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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이야기 해줄까 #14. 이야기 해줄까 - 로테는 고양이의 이름 (2)

중앙일보 2017.02.22 00:02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좆이요.”

 
여섯 살 조지의 대답은 ‘조지’로 해석되었다.

조지의 할아버지는 기부를 좌표로 삼으며 타인을 돕는 일에 생을 쏟았다. 가족들도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존경의 마음을 다했다. 남을 돕는 건 희생이 당연히 따르니 늘 가난했지만 크게 불행하지 않았다 했다. 돈은 모아두면 똥이 된다는 할아버지 신념에, 한 번도 돈 걱정 안 하고 살아본 적 없지만 그것에서 비롯한 불편과 파동을 기꺼이 감내했다.

딱 한 번 출연한 방송 덕분에 조지의 할아버지에게는 휴머니스트라는 이름이 달렸다. 그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자원봉사는 물론 폐지와 병, 옷가지, 온갖 고물을 주워 팔아 기부했다. 사람이 사람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일을 실천하는 것으로 두세 번 신문에 나오기도 했다. 나는 중학생 때 그를 처음 보았다. 모든 수식과 상관없이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로 기억하는데 이상하게 하나의 감촉만 생생하다. 어쩌다 손을 잡게 되었고 옹이가 박힌 손가락들의 서걱거리던 느낌은 아직도 살아 있다. 그 온몸으로 존경을 받는 할아버지가 “좆이요.”를 조치요, 조치요, 그러다 조지로 불러주었으니 조지도 조지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무리 절망스럽거나 슬퍼도 어떻게든 그것에서 희망이나 좋은 의미를 도출하려는 게 사람 살아가는 일이니 나도 별다른 불만은 없다. 조지는 자기 별명이 뭔가 이국적이고 휴머니스트 할아버지와 맞물려 묘한 느낌으로 가닿는 것을 즐긴다. 그럴 때 조금은 웃어주고 싶었지만 그건 좀 묘한 일이고 좋지 않아 그만두었다.
 
“아이고, 아이고 어째.”
 
중년 여자가 배수로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로테를 보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바닥에 낮은 자세로 엎드려야 한다. 중년 여자와 조지가 들여다보는 곳을 나도 보았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새끼 고양이가 조지의 손가락을 붙잡으며 장난쳤다. 살짝 보이는 발바닥은 분홍빛 젤리 같고 온통 까만 몸에 군데군데 하얀 반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여운 생명체였다.

로테가 희미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새까만 눈과 마주치자 쏴아아 파도가 밀려왔다. 왜 조지가 혹독한 더위의 길을 날마다 걸어왔는지 조금 알겠다.

조지가 소시지 껍질을 벗겨 틈새로 밀어 넣자 로테는 조금씩 깨물었다. 배수로에 눈을 박고 허공으로 엉덩이를 든 중년 여자가 자꾸 아아, 신음 소리를 냈다.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계속 닦아내면서도 일어날 줄 모른다.

갑자기, 와아아.

머리가 새까맣게 반질거리는 초등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조그만 입들이 쉴 새 없이 쫑알거리고 웃고 장난을 쳐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잠시도 무엇도 쉬지 않았다. 여자애 하나가 동그랗게 반으로 자른 종이컵을 배수로 속에 떨어뜨렸다. 어찌나 조준점을 잘 맞추는지 밖으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종이컵에 물을 따랐다. 바가지머리에 코가 납작한 남자애는 봉지에 담긴 과자를 그 옆에 쏟았다. 쉬지 않고 재잘거리면서도 아이들은 숙련공처럼 움직였다. 이제 조지와 나와 중년 여자와 아이들 모두 엉덩이를 허공으로 들고 로테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쉿. 남자애 하나가 입에 손을 댔다. 과자를 먹는 동안 방해가 된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게 떠들더니 하나의 손가락으로 시끄러운 입들이 다물어진다는 게 놀라웠다. 아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게 로테일지 아니면 로테를 향한 마음일지 모를 일이다.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여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같았다.
 
“난 소시지, 너희들은 과자야?”
 
조지가 물었다. 아이들은 조지를 삼촌으로 불렀다. 불알친구까지는 아니지만 십 년 넘게 봐오던, 여태 알고 생각하던 조지가 그 조지가 아닌 것 같았다. 조지는 조지일 뿐 다른 이름이 될 수 없던 조지가 정말 그 조지인가 싶었다.
 
“내일은 통조림 가져올 건데 너희들은 뭘 준비할 거니?”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소시지, 사료, 빵, 사탕으로 나뉘었다. 조지가 고양이 사료가 좋겠다고 하자 아이들이 바닥에서 일어나 와아아 뛰었다.
 
“아주 제대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구나.”
 
내 말에 무슨 테러집단이냐,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게, 하고 조지가 사나운 눈으로 받아쳤다. 정말 감탄해서였는데 아이들 때문에 옆으로 갈 수 없어 말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정말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내 친구 조지도 배수로에 갇힌 로테도, 이곳을 오가며 로테를 돌보는 아이들과 어른들도.

아이들이 돌아가자 한여름 오후는 다시 고요해졌다.

중년 여자도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흘린 땀의 흔적들로 바닥이 어지러웠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로서는 머리카락이라도 뜯어먹을 지경이다.
 
“야, 조지. 이제 밥 먹으러 갈 거지?”
 
손바닥을 탁탁 털며 물었다. 쏟아지는 햇볕으로 정수리가 바싹 타들어갔다.
 
