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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그릇 모으다 강남 아파트 한 채 값 날렸죠”

중앙일보 2017.02.15 00:01 강남통신 4면 지면보기
| 자신 이름 딴 그릇가게 낸 ‘미셰린 1스타’ 셰프 노영희
 
서울 삼성동에 그릇가게 ‘노영희의 그릇(Roh02)’을 오픈한 노영희 셰프. 그는 오래 전부터 각종 그릇을 모아온 유명한 컬렉터였다. 사진 속 진열장은 그릇가게 건물 6층 푸드 스튜디오에 보관된 그릇 컬렉션.

서울 삼성동에 그릇가게 ‘노영희의 그릇(Roh02)’을 오픈한 노영희 셰프. 그는 오래 전부터 각종 그릇을 모아온 유명한 컬렉터였다. 사진 속 진열장은 그릇가게 건물 6층 푸드 스튜디오에 보관된 그릇 컬렉션.

 
친구들이 럭셔리 가방을 살 때 그릇을 샀다. 좋아하는 작가의 그릇은 아무리 오래 써도 질리지 않았다. 요리를 배우고 한식당을 열어 아끼던 그릇들에 음식을 담았다. 그릇과 음식이 아름답게 어울린 한식 상차림을 꿈꾸며 자신의 이름을 건 모던 한식기도 만들기 시작했다. 노영희(55) 셰프의 이야기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 1개를 받은 한식당 ‘품 서울’의 대표이자 요리사인 노영희씨가 2016년 12월 서울 삼성동 골목에 그릇 가게 ‘노영희의 그릇(Roh02)’을 오픈했다. 강남 30평대 아파트 한 채 값을 쏟아 부으며 그릇을 수집했던 요리사가 직접 그릇가게까지 차린 이유를 들어봤다.


 

그는 처음부터 ‘비주얼에 빠진’ 요리사였다. 남산 자락에 식당을 낸 것도 순전히 “사시사철 올라가는 길이 예뻐서”였다. 이 생각을 상차림에도 고스란히 담았다. 품 서울 음식은 재료와 조리법은 정통한식을 따르지만 플레이팅은 모던 한식기를 사용한다. 대부분 노씨가 푸드 스타일리스트 시절부터 좋아했던 작가들의 작품이다. 분청 작가 이강효 작가를 비롯해 모던한 오브제 느낌의 백자를 만드는 이창화 작가, 조형적인 멋을 살린 김종훈 작가의 전통 다기 등이다.

지난해 12월 오픈한 그릇가게도 평소 좋아했던 작가 8명을 믿고 벌인 일이다. 어떤 그릇을 만들지 기획 단계부터 이들과 함께하는데 그 과정이 호락호락하진 않다. 노씨는 작가들에게 매달 ‘숙제’를 낸다. 절기와 명절 등에 따라 달마다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는 그릇을 디자인하도록 한 것. 심지어 작가들을 상대로 매달 테마 쿠킹 클래스도 진행한다.
 



-그릇 만드는 작가에게 요리를 가르친다는 발상이 남다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알아야 오늘 쓴 것보다 더 좋은 그릇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정월대보름이 있는 2월의 테마는 오곡밥과 나물이었다. 아홉 가지 나물을 푸짐하게 한 데 담을 수 있는 대형 접시와 뚜껑 달린 큰 밥통, 주걱을 사용했었다. 꽃피는 4월에는 꽃전을 만들고, 가정의 달 5월에는 합과 보자기 등을 활용한 도시락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그릇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음식이 사람이라면 그릇은 옷이다. 어머니는 ‘입은 거지가 얻어먹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조그만 종지에 담기면 종지만 하게, 큰 그릇에 담기면 그만큼 풍성하게 보인다. 음식에 맞는 그릇이 있다면, 음식을 더 돋보이게 하는 그릇도 있다. 내가 만드는 음식에 정말 좋은 짝을 맺어주고 싶다.”

-우리나라 그릇 수집가 중 가장 많은 그릇을 갖고 있다던데.

“잡지 기자로 일할 때부터 그릇을 모았다. 도쿄 긴자 거리에서 사온 검정색 접시 2개가 시작이었다. 이후 외국에 나갈 때마다 맘에 드는 그릇을 보면 샀다. 화보 촬영을 하다 그릇에 상처가 나도 샀다. 사진기자가 ‘네가 결혼하면 신혼집에는 깨진 그릇만 가득하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를 하면서는 다양한 소품 그릇들이 필요해서 또 열심히 사 모았다. 그렇게 모은 게 수 천 개다. 그릇 사는데 들인 돈을 합하면 강남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는 살 수 있을 거다. 하하.”
 

-모아둔 그릇은 일상에서 사용하나.

“물론이다. 이 건물(그릇 가게가 있는 갤러리 ‘보고재’) 6층 푸드 스튜디오 장식장에 쌓아놓고 직원들이 필요할 때마다 마음대로 꺼내 쓰도록 했다. 하나에 30~40만원 하는 그릇이나 에르메스 찻잔 세트, 바카라 와인잔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좋은 그릇일수록 부지런히 써야 한다. 비싸다고 아끼다 오랜만에 꺼내 쓰면 꼭 깨진다. 하하. 반면 매일 쓰는 밥그릇은 잘 안 깨진다.”

