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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맥짚기] 싼 주식이 사라졌다

중앙일보 2017.02.26 00:02
올해 상장사 매출·이익 동시 감소할 듯... 지수 상승 이끌 동력 부재, 주가 당분간 숨고르기
 
당장에라도 박스권을 뚫고 올라갈 것 같던 주식시장이 주춤거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투자자들의 기대와 다른 정책을 내놨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갖가지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관련된 문제들을 조만간 재협상하겠다고 밝혔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위한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대통령 후보 때부터 공약이었던 보호무역주의가 취임 이후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프라 투자나 감세 같은 부양책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을 실망시킨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실적 나쁘지 않아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도 다시 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 두 달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켜 시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평가가 바뀔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간의 물가 상승은 에너지 가격에 의존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상승세라고 보기 힘들다. 2월 들어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낮아진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원자재 가격에 대한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미국의 소비자물가와 중국의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둔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단기적으로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른 주가 상승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400개 넘는 거래소 상장기업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410조7000억원과 29조3000억원에 달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3.9%, 13.8% 늘어났다. 15%대 가까운 이익증가세는 삼성전자가 견인했다. 삼성전자를 제외할 경우 전체 증가율은 2.4%로 줄어든다. 순이익은 10.5%로 감소한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 수치이긴 하지만, 지난해 계속돼 온 10%대 후반의 영업이익 증가율이 4분기에는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지난 1년간 상장사들은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 구조를 유지해 왔다. 4분기 매출이 약간 늘었지만, 그전에는 이익 증가에도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3% 가까이 줄어들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불황형 흑자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외환위기 이후 계속돼 온 구조조정 효과가 한계에 부닥치고, 중국 특수마저 끝나면서 2013년부터 상장사 이익 구조가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작업이 몇 년 동안 계속돼 왔지만, 2015년 상반기에 일단락됐다. 그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비용이 줄면서 이익이 늘어난 데 반해 매출은 경기 둔화로 정체 상태를 벗지 못했다.
 
올해도 불황형 흑자가 이어지겠지만 지난해보다 상황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매출 감소와 이익 증가’가 같이 나타나지 않고 둘이 같이 줄거나 늘어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비용 감소 효과는 통상 2년 정도 유지되는데, 지난해 말로 6개 분기가 경과해 이익 증가를 위한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매출은 4개 국면을 거쳐 하나의 사이클이 완성된다. 먼저, 매출이 정체하거나 줄어드는 동안 이익이 늘어나는 상황인데, 경기 하락기의 막바지에 나타난다. 기업들이 경기 회복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 채 비용을 줄여 이익을 늘리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국면이 지나면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늘어난다. 경기회복이 가시화함에 따라 기업이 확신을 갖고 생산을 늘려 대응한다. 다음 국면은 매출이 늘어나는 동안 이익은 반대로 줄어드는데, 경기 회복으로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불황으로 매출과 이익이 모두 줄어든다.
 
지난해까지 첫째 국면이 진행됐다. 6개 분기 동안 유사한 상황이 계속돼 더 이상 비용을 줄일 곳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는 매출 부진과 이익 증가가 같이 나타나긴 힘들다. 이제부터는 이익이 증가하려면 매출도 늘어나야 한다. 이게 여의치 않을 경우 둘째, 셋째 국면이 생략된 채 이익과 매출이 동시에 줄어드는 넷째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업종 대표주 재상승 여부에 주목 
2015년 직전 매출과 이익 사이클에서 매출액 증가율 최고점은 56%였다. 그만큼 이익이 개선될 여지도 컸다. 이번에는 그 수준을 크게 밑돌 것 같다. 한 자리 수를 넘기는 것조차 힘들 것 같은데, 국내 경기가 좋지 않아서다. 이익은 비용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일시적으로 늘 수 있지만, 매출은 다르다, 경기가 뒷받침돼야만 늘어날 수 있는데 전망이 밝지 않다. 정부조차 올해 성장률이 작년 수준을 넘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 지표도 기업실적도 새로운 상승 모멘텀을 제공하는데 실패했다. 국내외 모두 주가가 상당히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숨 고르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주가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은 투자 종목 선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분간 실적과 주가가 얽힌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주와 은행주는 둘 다 금융주에 속하지만, 주가를 움직이는 힘은 다르다. 먼저 증권주. 두 달 동안 18% 올랐다. 종합주가지수의 네 배에 해당하는 상승률이다. 실적만 보면 증권주가 오를 이유가 없다. 4분기 성적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거래 대금을 감안하면 올해 1분기도 비슷한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가가 상승했다. 낮은 가격 덕분인데, 지난해 11월 증권주 주가는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하락했다. 금융회사의 부도 발생 가능성이 작은 걸 감안하면 장기보유 관점에서 매수하기 좋은 상태였다. 싸다는 인식이 퍼지며 주가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자 상승에 탄력이 붙었다. 저가 인식이 상승 동력인 만큼 앞으로 주가 수준에 대한 평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일부 증권주의 경우 두 달 사이에 50% 가까이 상승해 추가 상승 여력은 크지 않을 걸로 전망된다.
 
투자 종목 선택 힘든 한 해 될 것
은행주도 시작은 증권주와 비슷했지만 중간에 내용이 바뀌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저가 인식을 기반으로 주가가 올랐지만, 올해 들어서는 실적으로 상승 동력이 변했다. 지난해 4분기 이익이 급증한 게 주가 상승세의 원인으로, 과거 실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지난 3년간 이익 증가에도 주가가 오르지 못해 실적 대비 저평가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바꿔놓고 있다. 시중금리 상승으로 예·대마진이 확대돼 이익이 늘어나리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앞으로 시장은 증권주같이 저가 매력에 의해 한번 오른 주식들의 향배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화학·철강·건설·조선이 이에 속한다. 이들 업종은 지난해 주가가 상승했지만 지금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저가 매력이 사라진 공간을 채울 만한 요인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반도체 종목은 가격이 너무 높아 일반 투자자가 매매하기 힘든 주식이 됐다. 현재 이익 규모가 커 앞으로 실적이 더 늘어나더라도 이목을 끌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중소형주는 시장의 중심이 되기엔 규모가 작고 관심도도 떨어진다. 침체 국면이 2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상승 동력이 약해져 당장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종합주가지수가 오르기 위해서는 저가 매력으로 한번 올랐던 종목들이 다시 상승해야 한다. 아직은 순환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상태로는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 상승 지속 기간이 짧고, 업종별로 등락이 빈번히 엇갈려 연속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증권주를 마지막으로 가격이 싼 주식은 사실상 사라졌다. 그만큼 종목 선택이 힘들어졌다는 의미가 되는데, 가격 메리트에 이익 증가가 뒷받침되는 종목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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