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거진M] ‘퍼스널 쇼퍼’는 야심작인가 실패작인가

중앙일보 2017.02.21 00:01
올리비에 아사야스(62) 감독의 ‘퍼스널 쇼퍼’(원제 Personal Shopper, 2월 9일 개봉)가 지난해 5월 제69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상영작으로 첫선을 보였을 때의 일이다. 젊은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 이후 다시 프랑스의 작가 감독 아사야스와 뭉친 작품으로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상영이 끝난 극장에는 야유가 쏟아졌다. 이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퍼스널 쇼퍼’가 감독상을 탄 것. 이 영화가 “아사야스 감독의 최근 최고작이자, 스튜어트가 지금껏 보여 준 최고의 연기”(가디언), “서스펜스영화가 되려 하지만 갈수록 텅 빈 작품”(할리우드 리포터) 등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이유를 살폈다. 그에 대해 프랑스의 아사야스 감독에게 서면으로 들은 답변도 함께 녹였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스릴러?
‘이마 베프’(1996) ‘클린’(2004) ‘5월 이후’(2012)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등 삶과 예술의 모순을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으로 풀어내는 영화를 만들어 온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그에게도 ‘퍼스널 쇼퍼’는 새로운 시도였다. 그 스스로는 이러한 시도를 “‘보이지 않는 존재’와 주인공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고 정의한다. 그 점이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장르다. ‘퍼스널 쇼퍼’는 아사야스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심령 스릴러다. ‘퍼스널 쇼퍼’에 대한 평가는 가장 먼저, 이 영화를 ‘심령 스릴러로 규정하느냐’ 아니면 ‘그 외피를 두른, 그 너머의 이야기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인 키라(노라 본 발드스타텐)의 퍼스널 쇼퍼, 즉 매장에서 옷을 대신 가져다주거나 구입하는 일을 하는 미국인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란성 쌍둥이로, 남매 모두 영혼과 접촉하는 능력을 지녔다. 모린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쌍둥이 오빠의 영혼이 자신에게 접촉해 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모린이 오빠가 살던 집에 홀로 남아 영혼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뿐 아니다. 극 곳곳에서 형체를 드러냈다 금방 사라지는 정체불명의 희뿌연 존재를 보여 주며 관객을 시종일관 긴장하게 만든다.

그 희뿌연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모린은 오빠의 영혼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 만남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그 만남의 결과는 무엇인가. ‘심령 스릴러’라는 장르의 문법을 따르자면, ‘퍼스널 쇼퍼’는 이 물음에 충실히 답하는 작품이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그 존재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모린이 어떤 존재와 만나는 듯한 결말도 모호하게 처리한다.
 
‘이 영화의 장르를 어떻게 정의하겠느냐’는 질문에 아사야스 감독은 “‘퍼스널 쇼퍼’를 스릴러 혹은 공포영화라 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모린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장르적 요소를 끌어왔다는 것이 정확하다. 나는 ‘장르’라는 개념에 별다른 흥미가 없다.” 그는 자신이 영화에 끌어온 장르적 요소란, 장르의 문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관객이 스릴러영화를 보며 스크린에 펼쳐지는 폭력·두려움·불안 등에 육체적으로 반응하는 작용에 관심이 있다. 관객이 모린의 이야기 속에서 공포·불안 같은 감정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퍼스널 쇼퍼’는 영혼 혹은 유령이란 소재로 관객을 긴장시키지만, 그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을 해 주는 심령 스릴러의 문법을 좇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대를 유유히 빗겨 나간다. “나는 유령을 보여 주기만 하고 누구든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그 존재에 대해 완전히 열어 놓았다.” 아사야스 감독의 말이다.
 
전대미문의 문자 스릴러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목 중 하나는, 극 중반 모린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존재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퀀스다. 여기서 아사야스 감독은 어디론가 향하는 모린이 계속 메시지를 확인하고, 모린의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메시지를 비추는 영상만으로, 20여 분 동안이나 극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오로지 메시지로 오가는 간명한 문답의 호흡, 그 날카로운 내용, 박자감 넘치는 편집을 통해 이렇게 짜릿한 영화적 긴장을 만들어 내다니, 그 시퀀스를 통해 ‘문자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느낌이다.
이는 극 후반 모린을 궁지로 몰아넣는 살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통해 순간적인 긴장을 끌어올리는 데만 몰두할 뿐, 그 범인과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공들이지 않는다. 아사야스 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가 설명하는 대로 범인이 누구인지는 너무 명확”하고 그것이 밝혀지는 순간 “문자 메시지나 살인 사건이 더 이상 초자연적인 존재와 관련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심령 스릴러,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모린은 퍼스널 쇼퍼로 일하며 유명 패션 브랜드의 매장과 화보 촬영장에 드나든다. 그는 유명세와 거짓말이 난무하고 자본에 따라 움직이는 패션계를 지긋지긋해 한다. 그와 동시에 키라의 이름으로 빌린 화려한 드레스를 몰래 입어 보며 짜릿한 관능에 휩싸인다. “그 이중적 태도는 물질 만능주의, 돈과 명성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와 우리의 관계를 상징한다.” 이어, 아사야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양면성을 드러내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심령주의(心靈主義·영매를 통해 죽은 사람의 영혼과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힌 모린은 그에 관한 문헌이나 동영상 자료를 노트북, 스마트폰, 유튜브 등 최신 기기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찾아본다. “물질 세계와 첨단 기술의 끝에 다다를수록, 오히려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내면의 어둡고 불투명한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다.”
또한 그것은 영혼을 대하는 모린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존재에게 더 확실한 증거, 그것도 눈에 보이는 물리적 증거를 보여 달라고 계속 요구한다. 이에 대해 아사야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모린은 오빠의 영혼이 자신을 만나러 올 것이라 믿는 동시에, 그런 일이 진짜로는 일어날 수 없다는 의혹도 품고 있다. 패션계와 심령주의 그리고 영혼을 대하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모린이 진짜 만나는 것은 다른 존재가 아닌 자기 자신이다. 그가 그토록 문을 두드렸던 존재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의 잠재의식이었던 것 아닐까.”

심령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이 영화가 진짜 관객을 데리고 가려 했던 지점, 그 발견이 얼마나 가치 있게 느껴지느냐에 따라 평가는 또 엇갈린다. 미국의 영화 비평 웹사이트 ‘인디와이어’는 이 영화를 “유령 이야기로 가장했지만, 실상은 인간 내면에서 슬픔이 일어나는 과정을 신중하고 풍부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라며, “매체에 통달한 자만이 영화 언어를 매만져 할 수 있는 실험”이라 극찬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연예지 ‘버라이어티’는 “스튜어트마저 김빠지고, 제대로 풀어내지 않은 이야기를 구원할 수는 없었다”고 혹평했다. 엇갈린 평가에 대해 아사야스 감독은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험하며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영화의 목표라 생각한다. 영화는 도전적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과연 이 영화는 아사야스 감독의 실험과 도전의 어떠한 이정표로 남을까. 그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