“기다려봐.”
 
내가 알던 그 조지가 아닌 것 같은 조지가 말했다.
 
이상하지. 몸 안 어딘가 꿈틀, 자꾸 꿈틀.

조지를 향한 이런 꿈틀거림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나 조지를 찾으면서도 그랬다. 아마 시작은 이 장면이겠다.
 
“바람에서 봄 냄새가 나. 마음을 기울여봐. 계절마다 냄새가 있거든.”
 
“웃기네.”

 
우리는 뭐 이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다만 그 장면이 신호탄인 것처럼 이후에는 자주 그랬다. 조지가 감상을 말하면 나는 쳇, 쳇 콧방귀를 뀌었다. 이상하게 고깝고 이상하게 우습다. 이유도 모른 채 고깝고 비아냥대는 일을 나는 매번 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조지가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폭탄을 쏟아부어도 한결같은 얼굴의 조지였다. 그에게는 그만의 방식 같은 게 있다. 조지와 나의 균형점은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남녀 사이 불꽃같은 건 절대 일지 않아. 오랫동안 알아온다는 것과 감정의 무르익음은 별개의 것이다. 연애라는 게 한쪽이 좀 허물어지거나 살짝 비껴나야 불꽃 비스무리하게라도 솟아날 텐데, 그런 틈새가 없다. 우리는 너무 단단하고 오랫동안 변하지 않으며 흘러온 사람들이었다.
 
휴대폰 시간을 보니 세 시 십오 분이었다.

지글거리는 한낮 거리를 걸어와 로테를 보고 나자 두 시간이 지났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므로 조금씩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나는 배수로에서 폭염을 견디는 작은 생명체 위에 있었다. 더위와 허기로 쩔쩔 매는 일을 들키고 싶지 않아 부러 조지 옆에 붙었다. 아까보다 짙어진 땀 냄새가 났다.
 
“조금만 참자.”
 
조지가 말했다. 땀이 배어나는 그의 콧날을 곁눈으로 바라보았다. 조금만 참자고 말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진심이 느껴지는 한 마디로 허기와 한낮 뙤약볕과 온몸으로 흐르는 땀과 몸으로 감겨드는 냄새나고 축축한 옷과 부끄러운 내 희생의 깊이를 견딜 수 있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는 이렇듯 작거나 크게 고통과 절망과 절박함을 견디는 일이 필요하겠지. 더 나아가 조지의 할아버지와 그들 가족이 감수했다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일에 고개가 숙여졌다. 고통을 참는 것, 불편을 감수하는 것,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일은 아아, 숭고하고 아름답다. 조지의 한 마디 진정 그거면 충분했다.
 
“조금만 참자. 금방 나올 수 있을 거야.”
 
조지가 배수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내게 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실룩거리는 입을 다물고 마른침을 삼켰다. 모든 것은 로테의 것이고 나는 지금 주먹만 한 새끼 고양이 로테의 세계 속에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나는 내 친구 조지 옆에 있고 조지는 로테를 구해내려 노력 중이니. 이 순간 조지와 나에게는 그것이 모든 것이고 다였다.

멀리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소방차인가 했는데 동물구조대라 쓰인 차량이다. 하늘색 제복의 덩치가 큰 남자 둘이 차 밖으로 나왔다. 조지가 그들 쪽으로 걸어가 뭐라 말을 건넸다. 대원들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조지가 깊숙이 인사를 했다. 동물구조대원들은 배수로 앞으로 와 두 번째 패널까지 들어 올렸다. 나는 조금 떨어지려 서너 발짝 물러났다.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를 스쳐갔다. 조금 전까지 잠잠하던 나뭇잎이 쏴쏴쏴 흔들렸다.

후드득.

어어, 하며 조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후둑. 물방울 하나가 내 입술로 떨어졌다. 저 멀리서부터 어둑해졌다. 먼지가 피어오르며 매캐하게 흙냄새가 일고 빗방울들이 떨어진다. 모든 것들이 후드득후드득 뼈마디를 꺾으며 허공으로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에헤, 하필이면. 무릎을 꿇은 채 배수로를 들여다보던 대원 하나가 혀를 찼다. 시커먼 구름들이 우우 머리 위로 몰려들었다. 빗방울이 떨어진 제복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새겨졌다.
모든 일들은 로테에서 비롯했다.

배수로 고양이 새끼는 로테.

어쩐지 녀석의 이름이 불편하다. 기껏 고양이새끼를 구하려 뜨거운 길을 걸어왔다니.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고 이렇게 불안한 영혼으로 생을 건너고 있는데. 없어져도 사라져도 무방할 고양이 새끼를 구하러 와 밥도 못 얻어먹으며 견딘다. 조그만 목숨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비까지 맞으며 이곳에. 숭고하거나 대단한 인간도 아닌 그깟 로테를 위해. 모두 이곳에.
입술에 묻은 비를 닦아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는 매번 장면을 부르지.

매캐한 흙먼지가 일어. 비릿한 냄새가 물고기 비늘처럼 결들을 일렁이며 내 쪽으로 헤엄쳐 오고. 그런 장면은 상당히 폭력적이라 입체 그림처럼 물의 세계가 눈앞에서 일어선다.
 

작가 소개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년, 단편 『아칸소스테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단.
창작소설집 『마리 오 정원』
테마소설집 『2012신예작가』
12월 테마소설집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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