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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의 NEAR 와치] 양 진영 간의 망국적 패싸움 여기서 끝내자

중앙일보 2017.02.15 01:00 종합 28면 지면보기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지금 나라가 극도의 분열 상태에 빠지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광장 여론이 국정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 땅의 미래를 깊이 고민하는 ‘생각하는 갈대들’의 목소리는 광장의 함성에 묻혀 버렸다. 그사이 광장은 진보와 보수 세력이 전면전 하듯 맞부딪치며 패거리 싸움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실로 광장정치가 의회정치·법치주의와 한데 뒤엉켜 가는 가운데 이를 보는 국민들은 심히 불안하다.

진영 싸움의 광장 여론이 국정 나침반 되며 모두가 공멸 위기
‘박정희 회귀’‘노무현 환생’ 꿈 깨어 분권·협치로 국난 극복을


더욱이 가짜 뉴스, 탈진실이 판치는 광장과 사이버 공간, 책임지겠다는 사람 하나 없는 정치권, 탄핵소추 이후 국가원수답지 않게 구차함을 보이는 대통령, 그리고 큰 파도 앞에서 복원력과 추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대한민국의 위태위태한 모습이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광장과 정치권의 압박 속에서 대통령 탄핵 여부를 심판 중인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외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중지시킨 미국 시애틀 연방법원 판사가 지켜낸 법치의 권위를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헌재의 결정이 나면 그 결과에 관계없이 양 진영 간 싸움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치러질 대통령 선거도 결국은 진영 간 싸움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나라가 백척간두에 있는데도 이렇게 진영 간 패거리 싸움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재생되고 있는 정치권의 당파적 투쟁이 DNA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임진왜란 등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도 패권싸움에 골몰했던 우리 민족의 정치 DNA가 국가의 중대 고비에 서 있는 지금 또다시 발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 DNA가 해방 후에는 친탁과 반탁으로, 박정희 대통령 사후에는 진보와 보수로 한국 정치에 재연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국민의 삶이 바뀌어도 극단의 원리주의적 진보·보수론자들이 주도권을 잡으며 진영 간 싸움은 점점 권력 투쟁의 양상으로 변해왔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치열한 패싸움 끝에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기 무섭게 양 진영은 승자의 파티와 패자의 분노 속에 충돌했다. 집권 세력은 상대방을 적으로 몰아 수사력, 행정력을 총동원해 공격했고, 상대 세력은 패거리 세력을 총결집시켜 극력 저항했다.

진영 논리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흐리게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적과 동지의 개념으로 재단하도록 한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고 내 편이 되면 어떤 인물도 포용한다. 한쪽 패거리가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 반대쪽은 반미 친중국 패거리가 되고, 한쪽이 재벌을 옹호하면 다른 쪽은 재벌을 적대시한다. 그 결과 실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은 양 진영 사이에 끼어 발을 못 붙이게 된다. 역사적으로 진영 간의 패싸움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야 끝난다. 이는 마치 영국 요크가와 랭커스터가 사이에 왕권을 놓고 벌인 장미전쟁(1455~85)과 같이 피의 악순환을 부른다. 장미전쟁은 양 가문의 명망가들이 모두 죽고 나서야 30년 만에 끝났다.

어느 면에서 보면 지난 몇 차례의 불행한 대통령들도 이러한 극단적 진영 간 패싸움의 수혜자이자 희생자였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기파괴적 정치생태계가 형성된 이유는 최근세사에 있어서 우리 국민의 정신을 지배해 온 두 개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남북 분단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극단의 이념적 편견이 정치 이념화되었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와 김대중, 노무현의 환생을 꿈꾸는 사람들의 집착이 서로 대립하며 각각 정치 유산으로 대물림한 데 기인한다.

이러한 척박한 정치생태계는 황폐한 인물생태계를 만들었다. 패거리에 끼지 못해 외부자가 되면 정치인으로서 생존 자체가 어렵고 내부자가 되면 편하기 이를 데 없는 패거리 정치생태계에서 어떻게 지성과 야성을 겸비한 큰 인물이 나올 수 있겠는가? 국가의 안위보다는 조직, 패거리의 안녕과 공고한 일체감이 더 중요한 정치 풍토에서 어떤 정치인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패거리에 업혀 성장한 작고 영글지 않은 인물이 제왕적 대통령의 자리에 앉다 보니 모든 것이 어렵고 두렵다. 그리고 상대방 진영의 적대적 공격을 피하려 자신의 패거리 진영에 숨다 보니 스스로 점점 작아져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던 것 아닐까?

이제 진영 간의 망국적 패싸움을 여기서 종식시키자. 그렇지 않으면 다가오는 아주 특별하고 기이한 미래에 모두가 공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대내외 국정위기, 국민 마음속의 깊은 상처와 신뢰의 위기, 세계 정치·경제 지형의 급반전 속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한국의 국정을 한 사람, 한 패거리가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는 여러 정치 세력들이 힘을 모아 국정을 원만히 수행하는 분권과 협치로 국난을 극복해야 한다.

다행히도 지금 양 진영 내부에서 이념적 분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대선주자들 중에는 이러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인물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국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중심을 잘 잡아 분권과 협치로 국정을 안정시키겠다는 현명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개헌 등 관련 제도를 개편하고 패거리문화를 창조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정치 세력 간 협치의 관행을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제 모두가 박정희로의 회귀, 노무현의 환생이라는 헛된 꿈에서 깨어나고 제정신으로 돌아와 양 진영 간 화해, 공존, 공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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