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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앙증맞거나, 거대하거나

중앙일보 2017.02.15 00:02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봄을 기다리는 요즘, 브랜드마다 신상백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지갑을 열기 전 기억할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양극화’다. 비싼 럭셔리 브랜드와 저렴한 패스트 패션이 아니라 ‘너무 작거나 너무 큰’ 가방 사이즈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미니백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점점 더 작은 가방들이 쏟아져 나오는 한편, 이에 반격이라도 하듯 커도 너무 큰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극과 극’ 사이즈 대결에 나선 올봄 핸드백 트렌드를 알아봤다.
앙증맞은 신상백들. 왼쪽부터 동전 지갑 같은 에르메스 가방, 체인을 팔찌처럼 친친 감아 멋을 낸 코치 핸드백, 스트랩을 밸트처럼 허리에 두른 넘버21의 초미니백. [사진 에르메스, 퍼스트뷰코리아]

앙증맞은 신상백들. 왼쪽부터 동전 지갑 같은 에르메스 가방, 체인을 팔찌처럼 친친 감아 멋을 낸 코치 핸드백, 스트랩을 밸트처럼 허리에 두른 넘버21의 초미니백. [사진 에르메스, 퍼스트뷰코리아]

립스틱 하나 겨우 넣을 초미니백
겨우 립스틱 하나 들어갈 정도 크기의 초미니백들을 겹쳐 멘 발렌티노 올 봄·여름 컬렉션. [사진 퍼스트뷰코리아]

겨우 립스틱 하나 들어갈 정도 크기의 초미니백들을 겹쳐 멘 발렌티노 올 봄·여름 컬렉션. [사진 퍼스트뷰코리아]

‘누가 누가 더 작나’ 경쟁하고 있는 미니백 트렌드는 2015년 전후 시작됐다. 당시 펜디의 피카부백, 디올의 레이디백, 셀린느의 러기지백 등 브랜드를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가방들이 일찌감치 원래 사이즈를 대폭 축소시킨 새 버전을 내놓았다. 디올 레이디백 마이크로의 경우 가로 14.6㎝·세로 12㎝, 발렌시아가 시티백 나노는 가로 17.7㎝·세로 11.4㎝. 아이폰S의 사이즈(가로 13.8㎝·세로 6.7㎝)를 감안하면 휴대폰 하나 겨우 들어가는 수준이다.

마이크로백 vs 자이언트백…핸드백 사이즈 양극화

올 봄·여름 컬렉션에선 이보다 더 작은 사이즈가 등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발렌티노의 립스틱백이다. 이름 그대로 립스틱 하나가 딱 들어갈 만한데, 납작하기까지 해서 수납 기능은 거의 없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펜디·에르메스·디스퀘어드2 등 많은 브랜드들이 담배 케이스나 동전 지갑 정도 크기의 가방을 잇따라 내놨다.

사이즈는 점점 작아지는 반면 디자인은 더 화려해지고 있다. 아기자기하게 꽃무늬 자수를 놓는다거나 한눈에 튀도록 스터드, 인조 보석을 박는 식이다. 더 나아가 가방 자체보다 장식이 더 눈에 띄는 반전을 노리기도 한다. 가죽 스트랩의 경우 더 두툼해지고 넓어지는 동시에 다채로운 컬러와 무늬를 자랑한다. 금속 체인이라면 꼬임이 굵어지거나 여러 개의 가는 줄을 달아 놨다. 손으로 드는 토트 미니백들은 손잡이에 힘을 주기도 했다.

미니백 트렌드의 이런 흐름에 대해 핸드백 디자이너인 석정혜 신세계인터내셔널 상무는 “마이크로백 혹은 나노백은 실용성이 아닌 액세서리와 보석의 중간적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술적이라 할 만큼 화려한 장식성, 위트 넘치는 디자인을 강조한다는 이야기다. 색다른 스타일링 요소로 이를 부각시킬 수도 있다. 석 상무는 “가는 체인을 어깨에 메는 대신 팔목에 팔찌처럼 친친 감는다거나, 스트랩이 화려한 마이크로백을 허리에 둘러 벨트 대신 활용하면 좋다”고 조언한다.
 
자루 같은 자이언트백의 반격
거대하고 납작한 형태의 발렌시아가 `에어백`.

거대하고 납작한 형태의 발렌시아가 '에어백'.

