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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균형의 왕 #14

중앙일보 2017.02.26 00:02
<펄프극장>
 
나는 몇 년 전부터 김경주 시인과 여러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다. 언뜻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실은 그와 나는 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가끔 누군가와 만난 자리에서 그와의 공동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이런 이야기를 해온다. “김경주 시인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르던데요. 시하고 많이 달라서 놀랐어요.”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하루 종일 우수에 차 있거나 세상에 없는 계절을 시도 때도 없이 고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신에 그는 인조인간처럼 잠을 안 자고, 끊임없이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즐겨 하는 사내였다. 사람들은, 인간은 누구나 비애와 농담을 함께 머금을 수 있음을 자주 잊는다.
 
김경주 시인의 에세이집 <펄프극장>은 내가 아끼는 책 중 하나다. 자주 읽지는 않지만 가끔 꺼내서 한 챕터씩 읽곤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3일에 평균 1번꼴로 나를 놀리던 기억(“힙합 평론을 쓰면서 왜 친한 흑인 친구가 한 명도 없어?”)을 떠올리기도 했고, 이별 후유증은 과소비로 버티는 법이라며 2주간 나로 하여금 300만 원을 쓰게 했던 몇 년 전 여름의 일도 기억해냈다(나는 보통 결혼식에 안 가는 거로 복수를 하는데 그에게는 소용없는 방법이다). 그만큼 <펄프극장>은 장난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책이 실은 장난기로는 시시하게 덮어버릴 수 없는 아이디어와 재기, 문장력, 디테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 나를 감탄하게 하다가, 미치고 팔짝 뛰게 하고, 끝내는 조금 외롭게 만든다. 외로움을 못 견디고 울면서 달리다가 도깨비방망이를 내리치면 그때마다 이런 책이 내 이름으로 한 권씩 뚝딱 나왔으면 좋겠다.
 
열등감에 반지하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말한다. 이 책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사소함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허황된 상상, 그리고 실없는 농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나는 <펄프극장>의 생생한 얼간이스러움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뜬금없이 왜 다른 사람의 책 이야기를 하냐고? 다 이유가 있다. 건방진 말이지만 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지금 ‘정확한 추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고마워하지는 않아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예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다음의 항목에 많이 공감할수록 당신이 <펄프극장>을 좋아할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다음의 항목에 많이 공감할수록 당신과 나는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다. 특히 10개 이상 공감한 사람이 있다면 내게 메일을 보내주기 바란다. 당장 연남동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테니. murdamuzik@naver.com 이다.
 
- 영화 <건축학개론>을 극장에서 두 번 보고 두 번 다 남이 알아챌 만큼 울었으며,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다.
 
- 남들은 나에게 뻔뻔하다고 하지만 나는 나를 fun! fun! 하다고 생각한다.
 
- 만화 <진격의 거인>을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인의 거대함이나 작품에 숨은 일본의 야망 따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에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미카사의 순정이다.

 
- 왕가위의 영화를 볼 때 큰 가위를 옆에 두고 본 적이 있다.
 
- 사람은 주기적으로 허세로 삶을 견디는 시기가 있다고 믿는다.

 
- 영화 <러브레터>의 “나는 태연한 척하며 그걸 주머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앞치마에는 어디에도 주머니가 달려있지 않았다.”라는 대사를 신의 한수라고 생각한다.
 
- ‘292513’의 뜻을 아직도 찾아 헤맨다.
 
- 단행본 <안네의 일기>를 읽고 삘 받아서 자물쇠 달린 일기장을 구입했고, 매일 일기를 쓰다가 독일군한테 걸리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접은 적이 있다.
 
- 짝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어버버 하다가 사람들 앞에서는 베이비라고 부르며 으스댄 적이 있다.
 
- 영화 <첨밀밀>을 보고 한동안 진가신을 영화의 신으로 섬겼고, 자전거 씬에서 장만옥이 앞뒤로 다리를 흔드는 장면을 100번 이상 돌려본 적이 있다.
 
- 내 이름이 만약 혜민이라면, 혜민스님에게 “혜민스님, 제 이름도 혜민이에요.”라는 편지를 보냈을 것이다.
 
- 인간은 결국 2짱일 뿐이고 1짱은 자연이다.
 
- 서재필 박사 같은 안경을 끼고 수염을 길렀으며 긴 코트를 입은 남자를 볼 때면 홍콩에서 보낸 킬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한다.
 
