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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의 상큼 인터뷰] 생각의 힘 필요한 시대, 카피도 책방도 핵심은 기획력

중앙선데이 2017.02.19 00:00 519호 8면 지면보기
[INTERVIEW 김수정의 상큼 인터뷰]
명카피라이터에서 책방 주인 된 최인아
 
겨울을 밀어내고픈 햇살이 덕수궁 돌담길에 잠시 내려앉았다 바로 떠났나 보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길을 걷기에는 꽤 쌀쌀했다. 찬 바람을 안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강북삼성병원 쪽으로 10여 분 걷다 만난 프란치스코(작은형제회)성당은 기도하는 이들의 평화로운 기운으로 따뜻했다.
책방 주인이 된 최인아 대표. 그가 평생 마음의 쉼터로 꼽는 정동 프란치스코성당 예수상 앞에 섰다. 김경록 기자

책방 주인이 된 최인아 대표. 그가 평생 마음의 쉼터로 꼽는 정동 프란치스코성당 예수상 앞에 섰다. 김경록 기자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같은 명카피를 만들어낸 최인아(56). 지난해 여름 ‘책방마님’으로 변신한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을 성당에서 만났다. “내 마음이 어디로 가나 생각해봤어요. 한참 동안 찾진 못했지만 광고쟁이 30년을 하면서 힘들고 부대낄 때 나를 평온하게 잡아준 곳이 이곳이라. 광고 전쟁터에서 지치고 지쳤던 30대의 제 모습이 떠오르네요.”
 
일터와 함께, 쉼터에서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에 최 대표는 정동 프란치스코성당을 꼽았다. “1990년대 후반 제일기획이 미국 광고대행사 보젤과 합작해 만든 ‘제일보젤’에서 근무했어요. 여기 성당 뒤였죠. 세례를 받기 20년 전이고 종교에 대해 생각도 하기 전이고. 갈피 못 잡고 힘들 때 오면 본당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어요. 한참 앉아 울기도 했어요. 좀 있으면 맘이 가라앉고 씻겨진 느낌이 나서 사무실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해외에 갈 때마다 그곳의 성당에 앉아 있다 오는 습관이 생겼단다.
 
최 대표의 젊은 날 마음을 다스려준 성당은 서울시민들이 걷고 싶은 길로 손꼽는 길위에 있다.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근대 역사와 문화 흔적이 주변에 흩어져 있는, 길을 걷다 고개를 들어 하늘만 한 번 쳐다봐도 ‘훅~’하고 큰 숨을 내쉬게 되는 힐링(healing)의 길이다. 그가 힘겨운 시기 잠깐씩 들렀던 프란치스코성당. 요즘엔 직장인 미사도 따로 마련돼 있고, 결혼식과 클래식 음악회도 열린다.

문 항상 열려 있던 성당서 평온 찾아
“마음에서 올라오는 소리에 꽤 귀를 기울이고 사는 편이에요.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명상까진 아니지만 마음에 떠다니는 부유물 같은 게 가라앉을 때까지 그냥 두고 저를 봐요. 유리할까, 불리할까보다 지금 내 안에서 원하는 게 뭔지. 그걸 길잡이 삼으며 살아왔네요.”
 
퇴사 3년 반 만에 서울 강남 선릉로에 자신의 이름을 딴 ‘최인아책방’을 열기까지 그가 한 마음의 작업이다. 그는 ‘아느 것이 힘이던 시대에서 생각이 힘인 시대, 지금까지의 방식은 더는 통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가는 시기, 책과 책방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북돋우고 퍼뜨리겠다’는 출사표를 던지고 책방을 열었다. 동네책방의 대표 주자다.
 
그의 책방도 프란치스코성당처럼 고층 빌딩이 빽빽한 도심 한복판에 있다.
 
“처음엔 20~40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막상 연세 지긋하신 동네 주민들, 멀리서 아이들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도 꽤 많이 있네요. ‘망하지 말고 책방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하는 주민들도 있어요.”
 
