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돈 안되는 고객은 사절 … 은행의 변심

중앙일보 2017.02.15 01:00 경제 6면 지면보기
독일 뮌헨 인근의 한 ‘라이프아이젠(Reiffeisn)’ 신용협동조합 은행과 거래하는 소매 고객들은 지난해 9월부터 10만 유로(약 1억2000만원) 이상을 맡긴 경우 보관료 0.4%를 낸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중은행을 상대로 주는 예치금 금리가 마이너스(-0.4%)로 떨어지자 은행 측이 “혼자 부담을 떠안을 수 없다”며 보관료를 신설했기 때문이다. 보관료 징수 최소 금액인 1억2000만원을 예치한 경우 1년 보관료는 약 48만원(400유로)이다. 도이체방크·코메르츠방크 등 독일 내 대형은행들도 소매 고객을 제외한 대기업·기관 고객에게 같은 방식으로 예금 보관료를 징수한다.

씨티, 3월부터 계좌유지비 신설
1000만원 이하 일부 계좌에 부과

KB국민도 창구거래수수료 검토
서민·금융 소외계층 불이익 우려

은행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국내 은행들도 이자 이외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수수료를 도입 중이다. 한국씨티은행이 다음달부터 일부 고객에게 계좌유지수수료(월 5000원)를 받기로 한 데 이어 KB국민은행도 ‘창구거래수수료’ 신설을 검토하고 나섰다. 외국계가 아닌 토종 국내 은행으로선 처음이다.
창구거래수수료는 창구에서 은행 직원과 대면 거래를 할 때 드는 은행 측 인건비를 고객이 일부 부담하라는 취지다. 이름은 다르지만 씨티은행 수수료와 개념이 같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14일 “어느 고객에게 어떤 형태로 얼만큼의 금액을 부과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지만 내부적으로 창구거래수수료 도입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들은 은행 대고객수수료에 대한 반감이 크다. 돈을 맡아 이자를 주는 은행 본연의 업무가 일종의 공공서비스라고 생각해 온 관행 때문이다. 계좌유지수수료가 처음 시도된 건 지난 2001년이다. SC제일은행이 미국계 펀드에 매각된 직후 경영난을 겪으면서 월 2000원의 계좌유지수수료를 국내 최초 도입했다. 하지만 고객 반발이 심해 제 기능을 못 하다가 3년 만에 폐지됐다. 씨티은행이 오는 3월부터 1000만원 이하 입출금계좌 소유주에게 받는 계좌유지수수료는 적용 대상이 제한돼 있다. 씨티카드 이용자를 포함한 기존 씨티은행 고객은 소액 입출금계좌를 새로 만들어도 수수료가 면제다. 잔액 하한선(1000만원)은 명의자 1인 기준(예적금·방카슈랑스·펀드·신탁)으로 합산한다. 잔액이 1000만원 이하라도 해당 월에 창구 거래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면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모바일·인터넷·자동화기기(ATM) 등 얼굴을 보지 않는 비대면 채널을 강화하자는 측면이 있다”면서 “실제 수수료를 내는 고객 수는 외부 예상보다 적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은행들이 고객 반발에도 신설 수수료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저성장·저금리로 더 이상 전통적인 예대마진에 의존해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의 총이익 중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9%(2014년 기준)로 미국(37%), 일본(35%), 독일(26%)보다 크게 낮다. 창구 송금수수료의 경우 미국과 영국 은행이 3만원선을, 일본 은행이 6500~8600원을 받는 데 반해 국내는 500~3000원선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금융 소비자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수수료를 신설하면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휴면계좌에 대해 계좌유지수수료를 부과하는 등 일종의 벌칙성 수수료를 도입하면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수수료 체계를 매뉴얼화 해서 고객에게 전달하는 등 소비자 친화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액 예금자에게 수수료를 매기는 독일과 달리, 소액 계좌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시스템이 자칫 서민 등 금융 소외계층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국내 금융소비자들은 현금보다 카드·온라인 거래 등을 장려하는 정책 분위기상 외국보다 은행을 어쩔 수 없이 자주 이용할 수 밖에 없다”며 “예금이 적다는 이유로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