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밸런타인 대신 볼런티어 데이… “취준생 힘내요” 도시락 500개

중앙일보 2017.02.15 01:37 종합 14면 지면보기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14일 한 공시생이 ‘아이언맨’ 인형 옷을 입은 대학생 자원봉사단 ‘V원정대’ 소속 학생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V원정대는 이날 수험생들에게 도시락 500개를 선물했다. [뉴시스]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14일 한 공시생이 ‘아이언맨’ 인형 옷을 입은 대학생 자원봉사단 ‘V원정대’ 소속 학생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V원정대는 이날 수험생들에게 도시락 500개를 선물했다. [뉴시스]

14일 오전 7시30분쯤 서울 노량진동 학원가는 유난히 추웠다. 이른 아침부터 무채색 패딩 차림의 수험생들은 수업을 듣기 위해 각자 속한 학원으로 향했다. 대부분 경찰·행정직 공무원시험을 앞둔 ‘공시생’들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잰 발걸음을 내딛던 그들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노량진 찾은 대학생 ‘V원정대’
식비 아끼려는 수험생 위해 기획
초콜릿 대신 밥 한끼, 손편지 선물
“연인들만 아닌 모두의 축제 됐으면”

“선배님들,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파이팅!”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50여 명이었다. 학생들은 아직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도시락을 건넸다. 연인들끼리 초콜릿을 주고받는 ‘밸런타인 데이’에 노량진에서는 초콜릿 대신 도시락이 오갔다. 따뜻한 차와 고운 글씨로 적은 손편지도 함께였다. ‘선배님의 노력이 언젠가는 곧 빛을 발할 겁니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충분히 잘해내실 거예요. 응원하겠습니다’. 어리둥절해하던 수험생들의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이 학생들은 대학생 자원봉사단 ‘V원정대’ 멤버다. 2009년 대학생들만의 창의적이고 즐거운 나눔 문화를 만들고자 출범한 V원정대는 2011년 보건복지부 지정 비영리 민간단체로 정식 인증을 받았다. 이후 2월 14일을 밸런타인과 발음이 비슷한 ‘볼런티어(Volunteer·자원봉사자) 데이’로 정하고 다양한 나눔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서울 신촌에서 거리 축제를 개최하거나 ‘착한 초콜릿’을 판매해 수익금으로 소년소녀가장·새터민·북한어린이 돕기에 나서기도 했다. 2010년부터 대학생으로 참여했다가 졸업 후 V원정대 대표가 된 전성민(34)씨는 “2월 14일을 연인들만의 날이 아닌, 모두가 함께 사랑을 나누는 날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시생들이 적은 ‘나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

공시생들이 적은 ‘나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

올해는 볼런티어 데이 7년째를 맞아 노량진 학원가를 찾았다. 전씨는 “강의실 앞자리에 앉으려고 아침 이슬을 맞으며 길거리로 나서는 수험생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면 좋겠다. 수험생 중 상당수가 식비를 아끼기 위해 아침을 거른다는 뉴스를 보고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치 수학능력시험 당일 고사장 앞에 선배를 응원하기 위해 나온 후배들처럼 대학생들은 노량진의 한 경찰학원 앞에 자리를 잡고 밝은 얼굴로 수험생들을 맞았다.

수험생들은 도시락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4월 공무원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어 줄을 선 상태에서도 단어장이나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V원정대가 준비해 온 도시락 500개와 손편지들은 행사를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동났다.

아이언맨 등 캐릭터 인형탈을 쓴 대학생들이 수험생과 ‘하이파이브’ 인사나 프리 허그를 하기도 했다. 도시락을 받아든 한 수험생은 “추운데 이렇게 나와줘 참 고마우면서도 귀엽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V원정대 소속 대학생 김연동(22)씨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반갑게 여겨주는 수험생들을 보니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제 곧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노력하는 수험생 선배들의 모습에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행사장 한쪽에는 수험생들이 직접 ‘나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를 적는 게시판이 있었다. ‘제발 합격하게 해주세요’ ‘살려줘, 춥다’ ‘놀고 싶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등 수백 개의 메시지가 게시판에 빼곡히 들어찼다. 글을 쓴 공시생들은 학원 건물 안으로 속속 들어갔다. 어제와는 다른 아침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