천장이 높고 분위기가 일반 책방과는 다르다.
“책을 많이 읽게 하는 방안을 연구해달라는 프로젝트를 받고 고민하다 ‘직접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공간’에 의미를 많이 뒀고요.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데 카페는 많고 늘 사람들로 꽉 차 있는 걸 보면서 모두들 집 바깥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계속되지만 인간은 몸을 쓰는 존재라 사이버 공간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 없고 균형을 찾으려는 본능이 있을 거라 봤습니다. ‘직사각형 콘크리트 빌딩은 안 된다. 내부는 각자의 서재처럼.’ 이런 콘셉트로 꾸몄습니다.”
 
이틀 전 오후에 찾아 본 최인아책방엔 손님 20여 명이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책에 푹 묻혀 있었다. 조용한 음악이 흘렀다. 천장 높은 서구 저택의 서재에 온 듯했다.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이럴 때일수록 통찰력!!!’ ‘요즘 재미가 부족한 당신에게’. 카피 장인으로 이름을 날린 책방마님이 붙인 책 분류표다. 창가 피아노 위엔 시집 20여 권이 편하게 누워 있었다.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했다는 손님 장진숙씨는 “책방이 사서 역할까지 해주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개인 서재 같은 최인아책방. ‘인간에겐 사이버 공간에서 벗어나 균형을 잡으려는 본능이 있다’는 책방주인의 생각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김경록 기자

개인 서재 같은 최인아책방. ‘인간에겐 사이버 공간에서 벗어나 균형을 잡으려는 본능이 있다’는 책방주인의 생각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김경록 기자

책장 분류표에 ‘요즘 재미가 부족한 당신…’
‘서재, 동네 살롱.’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페이스북 등에 소개하는 책방 이미지다.

 
“‘참신한 기획 없어?’ ‘좋은 아이디어 없어?’ 직장인이라면 맨날 듣는 소리잖아요. 광고쟁이였던 저도 그 과제 속에 살았고요. 수많은 쟁이들이 있죠. 영화쟁이, 그림쟁이, 글쟁이 이런 사람들이 아이디어의 싹을 어떻게 뽑아내는지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쟁이의 생각법’이란 강연 주제를 뽑았죠. 1탄으로 ‘카피라이터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했는데 바로 마감이 됐어요. 또 하나 주제는 ‘모색’입니다. 책방을 ‘생각의 숲’으로 내건 거와 같은 맥락인데, 광화문 촛불이 한참 타오를 때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최연혁) 등의 강연을 마련했어요. 4월 초엔 창업 특별 시리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가비가 있는지.
“강연엔 2만원, 콘서트는 3만원을 받고 있어요. ‘두어 시간 걱정, 스트레스 다 내려놓고 지적으로 충만한 시간 즐기시길 바란다’고 인사말을 해요. 오신 분들이 계속 오시네요.”
 
책방은 최 대표와 제일기획 시절 후배인 정치헌 디트라이브 대표와 함께 열었다. 정 대표는 경영을, 최 대표는 ‘얼굴마담’과 내용을 채우는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맡아서 하게 됐다”고 한다.
 
책방을 연 지 6개월 지났다. 운영은.
“우리 두 사람 월급을 안 가져가는 상태에서, 더 꼬라박지 않고 책방이 돌아가게 한다는 게 1차 목표인데 그 정도는 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 공채 최초 여성 임원이 됐을 때 ‘유리 천장’을 깬 인물로 각광받았다. 왜 51세에 그만두셨는지.
“2012년 여름에 신호가 목에 꽉 찼습니다. 연말까지만 하고 더 안 하겠다고 회사에 얘기했어요. 우리 업계도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지금까지의 수익 구조가 깡그리 바뀌고 있었죠. 부서장으로서 제가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여력이나 역량이 저한테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교육부 장관을 했던 이가 임기 중 물러나면서 ‘나는 이 직책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기에는 무능하다’고 했는데, 사직의 변으로 이보다 더 정직하고 멋진 게 어디 있나 생각하고 그 기사를 오려 놨었어요. 그 자리가 준 파워와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의 능력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그게 조직의 비극입니다. 더구나 전 30년 일하면서 의욕이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최 대표는 퇴사 당시 페이스북에 “나는 더 이상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련이 없다. 잘했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가진 능력을 다 쏟았다. 이제 됐다. 온몸이 신호를 보낸다”고 썼다.
 
