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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민통선 독수리의 역습

중앙일보 2017.02.18 01:11 종합 8면 지면보기
충남까지 원정 사냥
구제역·AI 전파 우려
21일 충남 금산군 진산면을 찾은 독수리들이 인삼밭 주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김성태

21일 충남 금산군 진산면을 찾은 독수리들이 인삼밭 주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김성태

700마리 찾아오던 파주 월동지
먹이주기 끊기자 반으로 줄어
장거리 이동, 바이러스 옮길 수도

민간인통제선 내 월동지에서 겨울을 나던 독수리들이 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 여파로 먹이 공급이 줄자 전국의 축산 농가 인근을 배회하면서 AI·구제역 확산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최대 규모의 독수리 월동지로 꼽히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장단반도에는 매년 11월 초부터 이듬해 4월 초까지 독수리 700∼1000 마리가 몽골에서 날아와 겨울을 난다. 일반인의 출입이 없는 민통선 내인 데다 정기적인 먹이주기가 이뤄져서다. 하지만 이번 겨울엔 장단반도의 독수리가 예년의 절반 이하로 크게 줄었다. 요즘엔 300여 마리만 월동 중이다. 먹이주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갑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은 16일 “AI와 구제역 여파로 정부와 지자체·기관의 먹이주기 행사가 크게 줄면서 지금은 문화재청과 파주시의 지원으로 협회 차원에서 먹이를 주는 정도”라며 “예산 부족 등으로 충분한 먹이 공급은 어렵다”고 말했다.

장단반도 내 월동지 대신 요즘엔 적성·탄현면 등 파주시 전역의 축산농가 주변에서 수십 마리씩의 독수리 무리가 자주 목격된다. 월동이 없던 충남 금산 등에서도 독수리 무리가 발견되고 있다. 금산군 진산면 일대에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독수리 20여 마리가 떼 지어 날아들었다. 닭과 쇠고기 가공공장에서 나오는 축산부산물 적치장에서 한두 마리가 눈에 띄기 시작한 뒤 최근 급격히 늘었다.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이한수(조류학 박사) 대표는 “수년간의 추적 연구를 보면 장단반도에서 월동하는 독수리들은 통상적으로 월동 기간 내내 먹이 터를 중심으로 반경 4∼10㎞에 서식한다”며 “그러나 이번 겨울의 경우 지난해 8월 몽골에서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독수리 5마리가 국내로 들어와 현재 경기도 파주·연천, 강원도 철원·양구·인제 등 5곳으로 각각 흩어져 월동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월동지 먹이터로부터 반경 50㎞의 장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겨울을 나는 현상도 처음으로 보이고 있다”며”이 같은 이례적인 장거리 이동은 먹이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독수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전문가들은 야생조류에 의한 AI와 구제역 확산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김진한 동물자원과장은 “국내에서 독수리가 AI에 감염된 사례는 없지만 현재 수리부엉이 등 야생조류에서 AI가 검출되고 있는 만큼 독수리의 AI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일범 대전오월드 동물관리 전문위원도 “독수리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기 때문에 AI를 전파시킬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어 독수리의 광범위한 이동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만 한국조류보호협회장은 “세계적인 멸종 위기 야생조류인 독수리의 보호를 위해 독수리 월동지에서의 체계적인 먹이주기 활동이 지속돼야 한다”며 “이렇게 해야만 독수리에 의한 질병 전파 가능성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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