- 껌을 맛없게 씹는 사람을 저주한다.
<솔직한 사람>
 
방송을 함께 하던 피디가 사정상 방송을 떠나게 됐다. 그가 작년에 내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어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위에서 갑자기 이 프로그램을 맡으라고 발령이 떨어졌는데, 자기는 힙합의 힙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제발 도와달라고, 그는 절박하게 내게 요청해왔다. 그때 나는 사실 그 방송에 함께하기가 조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밀린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였다. 관심 없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니 내가 마음을 조금 고쳐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출연료도 나올 테니까. 그렇게 6개월 정도를 함께 했다.
 
방송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매번 솔직하게 말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처음에 난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내가 뭘 특별히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었나? 없다. 뭘 일부러 솔직하게 말하려고 의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을 어떤 사건이라도 있었던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솔직함’과 관련된 어떤 사건도 없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하고 싶은 말이나 원하는 게 있어도 솔직하게 말 안 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제야 그 말이 칭찬인 걸 알았다. 특별히 무얼 하지 않고도 받은 칭찬. 있는 그대로의 나로 매 순간 행동했을 뿐인데 받은 칭찬.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해내기 어려운 일로 받은 칭찬. 더불어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내가 평소에 자주 겪던 미묘한 어려움(?)의 실체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나에게 들어온 섭외나 제안과 관련해 업무 담당자와 소통할 때, 그동안 정확히 무엇이 나를 어렵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나의 경우, 업무 담당자와의 소통에서 갈등이 생겼던 이유는 그들이 무례하거나 개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대신에 갈등은 이럴 때 발생했다. 먼저, 그들이 나의 (이미 내 말에 드러나 있는) '진의'를 파악하려고 애쓸 때 갈등이 발생했다. 그들은 내가 정확한 진의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최소한 100%의 진의를 드러내고 있지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진의는 늘 나의 말이나 글에 정확히 담겨 있었다.
 
한편, 업무 담당자들이 과도하게 나의 심기를 살필 때도 갈등은 발생했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대접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불쾌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통하는 과정에서 꼭 좋은 말만이 오갈 수는 없다. 어떨 때는 요청사항을 조금은 딱딱한 말로 정확히 해두어야 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부당하다고 느낀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일과 관련한 영역에 있을 뿐, 사적인 화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존심을 세우려는 것도 아니다. 죄송하다는 말이 듣고 싶거나 갑질을 하려고 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평등한 관계 위에서 합리적으로 소통하며, 요청할 것은 요청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업무 담당자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헤아려보는 순간, 나는 잠시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괜히 그럴 리가 있나. 평소에 하고 싶은 말도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솔직하게 말 안 하고, 알아들을 수 없게 말해놓고 나중에 남 탓을 하고, 말에 복선을 잔뜩 깔아놓고 상대방이 알아서 알아듣길 바라고, 업무 담당자를 자기보다 낮게 보고 하대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니겠나. 그래서 피디가 방송을 떠나며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내게 한 것 아니겠나. 당연한 일을 했음에도 그게 고맙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어버리지 않았냐는 이야기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메일에 답장을 보낼 때면 맨 아래에 달아놓는 문구가 있다. ‘제 말에 숨은 뜻이나 복선은 없으며 있는 그대로 알아들으시면 됩니다.’
 
아무튼, 다시 저녁식사 자리로 돌아가서, 누군가에게 ‘솔직한 사람’으로 남는 건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저녁을 먹고 나오며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볼 테니까 너무 진지한 이별은 안 하는 걸로 하시죠. 지난 6개월은 저에게도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전 안 좋으면 좋다고 말 못 하는 사람인 거 아시죠...”
 
하지만 솔직함에도 균형의 묘가 있는 법. 이 복잡하고 상처받기 쉬운 세상에서 최대한 ‘나 자신’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것도 성취하는 삶이란 역시 해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확실히 고난이도다. 이 균형을 매 순간 잡아내려 노력하는 일이 아무래도 앞으로의 삶에 있어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든다.
 

작가 소개    
대중음악 평론가, 혹은 힙합 저널리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연재 중.
레진코믹스 힙합 웹툰 <블랙아웃> 연재 중.
<서울힙합영화제> 기획 및 주최.
<건축학개론>을 극장에서 두 번 봤고 두 번 다 울었음.
 
주요 저서 및 역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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