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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월마트 vs 보잉, 월마트 vs 트럼프

중앙일보 2017.02.15 01:00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지영 산업부 부데스크

최지영
산업부 부데스크

연일 반협박조의 ‘생큐’를 트윗으로 날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탓에 외국 기업들만 골머리가 아플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 기업도 골치다. 대표적인 곳이 월마트다. 이슈는 이제 막 논의되기 시작한 미국의 세제 개혁이다.

트럼프는 멕시코나 중국 같은 특정 국가에서 들어오는 상품에 세금을 매기는 ‘국경세’를, 공화당은 모든 수입 제품에 20%의 세금을 일괄로 매기는 ‘국경조정세’를 민다. 대신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엔 35%의 법인세를 20%로 내려준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양측 인식의 근간은 미국 밖에서 생산된 제품에 고율의 세금을 때려서라도 미국의 제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이달 초 월마트를 포함해 100여 개 미국 기업·무역단체가 모여 이런 세제 개편안에 반대하는 로비 단체를 꾸렸다. 일명 ‘미국인에게 저렴한 제품을(Americans for Affordable Products)’, 줄여서 AAP인 이 단체엔 월마트는 물론 타깃, 베스트바이 등 주요 내수 기업들이 망라돼 있다.

국경세를 반기는 반대쪽엔 ‘아메리칸 메이드 연합(American Made Coalition)’이란 또 다른 단체가 있다. 보잉·GE·화이자 등이 포진해 있다. 국경세는 “미국에 공장을 둔 제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제조업 대 유통업, 수출업 대 내수업, 보잉 대 월마트의 대결이다. 외신들은 “미국 주식회사의 내전이 시작됐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내수 기업들은 세제개혁안이 현실화하면 미국 한 가구당 한 해 1700달러를 물건 값으로 더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화당 내부의 반대도 심상치 않다. ‘미국의 번영을 위해(Americans for Prosperity)’의 팀 필립 회장은 “오바마케어를 반대했던 것보다 더 이를 악물고 반대하겠다. 수백만 명의 저소득층과 중산층 미국인들로부터 구매력을 앗아가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트럼프의 세금 공약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보수논객 래리 커드로 역시 “국경세를 도입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경세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이를 보도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14일자에 실린 그래프 하나가 눈에 띈다. 화물 컨테이너 기준 미국에 제품을 가장 많이 수입한 기업(1위 월마트, 2위 타깃, 3위 홈디포) 틈에 삼성 미국법인이 6위에 자리했다. LG는 8위다. 이케아(10위)와 나이키(12위)를 가뿐히 제쳤다.

유럽연합(EU)은 아직 테이블 위에 올려지지도 않은 국경세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선제 액션을 취하고 있다. 가전공장을 미국에 짓겠다고 재빨리 결정하는 일 외에 뭘 해야 할까. 하수상한 시절, 한국 기업과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때다.

최지영 산업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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