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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앙증맞은 스마트폰의 자석 친구

중앙선데이 2017.02.12 00:00 518호 22면 지면보기
원시인 취급 받으며 낡은 3G폰을 고집하던 친구가 얼마 전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손에 들린 건 최신형 기종이었다. 평소 “전화란 통화만 잘 되면 그만”이라고 했던 친구다. 스마트폰의 현란한 기능을 쓸 줄 모르는 공포가 앞섰을 거다 . 이후가 궁금해졌다 . 이전에 몰랐던 편리함에 열광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우연히 그의 차를 타게 됐다. 대시보드에 놓인 스마트 폰 거치대가 눈에 들어왔다. “뭘 하려고 이런 걸 달았나?”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55> 대쉬크랩의 고스트

친구가 멋쩍게 웃었다. “내비게이션 앱을 써 보니 편리하더라구…” 막힌 길의 우회로까지 일러주는 똑똑한 아가씨의 상냥한 음성에 반한 게 분명했다. 스마트 폰은 원시인의 압축진화마저 이끌어냈다 .
 
40년 동안 세상을 떠돌았다는 나의 이력은 거짓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땅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소상하게 알고 있다는 자부심은 당연하다. 덕분에 한때 내 별명은 ‘뇌비게이션 ‘이었다. 머릿속에 입력된 지형과 도로 번호만 있으면 충분했다. 어떤 도움 없이도 길을 찾아갔으니까 .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던 시절, 뇌비게이션은 꽤 믿을 만했다.
 
세월이 흘렀다. 지금 나의 뇌비게이션 은 무용지물이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조차 새로운 길과 건물이 속속 들어선다. 경계를 벗어나면 혼란은 극에 달한다. 익숙한 랜드 마크는 없어진 지 오래고, 사이사이 새로 들어선 길은 방위와 방향마저 헛갈리게 만든다. 앞서가는 새로움엔 맞서지 말아야 힘의 낭비가 없다. 오랜 세월 쌓은 경험의 무력화는 현실이다. 쓸모없는 뇌비게이션을 꺼버린 자리에 더 많은 새로움이 들어찼다.

자동차 센터페시아에 스마트폰 자리를 허하라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은 똑똑해도 너무 똑똑하다. 최단거리와 빠른 시간의 길을 알아서 찾아주며 예상 도착시간까지 정확하게 일러준다. 우리나라의 내비게이션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믿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독일 차에 들어있는 내비게이션의 성능은 시원찮았다. 유럽 곳곳을 내 손으로 직접 운전해 다녀본 경험의 판정이다. 우리의 내비게이션은 보기 쉽고 정확하며 다양한 안내 멘트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자랑거리로 삼아도 좋다. 객관화된 자신감이 확산될 때 제 나라의 자부심도 커지게 마련이다.

 
이래저래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빈도는 늘어만 간다. 음악을 듣고 길을 찾으며 통화도 해야 한다. 편리한 통합의 도구 앞에 다른 기기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더 진화된 자동차가 나올 때까지 스마트폰의 활용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손에 잘 닿고 잘 보이는 곳에 모셔두어야 할 물건의 일 순위임은 말 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자동차 회사들은 이렇게 중요해진 스마트폰까지는 배려하지 못했다. 이런 물건이 나올 줄 몰랐을 테니까. 운전석에 앉아 대쉬 보드와 센터페시아를 보라. 제 아무리 큰 차도 자그마한 스마트폰 하나가 자리 잡을 곳이 마땅치 않다. 에어컨 송풍부, 오디오, 시계, 조작 스위치로 이미 빼곡하다. 운행에 영향을 미치는 기능들은 하나라도 빠뜨릴 수 없다. 차 안 운전석 부근은 이미 포화상태로 어지럽다.
 
스마트폰은 애당초 차량에 쓰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손에 잡힐 수 있는 크기와 형태로 최적화된 디자인을 보라.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미끈하게 마감된 재질 또한 다른 용도로 전용되기 어렵다. 사용자의 시선과 대응하기 위해서 기존 편의 장치와 부딪치기도 한다. 조작과 고정의 방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편리를 더해주는 스마트폰 사용은 이래저래 자동차와 불화한다.
 
조그만 스마트폰은 당당하게 자동차의 중요 부위를 내 줄 것을 요구한다. 시선을 맞출 수 없는 대쉬보드에 놓여진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다. 센터페시아의 구석자리는 그냥 줘도 쓸모가 없다. 운전대의 오른쪽, 눈과 가장 잘 마주치는 명당만이 스마트폰의 자리다. 조금만 크거나 작아도 깨지는 비례의 균형으로 디자인된 자동차다. 비집고 들어오겠다는 난처한 요구를 들어준 자동차 메이커는 보지 못했다. 기존 기능을 포기하면서까지 스마트폰을 쓰겠다는 게 대세다. 사용의지를 꺾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온갖 스마트폰 거치대는 이래서 만들어진다.
 
