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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연남동에 카페·레스토랑 ‘야금야금’… 밀려나는 원주민

중앙일보 2017.02.15 01:03 종합 21면 지면보기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에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간판을 단 카페·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임대료 인상으로 원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 동네 중 한 곳이다. [사진 김경록 기자]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에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간판을 단 카페·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임대료 인상으로 원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 동네 중 한 곳이다. [사진 김경록 기자]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주택가. 2~4층 짜리 다세대 주택들 사이로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간판을 단 카페와 레스토랑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주택가 더 깊숙한 곳에서도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20년간 연남동에 살아온 주부 이금옥(38)씨는 “지난해에만 동네 수퍼 2곳이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다. 정육점이 있던 자리엔 테이크아웃 음식점이 들어섰다”며 “몇 달 사이에 다른 동네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현장
동네 수퍼 등 떠난 자리에 카페·펍
삼청동·홍대·가로수길보다 2배 빨라
“특이한 가게 찾는 소비 경향 한 몫”
외지인 붐비며 주차·소음문제 갈등

오래된 주택들이 세련된 카페로 탈바꿈하면서 집값도 올랐다. 연남동의 경우 2013년 21곳이었던 서양식 음식점이 2015년 81곳으로 네 배가 됐다. 이 동네의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3년 전(2014년)부터 매매가 늘었고 리모델링 공사는 지난해 2월 말부터 급증했다. 급속한 변화에 골목길 주택의 평당 가격이 평균 200만~300만원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이 오르니 집주인들은 집을 팔고 나가기 시작했고 세입자들은 오른 전세금이나 가게 영업을 이유로 많이 떠났다”고 말했다.
연남동 주택가 내에서 상점으로 리모델링된 건물(오른쪽)과 철제 가림막을 설치한 채 공사 중인 건물.

연남동 주택가 내에서 상점으로 리모델링된 건물(오른쪽)과 철제 가림막을 설치한 채 공사 중인 건물.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고 임대료 인상으로 원주민은 다른 곳으로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 내몰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연남동 등에 최근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2000년대보다 확연히 빠르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양대 박진아 도시공학과 교수팀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연남동·서촌·성수동·경리단길·해방촌 등 서울시내 5곳은 10여 년 전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00년대에 유사한 현상을 겪은 삼청동·홍대·가로수길 등은 서양식 음식점과 카페·베이커리 매장의 연 평균 증가율이 17.3%였는데, 연남동 등은 39.2%로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학계에선 서양식 음식점과 카페 등이 특정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이 들어섰는지를 젠트리피케이션의 척도로 삼는다.
연남동은 카페 및 베이커리 매장 수가 46곳에서 84곳이 됐다. 용산구 경리단길도 서양식 음식점이 44곳에서 76곳으로, 카페 및 베이커리 매장은 14곳에서 27곳으로 늘었다.

변화의 대상이 일반 주택가로 옮겨왔다는 점도 특징이다. 가로수길은 1980~90년대엔 미술관과 도로를 따라 심어진 가로수 등 외지인이 찾을만한 ‘지역 자산’이 있었다. 삼청동에는 북촌이란 관광명소가, 홍대 일대는 ‘대학가’란 특징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소비자의 개인 취향과 SNS가 맞물리면서 연남동이나 성수동 같은 일반 주택가를 파고들었다. 박진아 교수는 “소비자들은 이제 상품이 아닌 장소를 소비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널리 알려진 상점보단 조용한 골목길의 ‘나만 아는 특이한 가게’를 찾고 싶어한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으로 이들 지역이 급속하게 알려지다 보니 금세 조용한 주택가가 외지인이 붐비는 상점가로 바뀌게 되고, 소비자들은 또 다시 다른 동네를 찾아나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주민들의 불만은 커졌다. 연남동 주민 김중현(75·여)씨는 “조용했던 동네가 외지인이 늘면서 시끄러워졌다. 이웃도 집을 팔고 나갔고 나도 집을 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또 세탁소나 야채가게처럼 실제 주민 삶에 필요한 가게들이 빠르게 사라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 교수는 “프랑스 파리는 2003년부터 2년마다 지역별 업종을 전수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빈 점포를 빵집 등 주민에게 필요한 상점으로 만들어 임차인을 구하고, 다양한 규제를 통해 업종이 편중되는 걸 막고 있다”며 “서울시도 이제라도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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