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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의보다 법치가 우선이다

중앙일보 2017.02.15 01:00 종합 29면 지면보기
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대 교수)

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대 교수)

“국가 경제 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달 16일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위증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한 말이다. 법의 최고 이념이 정의이고, 장기적으로 정의가 실현돼야 우리 경제가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과연 정의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인가? 명백히 형법 규정에 어긋나도 정의롭기만 하면 재벌 회장이든 대통령이든 누구나 처벌할 수 있는가?

“경제보다 정의가 중요하다”며
특검, 이재용 부회장 등 2명 영장
박 대통령 겨냥한 편법 의구심
안종범 수첩 입수 경위도 논란


“정의를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법치를 세우는 일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경제보다 정의를 내세우는 특검에 대한 필자의 반박 논리다. 경제를 떠나, 정의를 떠나 오로지 법치의 관점에서 특검이 검토 중인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의 정당성에 대해 살펴보자. 불과 20여 일 전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찬성을 조건으로 삼성이 최순실 모녀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뇌물 수수자에 대한 조사가 전혀 행해지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영장을 기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특검이 새로 들고 나온 것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과 삼성SDI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청와대가 특혜를 줬다는 내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나스닥으로 갈 것을 한국으로 주저앉힌 경우이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삼성SDI 순환출자 해소 문제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먼저 특검에 의하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1000만 주를 처분해야 한다고 결론 냈다가 청와대의 압력으로 500만 주로 줄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와 삼성은 처분 주식 수 변경은 공정거래법 해석 과정의 다양한 의견을 좁혀 가는 과정에서 적법 절차에 따른 것이었으며 외압이나 로비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필자는 당시 삼성이 대형 로펌 두 곳에 의뢰한 법률 자문과 같이 양사 합병 결과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가 10개에서 7개로 오히려 단순화됐기 때문에 아예 500만 주도 처분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만일 특검의 주장처럼 1000만 주 처분이 옳다 하더라도 재단 설립과 관련한 제3자 뇌물공여죄의 경우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하는데 행정청의 유권해석에 의견을 개진한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행정 절차이지 이를 부정한 청탁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유라 지원과 관련한 단순 뇌물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특검의 주장처럼 삼성이 지난해 10월 독일 현지의 말 중개상을 통해 정유라에게 30억원가량의 명마(名馬) 블라디미르를 추가로 사주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특검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에 대해 ‘경제 공동체론’이나 ‘공동 지갑론’ 등 법률 전문가인 필자조차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법 이론으로 기업인들을 압박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백번을 양보해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경제 공동체라 하더라도 기업인들이 이를 알 수가 없는 한 뇌물죄의 고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특검이 지난번과 달리 이재용 부회장뿐만 아니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것은 강제수사권 남용이다. 지난번엔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던 삼성 임원을 대상으로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었음에도 영장을 청구한 것은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입증을 겨냥한 꼼수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과 박 사장, 둘 중 한 사람의 영장이라도 발부되면 박 대통령 뇌물죄 입증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구속이든 압수수색이든 모든 강제수사는 형사사법에 있어서 불가결한 제도지만 개인 기본권 침해를 동반하는 필요악이므로 최소한도로 행사되는 게 맞다. 아울러 구속은 곧 유죄고, 불구속은 무죄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이상 구속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수사 절차적 정당성과 관련해 위법 수집 증거의 문제도 제기된다. 특검이 영장 재청구의 주된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청와대에 보관돼 있던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 39권이다. 특검은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이 보관하고 있다가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만일 보좌관이 당사자의 허락 없이 임의 제출했다면 절도나 횡령에 해당하는 중대 범죄다.

만에 하나 수첩의 입수 경위에 위법이 있다면 증거 능력이 부정돼야 할 뿐 아니라 특검 스스로 직권을 남용한 것이므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법을 받드는 것이 강하면 강한 나라가 되고 법을 받드는 것이 약하면 약한 나라가 된다.”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중국 진(秦)나라 때 한비자(韓非子)의 말이다. 지금 특검은 법보다 여론을 더 받드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진실이 밝혀지면 여론도 바뀔 수 있음을 특검은 명심해야 한다.

서정욱 변호사(전 영남대 법대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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