-그릇을 좋아하던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요리사가 된 계기는.

“음식에 대해 잘 모르면서 아는 체 하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배워보자 결심한 후 반가요리 전문가인 고 강인희 선생의 제자로 5년간 공부했다. 때때로 지인들을 초대해 나만의 메뉴를 만들게 되면서 ‘언젠가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하고 싶다’ 생각했고 그게 품 서울이다.”

품 서울에는 점심에 ‘품격’(8만원), ‘위품’(11만원) 코스가 있고 저녁에 ‘기품’(17만원), ‘상품’(23만원) 코스가 있다. 제철 식재료에 따라 메뉴는 바뀐다. 예를 들어 2월 메뉴에는 여러 종류 봄나물, 봄 도미로 끓인 승기악탕, 대게비빔밥, 대게탕이 차려진다. 전복·대하·한우는 모든 메뉴에 포함된다. 가장 저렴한 ‘품격(8만원·부가세 별도)’ 코스에는 5가지 요리가 나오고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개수가 하나씩 추가된다. 모든 코스의 디저트에는 들깨강정·약과·유자단자·유자차를 내놓는다.

요리는 코스로 하나씩 선보이는데 흑색 판 접시를 깔고 그 위에 백자·분청 등 질감이 다른 그릇을 올려 여러 도예가의 그릇을 믹스매치 한다. 같은 식탁이어도 손님마다 앞에 놓인 식기는 디자인도 조합도 다 다르다. 전통주를 마실 때도 핀란드 브랜드 이딸라의 와인잔을 사용한다. “잔의 모양과 크기는 전통주 잔과 흡사한데 목이 길고 높아서 평면적인 한식상에 입체감을 준다”는 게 이유다.
 

-메뉴 가격이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오픈 때부터 10만원짜리 한정식을 만들겠다는 내 말에 지인들조차 ‘미쳤다’고 말리더라. 양식·중식·일식은 훨씬 더 비싼 코스 요리도 먹으면서 우린 유독 한식 가격에는 야박하다. 한식이 발전 못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노영희의 한식’은 뭐가 다른가.

“대부분의 한식 셰프들은 다른 한식당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 나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가고, 외국 셰프들이 낸 책을 보면서 한식 프레젠테이션에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한다. 품 서울 오픈 당시 어느 대학 조리과 교수가 ‘이건 한식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는 말을 들었다. 눈에 달리 보이면 맛이 한식이어도 한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전통을 발전·계승시킨 ‘이 시대의 한식’이 필요하다. 내가 만드는 한식은 전통 반가의 음식이고, 담음새나 내놓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그 맛이 변질되진 않는다.”

-한식 요리 연구에 그릇 디자인, 플레이팅 연구도 필요한 이유는.

“기존의 한정식 상차림을 생각해보자. 한상 가득 떡 벌어지게 음식을 올려서 첫눈엔 푸짐해 보이지만 정작 어디로 손이 가야할지 망설이게 된다. 각기 다른 색깔과 형태의 요리를 한꺼번에 내놓으니 음식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그릇들은 서로 각이 잘 맞지 않아 상 위의 차림새도 썩 아름답지 않다. 이런 차림은 결국 음식낭비까지 초래한다. 품 서울의 메뉴를 코스 요리로 제한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리마다 어울리는 그릇을 신중하게 매칭해서 하나씩 내오면 손님이 음식에 집중하기 좋다. 보는 즐거움도 있으니 식사 시간 대화거리가 그만큼 풍성해진다.”

-요리사로서 한식의 발전 가능성은.

“정말 많은 나라를 다녔고 미쉐린이 꼽은 식당들의 음식도 무수히 먹어봤지만 내겐 한식이 제일 맛있다. 맛을 낼 수 있는 재료가 너무나 다양하다. 외국은 주로 소금 간을 하고 나머지는 소스 맛으로 먹는다. 그런데 한식은 소금·간장·새우젓·고추장 등 디테일하게 맛을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특별하다. 다만, 무치고 끓이는 과정에서 비주얼이 망가지는데 바로 이 부분이 한식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현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한식기 디자인과 플레이팅 연구가 그 해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식 세계화를 위해 고민해야 할 것.

음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문화다. 우리 것을 외국에 소개할 때는 너무 과장해도 안 되지만 너무 겸손해도 안 된다. 문화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 가장 좋은 것부터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대사관저와 청와대에서 한식기를 쓰지 않고 본차이나 양식기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대사관저에서 정통한식을 한식기에 제대로 담아 대접하면 외국인들에게 자연스럽게 한국의 고급 식문화를 전달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가진 좋은 음식과 문화를 충분히 활용·발전시키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미셰린 1스타’ 셰프 노영희

리빙센스·우먼센스 등 여성잡지 기자로 5년간 재직. 퇴직 후 1993년부터 24년간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 오뚜기·샘표·CJ 등 대형 식품외식업체를 비롯해 신세계·현대백화점등 유통업체 음식 관련 카탈로그 담당. 한식당 ‘개화옥’ ‘비스트로서울’ 컨설팅. 2008년 ‘품 서울’ 오픈.


글=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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