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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載斗量<거재두량>

중앙선데이 2017.02.12 00:00 518호 29면 지면보기

 
‘용은 지치고 범도 고달파 강과 들을 나눠 가졌다. 이로 인해 억만 창생의 목숨이 살아 남게 되었네. 누가 임금에게 권해 말머리를 돌리게 함으로써 참으로 하늘과 땅을 걸고 한 번 던져 승부를 내게 했을까(龍疲虎困割川原 億萬蒼生性命存 誰勸君王回馬首 眞成一擲賭乾坤)’. 중국 당(唐)대의 문장가 한유(韓愈)가 그 옛날 유방(劉邦)과 항우(項羽)가 천하의 패권을 놓고 싸우던 홍구(鴻溝)란 곳을 지나며 읊은 싯귀다. 여기서 하늘과 땅을 걸고 한 번 던진다는 성어(成語) 건곤일척(乾坤一擲)이 나왔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뜻밖의 사태로 우리 대선이 일찌감치 치러질 전망이다. 추운 겨울이 아닌 벚꽃 피는 따뜻한 봄날에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건곤일척의 승부가 벌어지는 것이다. 잠룡(潛龍)인지 잡룡(雜龍)인지 모를 뭇 인사들이 제각기 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냉소와 한숨을 자아내는 공약(空約)을 마구 생산하면서 어떻게든 여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에서 때론 측은감마저 느껴진다. 적어도 한 나라를 경영하려면 적지 않은 ‘인재 풀’에서 고심을 거듭해 만들어낸 공약(公約)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거재두량(車載斗量)이란 성어가 떠오르는 이유다.

관우(關羽)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유비(劉備)가 70만 대군으로 오(吳)를 공격하게 하자 다급해진 손권(孫權)은 조자(趙咨)를 위(魏)에 보내 도움을 청하게 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결코 오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키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나라 왕 조비(曹丕)는 오만불손한 언사로 조자를 자극한다.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한다면?’ ‘위가 두려운가?’ 등. 계속되는 조비의 모욕적인 말에도 조자는 침착을 잃지 않고 조목조목 논리정연하게 반박해 끝내는 조비의 감탄을 자아낸다.
 
탄복한 조비가 묻는다. “그대 같은 인재가 오나라엔 얼마나 되나?” 조자는 “나 같은 자는 수레로 실어 내고 말로 잴 정도로 많습니다(車載斗量)”라고 답한다. 결국 위는 오를 돕기로 한다. 손권은 곁에 둔 인재로 위기를 넘기게 된 셈이다. 무릇 군주가 되려는 이라면 거재두량의 인재를 끌어 모을 수 있는 넉넉한 품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격변하는 주변 정세를 뚫고 한반도의 운명을 개척해 가려는 지도자라면 말이다.
 
유상철논설위원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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