“어디서도 휴대폰과 신용카드, 팁으로 줄 약간의 현금만 있으면 된다.” 디자이너 안야 힌드마치는 한 외신 인터뷰에서 최근 미니백 트렌드에 대한 배경을 이렇게 해석했다. 국내 업계 분석도 비슷하다. 신세계백화점 장준환 바이어(해외패션 부문)는 “2016년 브랜드별 미니백 판매 비중이 60%까지 치솟았다”면서 “스마트 기기들의 발달로 휴대폰 크기가 작아지면서 작은 핸드백 트렌드가 강세”라고 설명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의문이 남는다. 화장품 파우치나 책, 다이어리, 얇은 카디건 등 지금껏 가방속을 차지하던 물건들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여기에 대답이라도 하듯 이번 시즌 다수의 브랜드가 미니백에 반격하는 커다란 가방들을 선보였다. 흥미로운 건 과거 유행하던 ‘빅 백’ 수준이 아니라 커도 너무 큰 일명 ‘자이언트백’이라는 점이다.
 
마르니는 등에 메도 될 법한 커다란 백을 허리에 차는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마르니는 등에 메도 될 법한 커다란 백을 허리에 차는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먼저 치고 나선 건 발렌시아가다. 여행가방 만큼 커다란 ‘담요 사각백’에 이어 모델의 걸음걸음이 불편해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납작한 ‘에어백’을 색깔별로 등장시켰다. 마르니는 겨드랑이부터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오는 숄더백은 물론이고 등에 메어도 될 법한 소형 백팩 2개를 허리춤에 차고 나오는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분명 사람을 압도하는 가방이건만 업계가 ‘빅백의 귀환’을 점치는 이유는 분명하다. 2016년 내내 거듭됐던 오버사이즈 트렌드와 맞물린다는 것이다. 디자이너 핸드백 브랜드 ‘로사케이’ 김유정 대표는 “오버사이즈의 매력은 꾸미지 않은 듯한 편안함”이라면서 “자이언트 백은 의상의 이같은 분위기를 이어가는 가방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실제 자이언트백은 ‘무심한 듯한 멋’을 반영한다. 각 지지 않은 복주머니 형태(포츠 1961) 또는 늘어뜨려도 자연스럽게 주름이 잡히는 부드러운 가죽 소재의 토트 디자인(소니아 리키엘)이 대다수다. 김 대표는 “마이크로백을 크로스백처럼 하나 더 매거나 자이언트 백에 같이 달아 상반된 느낌의 새로운 스타일링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고 귀띔한다.
 
잇백의 실종이 양극화 이끌어
이번 시즌 컬렉션에 등장한 자이언트백. 왼쪽부터 소니아 리키엘, 포츠1961, 에밀리오 푸치.[사진 소니아 리키엘, 퍼스트뷰코리아]

이번 시즌 컬렉션에 등장한 자이언트백. 왼쪽부터 소니아 리키엘, 포츠1961, 에밀리오 푸치.[사진 소니아 리키엘, 퍼스트뷰코리아]

트렌드는 곧 대세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 시즌에 미니백과 빅백이 공존하고 그 사이즈 역시 극과 극으로 나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업계는 ‘잇백(It Bag·지금 꼭 사야하는 유행 백)의 실종’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입생로랑 뮤즈백, 끌로에 패딩턴백 같은 잇백이 있던 시절엔 히트 상품이 나오면 경쟁 브랜드가 디자인을 조금만 바꾼 아류 제품을 내놓는 게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특정 상품에 주력하는 마케팅 전략이 통하지 않게 됐다. 트렌드 분석기관인 ‘트렌드랩’ 506 이정민 대표는 “소비자들이 획일적인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취향에 맞춰 가방을 고르게 됐다”면서 “이에 맞춰 브랜드들 역시 자사의 정체성과 방향에 맞는 핸드백을 선보이는 것으로 승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젊고 발랄한 이미지로 탈바꿈 하고자 하는 발렌티노·펜디 같은 패션하우스가 앙증맞은 마이크로 미니백으로 승부를 본다면, 스트리트 패션이나 모던한 도시 감성을 녹여내는 발렌시아가·마르니는 자이언트백을 내세우는 식이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더 작으면 작을수록, 크면 클수록 사이즈 자체만으로 이슈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사이즈의 양극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은 핸드백에서도 예외가 없는 셈이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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