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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건조 시장 장악한 중국, 이번엔 해양플랜트 ‘굴기’

중앙일보 2017.02.15 01:00 경제 9면 지면보기
차이나랩 리포트
# 2012년 국회가 시끄러웠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김한표 의원이 밝힌 자료 탓이다.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 자회사가 외국 기업에 해양플랜트를 발주했다는 내용이다. 논란이 일자 석유공사는 “한국에 ‘원통형’ 부유식 원유저장하역설비(이하 FPSO) 수행 실적이 많은 조선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원유저장하역설비 잇단 수주
2020년까지 시장점유율 35% 목표
한국·싱가포르 수주량 이미 제쳐

# 올 초 글로벌 석유업체인 로열더치셀이 추진 중인 초대형 영국 북해 ‘펭귄 유전지대 FPSO 프로젝트’에 최종 후보로 프랑스 테크닙(Technip)과 미국 플로어(Fluor)사가 꼽혔다. 한국 조선사와 접촉 중이던 노르웨이 크배너(Kvaerner)사는 탈락 위기에 처했다.
중국 CIMC(중국국제해운컨테이너그룹) 래플스가 건조한 반잠수식 시추선. [사진 CIMC 래플스]

중국 CIMC(중국국제해운컨테이너그룹) 래플스가 건조한 반잠수식 시추선. [사진 CIMC 래플스]

여기엔 모두 중국 기업이 관련돼 있다. 첫 번째는 한국석유공사 자회사인 영국 다나사가 중국 코스코(COSCO)사에 4억 달러 규모의 ‘원통형’ FPSO를 발주한 사례다. 다음 건은 프랑스 테크닙은 중국 코스코를, 미국 플로어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산하의 COOEC를 선정한 경우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기업의 프로젝트 참여를 독려한 곳은 한국 삼성중공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유럽 최대정유사인 로열더치셀이었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중국 조선사는 기술 수준이 떨어져 대형 해양 공사를 따내기 힘들었다”며 “중국의 이번 사업 참여는 한국 업계에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글로벌 석유회사도 중국 기업을 택했다. 지난해 10월 패트릭 퓨안 프랑스 정유사 토탈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말고 다른 야드(조선소)에 갈 필요가 있다”며 “중국에 맡긴 야말 LNG(액화천연가스) 모듈의 품질도 좋았다”고 말했다.

중국이 해양플랜트 굴기에 나선 건 2012년부터다. 당시 전 세계 해양플랜트 시장점유율을 7%대에서 2016년까지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이미 일반 상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상황에서 해양플랜트 ‘굴기’를 선언한 것이다. 저유가로 잠잠하던 중국정부 의지에 탄력이 붙은 건 중동 산유국의 감산 합의로 국제 유가가 지난해 10월 50달러대를 회복하면서다.
지난달 15일 중국 공업화신식화부는 선박 건조 규모를 오는 2020년까지 5배로 늘리고, 해양플랜트의 경우 시장점유율 35%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해양 플랜트 설비 등 고부가 선박 건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은 물론 금융 지원도 약속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2013년 잭업리그(Jack-up Rig·해양플랜트 시추선의 일종) 시장에서 기존 강자인 싱가포르를 추월했다”며 “드릴십(해상플랜트 설치가 불가능한 심해 지역에서 원유를 찾는 선박 형태의 시추설비), FPSO 시장까지 빠르게 진입했고, 같은 해 해양 관련 분야에서 한국을 앞섰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업체도 해양플랜트 시장 선점을 위한 연맹 결성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옌타이 CIMC(중국국제해운컨테이너그룹) 래플스, 상하이 와이가오차오(SWS), 다롄, 코스코 등 중국 대형 조선소 7곳이 ‘중국심원해해양공정장비기술산업연맹(CODIA)’ 출범식을 가졌다. 이들은 출범식에서 “산·학·연 연합에 나서고, 심해 기술 장비 산업화·표준화를 이루겠다”고 밝했다.
익명을 요한 국내 조선사 한 관계자는 “부품 표준화, 공동 R&D에 나서면 비용이 크게 준다. 중국 조선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해양플랜트 입찰하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봤다. 해양플랜트 설계능력 확보에도 신경 썼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중국이 거대 자본을 앞세워 프랑스 엔지니어링사 테크닙 인수에 나섰던 게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민관이 함께 나선 덕일까. 중국 조선 업계의 해양플랜트 수주도 늘고 있다. 2015년 상반기 해양플랜트 설비 신규 수주량은 81기로 전 세계 시장의 32.4%를 차지했다. 한국과 싱가포르를 제치고 처음으로 1위로 올라섰다.

물론 중국이 전 세계 해양플랜트 분야를 완전히 독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하게 선박 건조 능력을 갖추는 것 외에도 설계와 구매 능력 등이 종합적으로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앞으로 성장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홍 연구위원은 “중국 자체적으로 보유한 해상 광구가 많고, 시노펙(SINOPEC)·시눅(CNOOC) 등 대형 오일사가 포진해 있어 해양 플랜트 산업이 발전할 기회가 많다”고 분석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도 해양플랜트 후발주자였던 ‘중국’에 주목했다.

“해양플랜트는 설계·구매·시공 등 30여 년씩 기술을 축적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한국 조선업은 충분한 준비 없이 이곳에 뛰어들었고, 대규모 적자를 내 위기에 몰렸습니다. 지금 중국은 돈을 쏟아부어 국내외 조선업 인맥을 끌어들이고, 중점대학까지 만들어 차근차근 해양플랜트 1위 국가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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