책방을 낼 거라고 일찍부터 생각했는지.
“그건 아니에요. 근데 돌이켜보면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되고, 싹들이 맞춤 인연을 만나면 움을 튼다는 게 맞았어요. 저는 책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쓸 때 책 비중이 가장 높았고, 쉴 땐 책을 붙들고 있을 때 가장 편했습니다. 후배들을 챙길 때도 남자들이 술 마시면서 하던 일을 책으로 했어요. 제 휘하에 180~200명을 뒀을 땐데 평소 눈여겨본 책들을 알라딘 보관함에 뒀다가 생일을 맞은 후배들에게 의미 있을 법한 책을 골라 메모해 선물했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 관계의 끈을 맺는 방식이었죠. 미국 시카고 출장 때 ‘원 시티, 원 북’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시에서 그 달의 좋은 책을 선정해 시카고의 모든 책방 매대에 올려놓는다고 해요. 제가 갔을 땐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책방에 놓여 있었어요. 언젠가 나도 저런 걸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피라이터의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하면.
“크게 다르지 않아요. 30년 광고주를 모시고 살았는데 이제 책방 손님을 모시고 사는 걸로 바뀐 거죠. 결혼을 안 했는데 남편 시댁이 없는 대신 다른 분들을 모시는구나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해보고 싶은 일이 대개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일이었는데, 광고 카피도 클라이언트가 준 과제를 생각의 힘으로 돌파하고 그것을 말이나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이고요. 책방 일도 마찬가지죠. 둘 다 필요한 핵심 역량은 기획력입니다. 다만 그 전엔 클라이언트들이 예스해야만 실행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괜찮겠다 하면 합니다. 그 맛에 지금 막 저지르죠. 하하.”
 
100세 시대다. 인생 2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사람이 고민한다.
“퇴직 후 ‘시간이 돈’이던 삶이 ‘많은 시간을 적은 돈으로 사는 삶’으로 바뀌더라고요. 거기에 적응하고 나면 ‘쓰이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돈만 벌다 가는 인생이 아니고, 내가 가진 걸 나누고 내가 쓰이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위로 올라오던데요.”
 
그 일이 어떻게 찾아지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퇴직 후 바로 이 일을 했으면 지금쯤 자리 잡았을까? 아닌 것 같아요. 책방을 시작할 때도 주춤했고 하면서도 흔들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줄 수 있는 시간, 남의 눈에 괜찮아 보여야 하는데 또는 망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들이 지나가도록 스스로 납득시키는 시간의 응축이 필요해 보입니다.”

2호점? 고꾸라진 기업 많이 봤다
대형서점과의 경쟁에서 살아날 수 있겠나.
“책방의 생존은 기획력과 브랜드에 달렸다고 봅니다. 동네책방에선 주인장의 취향, 생각을 사는 건데 결국은 브랜드입니다. 똑같은 책이지만 대형책방의 책과 다른 의미를 고객들이 스스로 부여합니다.”
 
2호점을 낼 생각이 있나. 향후 계획은.
“그동안 기업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고꾸라졌는지 많이 봤습니다. 조금만 잘되면 규모 확장부터 하죠. 책방을 낼 때 출사표 메시지에 부합하도록 이곳부터 단단하게 채워나갈 생각입니다. 책을 사더라도, 음악회나 강연을 듣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신뢰라는 말이 많이들 써서 참 멋대가리 없는 말인데, 그 단어 속엔 ‘미더워’ ‘멋져’ ‘제대로 하네’ 등이 다 들어 있습니다. 고객들이 책방에 오면 ‘도심 속 숲 같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런 말을 계속 듣도록 책방마님이 잘 해야죠.”
 
 
김수정 국제선임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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