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목 2번, 손목 5번 부러졌죠 … 보드에 미친 광기

중앙일보 2017.02.15 01:00 종합 24면 지면보기
2014 소치 올림픽에선 예선 1조 11위를 기록했던 이광기. 당시 9위까지에게 주어지는 준결승 티켓을 놓쳤다. 그는 고향 강원도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에선 결승 진출을 넘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평창=신인섭 기자]

2014 소치 올림픽에선 예선 1조 11위를 기록했던 이광기. 당시 9위까지에게 주어지는 준결승 티켓을 놓쳤다. 그는 고향 강원도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에선 결승 진출을 넘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평창=신인섭 기자]

하프파이프(half-pipe).

국내 하프파이프 1인자의 포부
공중에서 연속으로 네 바퀴 회전
3명 밖에 못하는 기술 완성 단계
휴가 때도 서핑보드로 밸런스 연습

“날 위해 희생한 가족 생각에 눈물
1년 남은 평창, 새 기술 선보일 것”

원통을 반으로 갈라놓은 듯한 모양의 경사진 슬로프를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오며 점프와 회전을 섞은 기술을 선보이는 겨울 스포츠다. 겨울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새로운 동작과 기술이 쏟아져나오는 자체진화형 첨단 스포츠이기도 하다. 하프파이프 선수들은 “수 개월간 피땀 흘려 연습한 기술이 1년 지나면 구닥다리 취급을 받을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 항상 남다른 동작을 고민하는 과정이 힘들면서도 즐겁다”고 말한다.

국내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1인자는 이광기(24·전북체육회)다. 지난해 1월 미국 매머드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6위에 오르며 포디움(3위 이내 입상)의 문턱까지 다가섰다.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휘닉스 스노우파크에서 17일 개막하는 FIS 프리스타일 스키·스노보드월드컵은 메달권 진입의 호기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공식 경기장을 미리 체험할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평창 월드컵을 앞두고 연습중인 이광기. [평창=신인섭 기자]

평창 월드컵을 앞두고 연습중인 이광기. [평창=신인섭 기자]

14일 휘닉스 스노우파크의 하프파이프 경기장에서 처음으로 스노보드를 타 본 이광기는 “매우 환상적이다. 더 타고 싶다”고 말했다. 설질이나 코스 상태 모두 완벽하다는 의미였다. 평창 월드컵에서 이광기는 공중에서 네 바퀴를 도는 ‘스핀(spin) 1440’이라는 기술을 선보인다. 점프해 옆으로 4바퀴를 도는 고난도 기술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공중에서 1440도(네 바퀴)를 돌 수 있는 하프파이프 선수는 이광기를 포함해 4명 밖에 없다.

이광기는 “캡 더블 콕 1440을 평창에서 매끈하게 성공하는 게 첫 번째 과제”라면서 “이 기술을 빨리 마스터해야 남은 기간 다른 선수들이 선보인 적 없는 새 동작을 접목할 수 있다. 평창에서 보내는 1분 1초가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다”고 말했다.
1440도 회전은 악몽 같은 부상을 딛고 일어서서 완성한 기술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몸을 사리지 않고 신기술에 도전하는 성격이다보니 한 번 삐끗할 때마다 심각한 부상이 따라왔다. 이광기는 “알파인에서 하프파이프로 종목을 바꾼 중학교 1학년 이후 병상에서 보낸 시간을 모두 합치면 2년을 넘을 것”이라면서 “이제껏 발목 두 번, 왼 손목과 오른 손목은 각각 세 번과 두 번씩 부러졌다. 팔꿈치가 탈골되거나 회전 연습을 하다 중심을 잃고 추락한 뒤 며칠 동안 기억을 잃은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여러 차례 끔찍한 부상에 시달리고도 하프파이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기 싫어하는 근성과 스노보드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이광기는 “1년 중 훈련을 쉬는 날은 50일도 안된다. 그나마 휴가 기간에도 서핑보드, 스케이트보드 등을 타며 밸런스 잡는 연습을 쉬지 않는다”면서 “억지로 하라면 절대 못한다. 나는 이기고 싶고, 더 즐기고 싶다. 쉬는 것보다 보드를 타는 게 더 즐거우니 행복한 삶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광기가 톱클래스 선수로 성장하기까지는 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었다. 사업을 하다 실패한 아버지 이태식(51) 씨는 가세가 기운 이후에도 빚을 내가며 아들의 해외 전지훈련 비용을 댔다. 버스기사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아들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훈련장으로 달려갔다. 두 살 터울의 누나 이은선(26) 씨는 독학으로 일본의 한 대학에 합격했지만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진학을 포기했다. 이광기는 “후원사가 생긴 덕분에 요즘은 아버지께 꼬박꼬박 용돈을 드릴 수 있다. 어린 시절 누나에게 빌린 돈이 참 많은데, 최근에 괜찮은 노트북을 선물하며 모두 갚았다”면서 “평생 받기만 하던 내가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활짝 웃던 그의 눈가가 잠시 촉촉해졌다.

이광기의 좌우명은 ‘누구보다 멋있게 살자’다. 요즘 이광기는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DJ 광기’로 변신한다. 스노보드를 함께 타다 DJ로 새출발한 친구에게서 디제잉의 매력을 전수 받고 푹 빠졌다. 집에 디제잉 장비도 갖춰놓았다.

이광기는 “운동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이광기’로도 멋있는 삶을 살고 싶다. 눈 앞으로 다가온 평창 월드컵과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은 물론 내년 평창 올림픽까지 하나하나 즐기면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하프파이프 이광기는 …

생년: 1993년 10월 13일

학력: 진부초 - 강원체중 - 강원체고 - 단국대

성적: 2013 주니어 세계선수권 5위
        2015 세계선수권 8위
        2016 미국 매머드 월드컵 6위

평창=송지훈·김지한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