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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단식 경영’ 선 긋는 이재용, GE·MS식 기업문화 이식

중앙선데이 2017.02.12 00:00 518호 11면 지면보기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삼성의 전략
삼성이 특검 수사가 끝나는대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그룹 ‘콘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한다. 이르면 3월 초, 특검 기한이 연장될 경우 4월 초면 한국 특유의 ‘선단식 재벌 문화’ 대신, 애플ㆍ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 문화를 이식하는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준 삼성 미전실 커뮤니케이션 팀장(사장)은 9일 "그룹 조직은 완전히 해체되는 게 맞다"며 "미전실에 근무하는 차장급 이상 임직원 약 200명은 원 소속 계열사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식 관리경영의 중심으로 불리던 대관 및 정보수집 업무는 대폭 축소한다. 전직 경찰ㆍ언론인 약 70명이 근무중인 미전실 기획팀은 삼성전자 소속으로 편입돼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로 업무 영역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6일 국정조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지난해 12월 6일 국정조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우리도 MS처럼 변할 수 있어야”
실리콘밸리식 개편안 본격 시행

“구시대 총수 역할 포기 않으면
대대적 조직 개편의 의미 없어”


권한 비대한 80년대의 유산 미전실
이재용식 조직 개편의 골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사지원조직(Corparate Staff)을 벤치마크한 형태다. 1차적으로는 인사·법무·기획 등 미전실의 각종 지원 기능을 넘겨받은 전사지원조직을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에 각각 만든다. 미전실이 갖고 있던 지시·통제 기능은 대폭 축소한다. 삼성전자 전사지원조직은 전기·SDI·SDS 등 전자 계열사 간 업무 조정, 해외 기업 인수합병(M&A)를 도맡는다. 삼성물산 전사지원조직은 바이오로직스·바이오에피스의 지원 업무만 관할한다. 삼성생명 전사지원조직은 미전실에 있던 ‘금융일류화위원회’가 그대로 이관돼 금융 계열사 간 통합 시너지 작업을 진행한다. 한 관계자는 "추후 공정거래법 개정 추이에 맞춰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미전실 해체는 1938년 삼성 창업 이후 80년 가까이 계속된 톱-다운 경영 방식의 종료를 뜻한다. 회장의 리더십, 미전실의 기획, 전문경영인의 실행, 이 세가지는 삼성이 스스로 설명하는 ‘성공의 삼각축’이었다. 회장 비서실에서 전략기획실-구조조정본부-미래전략실로 이어지는 삼성의 콘트롤타워는 그룹 전체에 대한 통제와 중장기 전략 마련, 그리고 원활한 경영권 승계가 가장 큰 업무였다. 

 
삼성 비서실은 소병해 비서실장이 1978년부터 12년 간 이끌면서 역할이 크게 확대됐다. 인력이 15개팀 약 250명으로 확대되면서 인사·감사·기획·재무·국제금융·경영관리·홍보까지 그룹 업무 전반을 관장하게 됐다. 96년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삼성SDS 신주인주권부사채(BW) 발행은 전략기획실로 이름을 바꾼 비서실의 작품이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본부로 개편된 비서실은 일사불란하게 부실 계열사를 정리했다. 이학수 부회장을 정점으로 한 구조본은 부실채권만 4조원 규모였던 삼성차를 프랑스 르노에 넘기고, 삼성전자 부천 반도체공장 역시 미국 페어차일드에 매각했다. 
 
하지만 과도한 권한 집중과 목표 달성에만 전력을 다하는 결과주의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2008년 조준웅 특검은 삼성 전략기획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에버랜드 CB와 삼성SDS BW를 헐값에 발행해 이 부회장에게 넘긴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건희(75)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이학수(71) 당시 전략기획실장, 김인주(59) 당시 전략기획실 사장 등을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일로 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실로 개편됐지만 본질적인 역할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박상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회장 직속 조직의 권한이 비대해질수록 계열사의 경영진은 콘트롤 타워의 명령만 기다리는 일이 많아졌다"며 "갤럭시노트7 배터리 폭발 문제만 하더라도 미전실이 아니라 삼성전자 실무진과 엔지니어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개발자 프렌들리 문화, 내달부터 본격 실시
삼성은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다음달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식 조직 개편안을 본격 시행한다. 이 개편안의 핵심은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같은 단계를 건너뛰어 1년차 직원도 프로젝트매니저(PM)가 되면 관리자인 디렉터에게 바로 보고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스탭 직원이 아닌 개발자의 목소리가 경영진에 직접 반영될 수 있는 구조다. 직원 간 호칭은 ‘님’으로 통일했다. 삼성의 한 인사담당 임원은 "이 부회장은 예전부터 왜 삼성이 애플이나 MS·페이스북처럼 운영될 수 없는지를 고민했다"며 "의사 결정구조부터 출퇴근 시스템까지 삼성이 한국식 관습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게 이 부회장의 지론"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부터 삼성 내에서 이 부회장의 공식 직함은 최고조직책임자(COO)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이 최근들어 주목하는 기업은 MS다.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업계의 공룡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MS는 2014년 개발자 출신 사티야 나델라에게 최고경영자(CEO)를 맡긴 후 일순간에 변화했기 때문이다. MS는 최근들어 윈도와 오피스를 웹 기반으로 바꾸고 인맥관리 서비스 링크드인을 260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혁신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나델라 CEO는 공개 석상에서도 셔츠나 후드티를 즐겨입는다.
 
삼성의 새로운 지원조직이 실리콘밸리식 혁신의 아이콘이 될 지 미전실의 또다른 버전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사회 의장 등으로 소통과 조정 위주의 역할을 맡을지 대표이사로 책임지고 경영 일선에 나설지조차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등기 이사로 선임될 때만 해도 곧 이사회 의장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검찰 기소를 피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이사회 의장 또는 대표이사에 선임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삼성 미전실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선 국민들께 사과를 드리고 난국을 수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오는 5월로 예정돼 있던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로드맵 발표도 현재로선 진행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국내외 IT 기업들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에릭 슈밋 회장의 공식 직함은 이그제큐티브 체어맨(Executive Chairman)이다.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CEO로 실행을 맡고 슈밋 회장이 조정하는 형태다. 네이버도 이해진 창업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조정 역할을 하고 실무 결정은 김상헌 대표, 한성숙 차기 대표(부사장)가 내린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이 모든 걸 보고받고 모든 걸 직접 결정하는 '구시대적 총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조직 개편의 의미가 없다"며 "계열사 경영은 CEO에게 위임하고, 내부 구성원을 통합하고 외부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조정자로 본인의 모델을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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