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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감독, 인간의 비열한 구석까지 끌어안고 싶다

중앙일보 2017.02.21 03:01

그날도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는 집을 나서는 아내 나츠코(후카츠 에리)에게 잔뜩 짜증을 부렸다. 그게 마지막이 돼 버렸다. 나츠코가 탄 관광버스가 절벽 아래 겨울 호수로 곤두박질치는 순간. ‘아주 긴 변명’(원제 永い言い?, 2월 16일 개봉)은 그렇게 혼자된 사치오가 같은 사고로 엄마를 잃은 두 아이를 돌보며 어떤 감정을 정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사치오가 제대로 된 울음을 토해 낸 것인지, 그리하여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된 것인지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난 뒤에도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니시카와 미와(42) 감독이 생각하는 인간이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영화만큼이나 솔직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김진솔(STUDIO 706)

사진=김진솔(STUDIO 706)

 

영화로 만들기 앞서 동명 소설을 먼저 썼다(2월 중순 국내 출간 예정).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이야기의 단초가 됐다고.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후 일본 영화인 대부분이 ‘이 시점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과, 영화로 이 사건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달렸다. 당시 온갖 매체에서 지진 관련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졌다. 끔찍이 사랑하는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만약 사이가 틀어진 가족을 뜻밖의 사고로 잃었다면 남겨진 사람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걸 실마리로 2011년 겨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적 기억을 파헤치는 형제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 ‘유레루’(2006)를 연출했을 때는,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이후 동명 소설로 펴냈다. 소설을 먼저 쓰고, 그걸 간추려 영화로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인공 사치오는 나츠코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하지 못한다. 장례식장에서도 별다른 감흥 없이 절차를 따르고.
“그 모습에 나 자신을 많이 투영했다. 장례식장처럼 모두 눈물짓는 곳에 갔을 때 이상하게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는 기분을 종종 느낀다. 무턱대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기에는 기분이 너무 복잡하다고 할까. 그곳에서 슬픔을 왈칵 쏟아 내면 감정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소화시키지 못한 감정을 혼자 오래 끌어안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유명한 소설가로, 아내에게 투정만 부리고 바람을 피우며 이기적으로 구는 사치오는 극 초반만 해도 몰인정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한데 같은 사고로 엄마를 잃은 두 아이 신페이(후지타 켄신)와 아카리(시라토리 타마키)를 돌보는 장면에서는 퍽 다정하고 어른스럽더라.
“사치오가 근본부터 악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자신 말고는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는 삶을 살다 보니 지금에 이른 것이겠지. 나츠코의 죽음을 계기로, 이전까지 그가 절대 어울릴 일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만나게 하고 싶었다. 자신과 다른 처지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은 비단 사치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어울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 영화에 담았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가(웃음).”


 
사치오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사람들 앞에서 거짓으로 꾸며 내거나, 아내의 속마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장면은 무척 오싹하다. 어떤 인물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을 아주 차갑게 잡아내면서도, 끝내 그 인물을 끌어안는 연출은 당신 영화의 대표적 특징이다.
“내가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에는 어둡고 냉정하며 비열한 구석이 있다. 그런 모습에 특별히 흥미를 느낀다. 그러한 존재인 인간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소설을 쓰고 영화를 연출하려 한다.”
사치오가 아내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하지 못한다면, 정반대로 요이치(타케하라 피스톨)는 죽은 아내의 기억을 계속 부여잡고 있다. 삶의 큰 슬픔을 삭이는 바람직한 방법은 무엇일까.
“음…. 아, 그건 정말 모르겠다. 사치오와 달리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툭하면 눈물을 쏟는 요이치 역시 문제가 있다는 걸 나타내고 싶었다.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고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아들 신페이를 힘들게 하지 않나.”
 
사치오는 요이치 가족과 시간을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긴 변명’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다. 그 제목이 아내 나츠코를 향한 ‘뒤늦은 사과’가 아니라 ‘아주 긴 변명’인 이유는.
“(한참을 생각하다) 사치오를 일방적인 가해자로 여기고 싶지 않았다. 관계의 심연을 들여다봤을 때 한쪽만 일방적으로 잘못을 하는 인간관계는 없다. 나츠코는 모두에게 잘하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 완벽함이 사치오를 궁지로 내몰았을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 두 사람은 제대로 된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 사이가 돼 있었다. 아내의 죽음을 곱씹을수록 사치오는 아내에게 못다 한 말을 털어놓고 대화하고 싶지 않았을까. ‘변명’이란 말은 그런 의미다.”
첫 장면과 비교할 때, 마지막 장면의 사치오는 그다지 크게 성숙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하하.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적으며) 사치오를 연기한 모토키 마사히로씨에게 그 말을 전해 줘야겠다. 자기 연기가 어떻게 보이는지 끊임없이 물어보거든(웃음). 영화나 소설에서 한 사람이 어떤 경험을 통해 성장과 성숙을 이뤘다고 말하는 게 쉬울 수 있겠지만, 사람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존재다. 난 사람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깨닫고 변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마지막 장면의 사치오가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내의 죽음과 요이치 가족과의 시간이, 그로 하여금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화목한 가정의 이면을 들추는 ‘산딸기’(2002)부터, ‘유레루’, 시골 마을 의사의 과거를 파헤치는 ‘우리 의사 선생님’(2009), ‘아주 긴 변명’에 이르기까지 여성 감독으로서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한 영화를 발표해 오고 있는데.
“‘여성 감독인데 왜 영화 주인공이 다 남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여성 감독이 워낙 소수인 데다, 여성 감독이라면 여성 캐릭터를 좀 더 많이, 섬세하게 그려야 한다는 등의 고정 관념이 있는 듯하다. 여성 감독이더라도 소재·캐릭터·이야기·장르 등 모든 면에서 훨씬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역사가 100년 남짓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여성 감독이 더 큰 자유를 누리기까지 앞으로 100년 동안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김진솔(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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