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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때문에 … ” 논문 심사비 슬금슬금 올린 대학들

중앙일보 2017.02.15 01:36 종합 14면 지면보기
‘청탁금지법 발효로 학생 혹은 지도교수의 사적인 금품 및 편의 제공이 불가함에 따라 박사과정 외부 심사위원에게 지급하는 심사비 및 수납액을 현실화하고자 함’.

심사위원 1인당 10만~20만원 올려
학생 “돈 안 내고도 심사받을 권리”
“원래 지급해야 할 돈 양성화한 것”

서울여대 박사과정에 있는 서모(27)씨는 지난달 9일 학과 사무실로부터 이런 문구가 담긴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올해 1학기부터 박사과정 논문의 외부 심사위원 한 명당 심사비를 9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학교는 박사학위 심사 시 외부 인사 2명이 참여한다. 방침대로라면 22만원 오른 67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기존 45만원). 서씨는 “청탁금지와 논문 심사비 인상이 무슨 관계인지, 인상분은 무슨 기준으로 산정했는지 모르겠다”며 “법 시행 전 주위에서 심사비 외에 50만~100만원까지 따로 주는 걸 봤지만 그건 감사의 의미였지 의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 시행 6개월, 일부 대학이 학위 논문 심사비를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원생들이 논문 심사위원에게 관행적으로 해 오던 ‘사적인 금품 제공’이 금지됐으니 이를 심사비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지난해 발간한 ‘김영란법 Q&A 사례집’에는 ‘학생이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에게 식비 등을 제공하는 것은 법 제재 대상에 해당된다’고 설명돼 있다. 권익위는 “논문 심사가 끝난 후의 사적 금품 제공도 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이 같은 내용의 공문을 지난해 10월 각 대학에 내려보냈다.

현재까지 논문 심사비를 인상한 것으로 파악된 곳은 서울여대와 숭실대 두 곳이다. 숭실대는 외부 심사위원 1인당 10만원인 심사비를 30만원으로 올렸다. 하반기 논문 심사를 앞둔 박사과정생 이모(31)씨는 “심사비가 인상됐으니 사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지 정말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심사비 인상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서울여대 대학원 교학팀 관계자는 “심사비 인상은 외부 심사위원의 교통비만 반영한 것으로, 김영란법 이후 지방에서 오는 심사위원은 교통비를 자비로 부담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사비를 올리기 전에는 교통비를 어떻게 처리했느냐고 묻자 “학생이 사적으로 부담했는지 학과에서 처리해 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반발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원에 다니는 송모(26)씨는 “김영란법이 금지하니 아예 규정을 고쳐 올리겠다는 발상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박사과정생은 등록금을 내는 학생으로 돈을 내지 않고도 정당하게 논문을 심사받을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연세대·중앙대 등은 심사비가 없고, 한양대도 올해 논문심사비 제도를 폐지했다. 충남대는 석사과정 20만원(10만원→30만원), 박사과정 70만원(30만원→100만원)을 올리려다 학생들의 반대로 철회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학칙이나 내규는 각 대학의 재량으로 정하는 것이고, 문제가 있으면 교육부에서 다룰 것”이라고 했다. 김영란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원래 지급해야 할 돈을 음성적으로 주다가 양성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답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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