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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부품 만드는 주물공장서 디자이너에게 SOS 친 까닭

중앙선데이 2017.02.26 00:02 520호 24면 지면보기
BKID 송봉규 대표

BKID 송봉규 대표

디자인스튜디오 BKID의 송봉규(38) 대표가 쇠를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인도네시아 폐목재로 만든 빈티지 가구 브랜드 ‘매터앤매터’로 주목받았던 송 대표가 쇳덩어리에 꽂힌 건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의 남자가 발신자였다. 남자는 1500도 고온에서 철을 녹여 만든 주물을 다룬다고 했다. 주거래처는 자동차ㆍ선박ㆍ중장비 부품을 만드는 국내외 기업. 경북 고령에 있는 중소 주물제조업체인 대한특수금속의 변재욱(49) 대표였다. 제품 개발 관련 숱한 문의 전화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젊고 유망한 디자이너의 마음을 흔든 말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신이 상상하는 대로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주물리빙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봅시다.”

국산 주물 리빙 브랜드 ‘MM’의 탄생기


제조업의 불황을 잘 디자인한 ‘B2C’ 제품으로 극복하고픈 주물공장 사장과 1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무쇠라는 소재에 호기심이 생긴 디자이너가 의기투합했다. ‘MM’, 무쇠의 첫머리를 이니셜로 한 주물리빙 브랜드가 탄생했다.
 
대한특수금속의 주물공장에서 찍은 ‘MM’의 제품들. 사진 허준율 작가

대한특수금속의 주물공장에서 찍은 ‘MM’의 제품들. 사진 허준율 작가

‘MM’의 주물화병

‘MM’의 주물화병

주물화분

주물화분

송 대표의 서울 서교동 사무실 곳곳에는 의자로, 화분으로 매끈하게 디자인된 주물 제품이 놓여 있었다. 쇳덩어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양새가 날렵했다. 만져보니 표면이 오돌토돌했다. 송 대표는 “모래틀 안에서 쇠가 굳다 보니 생긴 모래알 자국”이라며 “마치 검은 먹으로만 그린 동양화의 붓 자국처럼 거친 느낌이 난다”고 설명했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 스툴의 무게가 3㎏이라고 했다. 다리는두 개 뿐이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무게 덕에 안정감을 얻었다. 핀란드 건축가 알바알토가 만든, 스툴의 대명사가 된 ‘스태킹 스툴 모델 No.60’의 다리는 세 개였다. 대한특수금속의 변 대표는 “유명한 북유럽 디자이너들의 의자처럼 주물로 국민의자를 만들고 싶었다”며 “하청업자 비슷하게 각종 부품만 생산하다 주물 리빙브랜드로 소비자와 직접 만난다고 생각하니 보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2대째 운영하고 있는 그의 주물공장 벽에는 영어 문장이 한 줄 적혀 있다. ‘You Imagine, We Cast.’ 해석하자면 당신이 상상하는 대로 우리가 주조해준다는 말이다. 주물제품은 모래로 틀을 만든 뒤 쇳물을 부어 굳혀 만든다. 모래성 쌓듯 틀을 만들 수 있으니 자동차 엔진부품처럼 복잡한 기계부품을 만들기 좋다. 송 대표에게 이런 주물 제조과정은 자유선언과 같았다. 그 어떤 복잡한 형태를 디자인하더라도 다 만들 수 있다!


