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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목화 재배, 야생동물엔 재앙이었다

중앙일보 2017.02.18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조선의 생태환경사
김동진 지음, 푸른역사

화전 개발로 남부지방 산림 파괴
서식처 잃은 동물들 전염병 옮겨

식문화 바꾼 ‘수박향 나는 은어’ 등
인간-자연 관계로 역사 새로 살펴

364쪽, 2만원

고려 말 문익점이 이 땅에 목화를 들여왔다는 사실은 초등학교에서도 배운다. 하지만, 한반도 생태환경사를 연구하는 지은이는 여기에 자연의 역사를 더하면서 역사를 보는 시각을 넓힌다. 이식된 목화는 이 땅의 생태환경을 바꿔놓았다. 사람들이 이 가치 있는 작물을 재배하려고 경작지를 넓힌 때문이다. 목화가 잘 자라는 따뜻한 남부지방의 산림지대는 급속히 목화밭으로 바뀌었다. 화전 개발도 촉진됐다. 문제는 밭으로 바뀐 산림지대에서 원래 살던 야생동물은 서식처를 잃었다는 사실이다. 사람과 가축, 야생동물 간의 예기치 않은 접촉으로 이어져 전염병에 의한 생태적 재앙까지 발생했다.

한반도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이 땅에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의 발자취만 따라다니면 동전의 한 면을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자연의 영향을 받거나 자연에 영향을 주면서 역사를 이뤄왔다. 지은이는 이 땅의 동식물·지연지형·미생물 등 다양한 생태환경 요소를 바탕으로 한반도 역사를 새롭게 살핀다. 역사를 군주와 지배계층 중심으로 바라봤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의 하나가 ‘무너미’라고 부르던 땅이다. 장마철 등 홍수가 있을 때 물이 넘쳐흐르는 땅을 말한다. 물난리만 피하면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다. 경작지 확대가 필요한 국가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은이에 따르면 무너미가 본격적으로 개간된 것은 조선 세종과 문종 때였다. 세종 10년 연기 현감이 조천 유역에서 무너미를 개간한 기록이 나온다. 문종은 그 실태를 전국적으로 조사하게 했다. 16세기 조선왕조 실록에는 수령과 백성이 고기를 잡느라 무너미를 보호하는 제방을 무너뜨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무너미가 천렵과도 관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농사에 필수적인 소는 조선 500년 동안 3만 마리에서 110만 마리로 그 수가 크게 늘었다. 그림은 19세기 후반 양기훈의 ‘뇌경’. [사진 푸른역사]

농사에 필수적인 소는 조선 500년 동안 3만 마리에서 110만 마리로 그 수가 크게 늘었다. 그림은 19세기 후반 양기훈의 ‘뇌경’. [사진 푸른역사]

냇가를 막은 ‘천방(川防)’은 논밭에 물을 대주는 것은 물론 고인 물에서 천렵까지 가능하게 했다. 냇가에서 천렵이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의 식생활도 풍성해졌다. 정자에 모인 선비들이 냇가에서 천렵으로 얻은 물고기로 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천방은 조선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한 발명품이었다.

그 덕분에 전국적으로 다양한 물고기가 백성들의 식탁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은어였다. 은어는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어느 정도 자란 뒤 번식을 위해 하천의 최상류 지역까지 거슬러 오르는 회유성 어종이다. 하천 길이에 따라 은어 크기가 달랐다. 허균도 『도문대작』이라는 책에서 “영남에서 나는 것은 크고 강원도에서 나는 것은 작다”고 기록했다. 은어는 구우면 수박향기가 은은하게 난다. 조선 임금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이 맛에 빠져 국가에서 은어를 잡기 위해 어전을 설치하거나 진상품으로 거둬가기도 했다.

이렇게 어물 생산과 이용이 늘면서 조선에는 동빙고와 서빙고 같은 국영 얼음저장소 외에도 개인이 설치한 사빙고가 크게 늘었다. 18세기 중엽에는 한강 주변에 사빙고가 30개나 됐다고 한다. 여기서 보관한 얼음은 생선을 보관·운반·유통하는 데도 사용됐다. 빙장(氷藏)은 염장과 함께 어물을 보관하는 주요 방법이었다. 조선의 생태환경은 김치·된장·고추장 같은 질 좋은 발효식품의 개발과 생산으로도 이어졌다. 이는 오늘날 한식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지은이는 역사학자로 생태환경사를 통해 한국사회경제사를 재정립하는 데 관심이 있다.
 
[S BOX] 17세기 갑자기 사라진 100년 넘은 숲
17세기에 접어들면서 개간할 땅이 고갈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화전으로 눈을 돌렸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은 산허리보다 높은 땅의 개간을 금했다. 홍수를 막기 위한 생태적인 지혜다. 하지만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국가 통제력이 약화하자 부농들이 몰락한 소농민에게 소와 농기구를 쥐어 주면서 화전 개발을 부추겼다. 한국의 산림지대는 급속히 경작지로 바뀌었다.

심지어 왕실도 여기에 가담했다. 화전에서 나온 수입을 종친들의 생계보장에 썼다. 그 내용은 『화전성책』이라는 기록물에 담겨있다.

문제는 화전이 개발되면서 생태계가 파괴됐다는 사실이다. 100년을 키운 숲이 2~3년의 화전 경작을 위해 불타서 사라지는 일이 이어졌다.그 결과 들판에는 홍수와 가뭄이 이어졌다. 심지어 산이 무너져 논과 밭을 덮는 일도 생겼다. 환경 재앙은 조선조에도 있었다. 탐욕은 그 당시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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