마련이다. 뒤늦은 대처라도 안 하는 것 보다 낫다. 한 번 벌어진 일은 언젠가 또 벌어질 개연성 때문이다.


차 속에 비치해 두는 비상용 도구를 다시 돌아보았다. 대개 비상용품은 차 트렁크 안에 놓아둔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교통사고의 여파를 수습해야 할 곳은 차 속 아니던가. 트렁크속에 아무리 대단한 물건을 담고 다녀봐야 아무런 소용없다. 필요할 때 바로 써먹지 못하는 비상용구란 개나 줘버려야 한다. 같은 경우를 당한 체험의 공유지점이 있게 마련이다. XD 디자인의 ‘오딘(ODIN)’ 안전 라이트가 만들어진 바탕이다.


교통사고 당시 빨리 벨트를 풀고 차 밖으로 나왔다면 2차 사고의 위험은 줄어든다. 사고 수습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의 지체는 목숨과 직결될지도 모른다. 의식이 있다면 제 손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게 최고다. 벨트가 잠겼을 때 해결책은 칼로 잘라내면 된다. 열리지 않는 문짝은 망치로 유리를 깨고 탈출하면 된다. 이 단순한 해결책을 실행하는 도구가 있을까. 있다. 바로 ‘오딘’ 비상용 라이트다.


오딘엔 칼과 망치, 앞을 비추는 라이트와 구조나 신호를 위한 시그널이 한 몸체에 담겼다. 납작한 디자인은 손에 쥐기 쉽고 눈에도 잘 뜨인다. 손만 내밀면 닿는 거리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비상용구가 대기 중인 셈이다.


칼과 망치에 라이트까지 하나로
사고 이후 내 차의 사이드 포켓에 오딘 안전 라이트를 비치해 두었다. 가끔 실전에 대비한 연습도 했다. 차창 유리에 휘둘러보기도 하고 칼날이 녹슬지 않았는지 배터리 잔량도 충분한 지 확인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오딘을 만든 XD 디자인은 네덜란드에 있다. 생활소품에 디자인을 입혀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날카로운 모서리를 없앤 둥근 플라스틱 몸체는 건조하게만 보이는 비상용구의 딱딱함을 누그려 뜨린다. 흰 색이 주조로 되고 주황색과 회색으로 포인트를 삼은 배색의 조화도 깔끔하다. 손잡이 역할을 하는 기다란 구멍 안에 스위치가 달렸다. 누를 때 마다 라이트와 붉은색 비상 시그널이 전환된다. 벨트를 자를 때 사용되는 칼날은 플라스틱 안에 숨겨져 있다. 끝이 뾰족한 망치는 적은 힘으로 큰 파괴력을 낸다. 귀엽게 보이는 몸체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농축된 디자인이다.


세월호 사고를 떠올려본다. 너무나 어이없는 초동 조치의 미흡함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평소 비상 용구를 가지고 다니는 이는 없을 테다. 당시 이런 물건만 지니고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배 유리창을 깨고 스스로 나올 수 있었을 테니까.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이후의 대처가 달라졌을까? 별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이 흥분과 질타만 무성했다. 근본을 돌아보고 작은 것부터 채워 넣는 실행의 촘촘함은 확인되지 않았다.


나라가 안전을 지켜주지 않으면 스스로 챙길 수밖에 없다. 혹시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의 대처법을 떠올려야 한다. 여행 가방에 이런 물건 하나 정도 넣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파행의 삶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대비의 방책이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낫다.


오딘 안전 라이트는 살면서 쓸 일이 없어야 하는 물건이다. 평생에 한 두 번 아니라면 영영 쓸 일이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군대는 단 한 번의 전쟁을 위해 있어야 하는 조직 아니던가. 단 한 번의 삶이다. 사고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을지 모른다. 지킬 수 있는 위험은 제 손으로 막는 게 안심이다. ●
 
 
윤광준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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