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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김정일의 황태자 거론 … 북 개혁·개방 주장

중앙일보 2017.02.15 02:16 종합 2면 지면보기
김정남 독살
중앙일보는 2010년 6월 4일 국내 언론 중 최초로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단독 인터뷰했다.

해외 떠돌다 독살된 김정남은
이모 성혜랑 미국 망명 뒤 입지 흔들
중앙일보, 2010년 국내 언론 첫 인터뷰

중앙일보는 두 달여의 추적 끝에 마카오의 신도심 코타이에 있는 38층짜리 알티라호텔 10층에서 그를 만났다. 당시 김정남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있는 취재팀을 보고도 불편해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표준 한국말로 “기자시죠?”라며 먼저 말을 걸 정도였다. 그는 “사진 몇 장을 찍겠다”는 요구에 “찍으라”며 대화를 나눴다.

그는 “아우님(김정은)이 김옥 여사의 아드님이라는 말씀을 하고 다니신다는 얘기를 마카오에서 들었다”고 기자가 묻자 얼굴이 딱딱해지면서 “뭔 얘기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라며 답을 피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의 넷째 부인인 고용희(2004년 사망)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기자가 언급한 김옥은 김 전 위원장의 다섯째 부인이다. 기자가 아들 김한솔에 대한 질문을 해도 “가족 프라이버시는 지켜주시죠”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기자가 “아버님(김정일)의 건강은 어떠냐”는 물음에는 “좋으십니다”고 했다. 김정남은 당시 자신의 망명설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유럽 쪽으로 가실 거란 얘기가 들린다”는 질문에는 “유럽 쪽으로 간다는 건 무슨 의미죠? 제가 왜 유럽 쪽으로 가죠?”라고 답했다. 계속 망명설에 대해 묻자 “아이고… 전혀. 유럽 쪽으로 갈 계획이 없습니다. 유럽 쪽으로 간다는 의미가 뭔지 몰라가지고…. 유럽 쪽으로 제가 왜 가요.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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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은 한때 김정일의 후계자로 거론되며 황태자의 자리를 누렸다. 1971년 5월 10일 평양에서 김정일과 영화배우였던 성혜림(2002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사망) 사이에서 태어났다. 80년대 스위스에 유학하며 제네바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남은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은 컴퓨터광으로 알려져 있다. 98년부터 북한의 IT 정책을 주도하는 조선컴퓨터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또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해 국제사회 정보에 밝은 개혁·개방주의자로 불리기도 했다.

95년엔 인민군 대장 계급을 받았다는 소문이 도는 등 한때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후계자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96년 이모인 성혜랑이 미국으로 망명한 뒤 입지가 흔들렸다. 또 북한에 중국식 개혁·개방을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를 공공연히 밝히거나 2001년 4월 도미니카공화국의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되면서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고 한다. 그러다 2008년 여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직후 김정은에게 권좌가 돌아가자 마카오 등지에 머물며 무역업을 했다.

정용수·강태화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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