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쇠락한 파리 아트페어에 새 생명 … 그 뒤엔 ‘여교황’ 있었다

중앙일보 2017.02.19 20:02 경제 3면 지면보기
 서울 온 ‘피악’ 총감독 제니퍼 프레이
 
 

'현대미술계의 여교황(Women pope of the contemporary art)'

엄격한 원칙 내세워 갤러리 선정
위작 논란 생기면 바로 작품 내려
세계 3대 아트페어 명성 되찾아
“한국 젊은 작가들 해외로 더 나가야”


 세계적 미술품 갤러리들의 장터인 아트페어 ‘피악(FIAC)’의 총감독 제니퍼 프레이의 별명이다. 그만큼 현대미술계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유럽의 미술시장이 재정위기로 한껏 움츠러든 상황에서도 피악은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부상하며 옛 영화를 되살리고 있다. 1974년 출범한 피악은 독일 아트 퀼른, 스위스 바젤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아트페어였다.
 
그러나 93년 유럽에 불어 닥친 불황과 영국 프리즈와 같은 신생 아트페어의 돌풍에 쇠락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매년 피악이 열렸던 파리 그랑팔레(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미술관)가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페어 장소조차 파리 외곽으로 밀려났다. 심지어 프랑스 예술 전문지 ‘보자르 (Beaux Art)’는 피악 30주년을 맞은 2003년 ‘피악 30주년: 생일인가 장례날인가’라는 특집기사를 실었을 정도다.
 
 
지난해 10월 열린 피악의 전시 부스. [중앙포트]

지난해 10월 열린 피악의 전시 부스. [중앙포트]

위기를 느낀 피악 주최측은 2003년 뉴질랜드 출신의 아트딜러이자 갤러리스트였던 프레이를 예술감독으로 전격 영입했다. 프레이는 취임하자마자 갤러리 선정위원회부터 수술했다. 과거 친한 갤러리스트들끼리 짬짜미로 참여 갤러리를 정하던 걸 주최측이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정했다. 그 결과 2003년 이전까지 참여했던 갤러리 가운데 20%만 남고 나머지는 대부분 물갈이됐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랑스 피악 총감독 제니퍼 프레이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랑스 피악 총감독 제니퍼 프레이

 
그러자 피악을 떠났던 명문 갤러리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 2006년 재개장한 그랑팔레도 피악을 다시 선택하면서 세계 3대 아트페어란 명성도 되찾았다. 프레이는 그 공로로 2010년 피악 총감독으로 승진했고 2012년엔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 공로훈장을, 2015년엔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2016 프로젝트 비아 결과 공유 세미나: 비아 살롱(ViA Salon)'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프레이를 단독 인터뷰했다.
 
 
당신은 피악 예술감독이 된 뒤 막강했던 갤러리 선정위원회에 대한 지원을 끊고 어떤 컬렉터에게도 호텔이나 항공 등의 추가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2003년 피악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강력한 도덕적 원칙이 필요했다. 원하는 갤러리나 컬렉터를 초대하기 위해 당근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할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다. 컬렉터들을 초대해 따뜻한 환영과 함께 최고의 프랑스 미술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들이 오고 싶다고 느껴서 와야 한다.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부적으로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내가 매우 터프한 사람으로 평판이 나있는걸 안다. 그러나 이런 규모의 국제적인 행사에 걸맞은 질적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뉴질랜드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독보적인 리더십을 보여줬고 현재 세계 아트페어계에서 가장 장수한 디렉터인데 이런 리더십에 비결이 있다면
나는 갤러리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오랫동안 갤러리스트로 일했다. 피악의 수장으로 결정을 내릴 때도 늘 갤러리스트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 ‘현대미술계의 여교황’이란 별명도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난 매우 유연하고 열려있는 사람이다. 다만 예술이란 건 어떤 탁월함(excellence)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질적인 면에 있어서 타협이 불가능한 지점이 있고 이걸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이미 파리의 안정적인 갤러리 오너였다. 위기에 빠졌던 피악의 수장 자리를 어떻게 맡았나
사실 99년 큰 교통사고를 겪었다. 온 몸은 물론 뇌 손상으로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을 정도로 심각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은 충격을 받았고,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넉 달 후 어느 정도 회복이 돼 소파 겸 침대에 누워 갤러리에서 일을 보기 시작했지만 결국 2003년 7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예술이 없는 삶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우울증도 겪었다. 그런데 그해 프랑스 예술잡지 보자르가 피악의 위기에 대한 특집기사를 냈다. 다급해진 피악 주최회사 ‘리드 익시비션스(Reed Exhibitions)’가 수소문하다 마침 내가 갤러리 일을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나도 끔찍한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만큼 나의 예술인생을 만들어준 프랑스에 뭔가 보답하고 싶어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제니퍼 프레이 총감독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제니퍼 프레이 총감독

 
 
예술품 거래엔 다양한 스캔들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이우환 작가의 위작 논란이 큰 이슈가 되었다. 검찰의 수사결과 위작이란 결론이 나왔고 범인도 자백했지만 정작 작가는 이 결과를 부정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위작의 역사는 길고 새로운 일도 아니다. 더욱이 작가 본인이 논란이 된 작품을 진품이라고 주장하면 이를 반박하기는 참 어렵다. 아트시장에서 가격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작품의 진위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엄중해야 한다. 피악에선 논란이 된 작품은 바로 내리도록 조치한다.
 
 
한국 예술작품은 어떻게 보나
한국을 공식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 대해 보다 넓게 이해하게 됐다. 여러 해 피악에 참여한 국제갤러리와 지난해 처음 참여한 PKM갤러리 모두 훌륭하다. 다만 ‘민중예술’처럼 아직 조명을 받지 못한 예술 사조들과 좀더 젊은 갤러리와 작가의 작품을 해외에 선보이는 게 필요하다
 
◆FIAC=1974년 프랑스에서 출범한 국제 아트페어, 즉 미술품 장터다. 스위스 아트바젤, 영국 프리즈 아트페어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힌다. 매년 10월 파리에서 열린다. 전시전문 기업 리드 익스포지션이 운영하는 민간행사다.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지는 않지만 파리시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긴밀한 협력 속에 열린다. 지난해의 경우 주행사장인 그랑 팔레와 프티 팔레 사이의 도로에도 차량 통행을 막고 작품을 설치,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튈르리 정원, 방돔 광장 등 곳곳의 명소에도 야외 조각이나 설치작품을 선보이곤 한다. 전세계 27개국, 186개 갤러리가 참가한 지난해 행사에는 1만 2000여명의 VIP관람객을 비롯, 7만 2000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한국에서는 국제 갤러리와 PKM갤러리가 참여했다. 정식명칭은 ‘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국제현대미술전시회)‘. 그 머릿글자를 따서 흔히 FIAC이라 부른다.
 
김주원 아트페어 아시아나우 큐레이터 joannejrkim@gmail.com
미세먼지 실험 아이디어 공모, 이벤트만 참여해도 바나나맛 우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