작고 정교해 그 자체로 디자인 액세서리
스마트폰 액세서리 제조업체들이 주축이다. 모두 제 물건의 간편한 사용법과 편리함을 내세운다. 값싼 중국제부터 디자인 상품까지 선택의 폭은 넓다. 겉모습은 그럴듯하다. 실제 써보지 않으면 모를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게 스마트폰 거치대다. 쓸 만한 물건은 많지 않다. 매주 강원도 횡성을 드나든 지 반 년이 넘었다. 도로 상황 파악과 빠른 길을 찾기 위한 스마트폰 조작 빈도가 부쩍 늘었다. 고정과 조작이 쉽고 디자인까지 좋은 거치대를 원했다. 온갖 방식의 거치대가 내 손을 거쳤다.
 
스마트폰을 고정하는 방식은 몇 개 안된다. 클립으로 물리거나 스프링 장력으로 조이거나 자석과 끈끈이로 붙이는 거다. 차에 부착하는 방법은 진공 흡판이나 양면 테이프를 쓰거나 에어컨 송풍구나 CD 트레이에 끼운다. 드물게 컵 홀더에 금속 자바라를 연결하는 방식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스마트폰 전용 부착공간이 비워지지 않는 한 불편하다. 부착식 거치대의 한계다. 흡판 방식은 두들두들한 곡면의 대시보드에 고정되지 않았고 송풍구에 끼우는 방식은 쉽게 빠졌다. 조작을 위해 두 번의 손길이 가는 클립 타입이나 스프링 장력방식의 스마트폰 고정부도 문제가 많다. 누구라도 운전 할 때 노는 손은 없다는 걸 만드는 이가 몰랐을 거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 재질의 번질거림도 거슬렸다. 어쩔 수 없이 써야하는 거치대의 불만은 가시지 않았다. 세상사란 직접 겪어봐야 분명하게 알게 되는 법이다. 내가 누군가. 결국 마음에 드는 거치대를 찾아냈다. 조악한 중국제와 구별되는 품격이 돋보이는 물건이다. 대쉬크랩(DASHCRAB)의 고스트(GHOST)다. 독일의 ‘레드 닷’과 우리나라의 ‘굿 디자인상’을 수상했던 회사의 이력에서 밑심을 확인했다. 게다가 ‘메이 드 인 코리아’가 선명하게 찍힌 것만으로 나머지 신뢰를 채우게 된다.
 
차량용 스마트폰 거치대를 만들어온 역사가 꽤 길다. 한 번의 히트 상품을 내고 머무르는 얍삽함도 없다. 꾸준히 개량해 높여간 이 회사 거치대의 완성도는 놀랄 만 했다. 감히 고스트는 대쉬 크랩 거치대의 끝판왕이라 해도 좋다. 그 동안 느꼈던 조작과 편의성의 불만이 가신 탓이다.
 
만화영화 ‘캐스퍼’에 나오는 보자기 둘러 쓴 유령처럼 생겼다. 귀엽고 앙증맞다. 크롬도금의 두께가 느껴지는 단단한 금속의 재질감도 좋다. 거치대라고 느껴지지 않는 작은 크기의 오브제를 차에 들여놓은 기분이다. 형태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석의 흡인력을 이용한 거치대인 까닭이다. 기존의 자석 거치대는 평면으로 만들어져 각도를 바꿀 수 없었다. 화면과 시선을 맞추어야 하는 네비게이션이다. 둥근 윗부분은 스마트폰의 각도를 마음대로 바꾸기 위해 고안된 거다. 섬세한 배려다. 거치를 위해 누르거나 늘려야 하는 조작도 필요 없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자석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는 ‘네오디뮴’ 자석은 원하는 위치에 저절로 달라붙게 해준다.
 
거치대는 사용하지 않을 때 흉물스럽게 보인다. 원래의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고 정교한 고스트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위화감이 없다. 제 차에 뭔가 붙이는 걸 꺼려하는 까다로운 취향을 지닌 이들이라도 받아들일 만 하다. 내 차에 ‘유령’을 붙이고 다닌 지 꽤 됐다. 남들은 모르는 생활의 즐거움이 커졌다. 제대로 만든 물건의 힘이다. ●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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