그는 ”스툴의 경우 다리와 상판, 밑받침을 따로 제작해 연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래 틀에 쇳물을 부어 한번에 굳혀 만들었다”고 말했다. 화분에는 운반하기 좋도록 손잡이를 크고 길게 달았는데, 몸통과 손잡이 역시 한 번에 굳혀 완성했다. 송 대표는 “북유럽의 경우 주물로 만든 리빙 제품이 꽤 다양하고 많이 쓰는데도 국내에는 주방용품 브랜드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주물스툴

주물스툴

 
주물화분

주물화분

너무 무거워서 안 쓴 게 아닐까.
“무거운 꽃을 나무 화병에 꽂으면 쓰러진다. 무쇠화병은 거뜬하다. 작은 소품일수록 균형감이 좋다. 테이블의 경우 상판을 볼트와 너트로 연결하면 여러 개를 이어 붙여 하나처럼 쓸 수 있게 했다.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구현할 수 없는 디자인이다. 무쇠 테이블을 계속 연결하면 기네스북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긴 테이블도 만들 수 있다. 무겁다는 단점보다 형태적으로 완결성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점,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다는 점 등 무쇠의 가능성을 더 좋게 봤다.”


쇠는 녹슬지 않나.
“보통 2차 가공을 한다. 쇠 냄비에 도자기 유약을 발라 800도 고온에 구우면 프랑스 주방용품 브랜드 ‘르쿠르제’와 같은 법랑 냄비가 된다. 주방용품의 경우 법랑코팅을 주로 한다. 의자나 테이블 등 리빙제품의 경우 페인트 가루를 뿌려 200도에 굽는 분채도장을 한다. 그냥 페인트 칠만 할 경우 쇠의 물성이 강해 페인트가 금방 갈라진다. 한번 더 굽는 과정 덕에 견고한 제품을 만들 수 있고, 대대로 물려줄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쓸 수 있다.”


주방용품의 경우 주물제품이 요즘 인기다.
“소재가 점점 발달하면서 알루미늄 코팅팬을 많이 썼다. 가볍고 달라붙지 않아 사용하기 편해서 인기였다. 그런데 소재 자체의 유해성을 두고 요즘 논란이 많다. 유물 같던 무쇠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2차 가공하지 않은 생주물 제품의 경우 편리하지 않다. 요리하기 전에 매번 기름코팅과 같은 ‘시즈닝’을 해야 한다. 번거롭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마니아층이 많다. 심지어 스웨덴의 주물 브랜드 ‘스켑슐트’처럼 고가의 제품도 많다. 주물제품의 인기는 천천히 요리하는 삶, 슬로우 라이프 트렌드와 이어져 있다. 무쇠뚜껑의 무게 덕에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저수분 요리도 할 수 있고. 주물 디자인을 하다 주방용품 박사가 됐다. 하하.”


곧 출시할 ‘MM’의 무쇠냄비는 크기가 작다. 지름이 약 16㎝ 정도다. 작게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HMR(Home Meal Replacementㆍ가정식 대체식품) 시장을 겨냥했다. 인스턴트 식품과 집밥의 중간 지점에 있는 식품이다. 레시피에 따라 재료를 다 다듬어 포장해 놔서 데우거나 끓이면 완성할 수 있다.


“대형마트에 가면 HMR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조리하는 식재료 형태가 달라지니 조리기구 디자인도 바뀔 수밖에 없죠. 1인 가구를 겨냥한 HMR 푸드가 많은 만큼 냄비 크기도 작아져야죠. 게다가 요즘에는 그릇과 조리기구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어요. 냄비가 가스레인지 위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식탁 위로 올려집니다. 인덕션에서 끓여 그릇에 따로 담지 않고 바로 먹다 보니 조리기구도 그릇처럼 예쁜 것을 찾기 시작했죠. 알록달록한 색깔의 ‘르쿠르제’ 냄비가 인기인 이유입니다.”


‘MM’의 화병ㆍ화분ㆍ의자ㆍ테이블 등 주물 리빙 제품은 서울 논현동 플랫폼엘 컨텐포러리 아트센터 아트샵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다. ‘BKID 아트샵 팝업전’이다. 28일부터 3월 5일까지 열린다. 송 대표는 “냄비ㆍ프라이팬 등 주방용품도 곧 출시할 예정이고, 등받이가 있는 의자, 조명 등 리빙 제품 라인업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김권진ㆍ허준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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