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속으로] "팔·다리 이식은 불법, 감옥에 갈지도 허허…"

중앙일보 2017.02.11 01:00 종합 17면 지면보기
국내 최초 팔 이식수술, 대구 W병원 우상현 원장
지난 3일 대구시 남구 영남대학교병원 세미나실에서 열린 수술 결과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우상현 대구 W병원장. [사진 대구시]

지난 3일 대구시 남구 영남대학교병원 세미나실에서 열린 수술 결과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우상현 대구 W병원장. [사진 대구시]

“현행법에 ‘팔’은 이식 대상 장기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팔을 기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도 그냥 화장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성공률 90%, 이식한 30대 상태 양호
장기이식법에 팔·다리는 명시 안 돼
복지부 “범법 소지, 경위 파악” 공문

2011년 이식 금지된 위장·십이지장
서울아산병원 수술 강행 후 법 개정
장기이식 정책 적극적으로 바꿔야

지난 3일 오전 대구시 남구 영남대병원 호흡기센터 세미나실. 대구 W병원 우상현 병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내 최초로 팔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열린 수술 결과 보고회 자리였다. W병원·영남대병원 의료진 30여 명이 이 수술에 참여했다. 전날 오후 4시부터 10시간에 걸친 대수술로 모두가 지친 상태. 하지만 우 병원장은 휴식도 마다하고 보고회를 열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의료법을 질타했다. 국내 최초로 실시한 팔 이식수술을 축하해야 할 자리에서 그가 이런 지적을 한 이유는 뭘까.
우 병원장은 30여 명의 의료진과 함께 국내 최초 팔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진 대구시]

우 병원장은 30여 명의 의료진과 함께 국내 최초 팔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진 대구시]

현행법에도 없는 수술이 이뤄지게 된 이유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 수술은 의료진의 순간적 판단으로 시작됐다. 지난 1일 교통사고를 당한 40대 남성이 뇌사 판정을 받고 유족이 그의 신체·장기 기증을 결심했다. 이 남성은 팔뿐만 아니라 간과 심장·폐·관절·골수·뼈 등 의학적으로 이식 가능한 모든 신체기관을 기증했다. 이 중 팔 이식 여부는 의료진이 선택해야 할 문제였다. 관련법에서 팔 이식수술을 허용하지 않고 수술 자체가 워낙 복잡해 그동안 국내에선 팔 이식수술이 없었다. 의료진은 유례없는 팔 이식수술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팔 이식수술은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72건만 시행됐다.
추천 기사
언뜻 생각하면 심장·폐 같은 내부 장기 이식이 더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부 장기는 한 가지 종류의 조직인 반면 팔은 뼈와 근육·혈관·신경·피부 등 다양한 종류의 조직을 동시에 이식해야 하는 고난도수술이다. 힘줄이나 혈관·신경을 한 가닥씩 꼼꼼히 꿰매야 한다. 이식을 받게 될 환자는 W병원에 등록된 팔 이식 대기자 중 한 명이었다. 신체 기증자와 혈액형·성별이 같고 뼈 크기, 근육량 등이 비슷했다. 30대 초반인 그는 1년6개월 전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왼쪽 팔을 잃었다.
의료진은 이식수술을 결정하고 2일 오후 수술에 들어갔다. 10시간에 걸쳐 왼쪽 손목 위 약 10㎝ 부위에서 뼈와 신경·근육·혈관을 정교하게 연결하는 오랜 수술이 진행됐다. 수부외과·성형외과·정형외과·신장내과 등 10여 개 진료과가 힘을 합쳤다.

결과는 현재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새 팔이 잘 자리 잡고 거부반응이 없는지 판가름 나는 1~2주를 더 지켜봐야 성공 여부를 알 수 있지만 환자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상태다. 환자는 앞으로 면역억제제를 꾸준히 처방받으며 낯선 왼팔과 친해져야 한다. 이준호 영남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결과적으로 팔이 제 기능을 하는지 지켜본 뒤 성공 여부를 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우 병원장은 “전 세계에서 이뤄진 팔 이식수술 결과로 미뤄 볼 때 성공률은 90% 정도”라며 “1999년 미국의 한 응급구조사가 팔을 이식받고 18년간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 경과와는 별개로 의료진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지금부터다. 현행법상 팔이 이식 대상 장기에 포함되지 않아 위법 소지가 불거지면서다. 수술 결과 보고회에서도 우 병원장은 “잘못하면 감옥에 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과 ‘인체조직 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는 심장·신장·췌장·간·폐·골수·안구·피부·혈관 등이 이식 대장 장기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팔과 다리, 안면 등 법에 명시되지 않은 신체기관은 범죄에 이용될 위험성이 있어 이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수술 직후 영남대병원에 한 통의 공문을 보냈다. 팔 이식을 추진하게 된 경위를 파악해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의료진은 반발하고 있다. 우 병원장은 2011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뤄진 이식수술을 예로 들었다. 그는 “위장과 십이지장도 이식이 금지된 장기였지만 서울아산병원이 희귀병을 앓고 있는 7세 어린이에게 대장·십이지장 등 여러 장기를 이식하는 수술을 강행해 이후 법이 개정됐다”며 “다른 나라에선 이식이 가능한 장기들을 한국에선 이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팔다리 이식수술과 관련 처방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을 경우 개인이 감당해야 할 수술비용은 수천만원이다. 평생 복용해야 할 면역억제제도 한 번 사용에 100만원 이상이다. 이번에 팔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는 병원에서 비용을 부담해 줘 수술비는 내지 않았지만 평생 수시로 투여해야 할 면역억제제가 한 번 복용에 140만원씩 든다. 우 병원장은 “팔 이식수술은 99년 미국에서 최초로 성공한 후 전 세계 의학자가 꾸준히 연구하며 발전시켜 온 기술”이라며 “국내 의료정책도 장기 이식에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S BOX] 면역억제제 발달한 1950년대부터 장기이식 활발
 

이식수술의 역사는 기원전 10세기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니콜라스 틸니(Nicholas L. Tilney) 가 쓴 『트랜스플란트』에 따르면 고대 인도에는 범죄자의 코를 자르는 형벌이 있었다. 수슈루타(Sushruta)라는 의사가 코가 잘린 범죄자의 이마 피부를 떼 코 부분에 이식한 것이 인류 최초의 이식수술이다. 수슈루타는 이마 피부를 얇게 썰어내 코 모양을 만들어 이식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수혈이다. 1819년 영국의 의사 제임스 블런델(James Blundell)이 간호사 팔에서 혈액을 뽑아 산모에게 수혈, 목숨을 구한 게 처음이다. 결과가 항상 좋진 않았다. 알맞은 피를 수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01년이다. 오스트리아의 란트슈타이너(Landsteiner) 박사가 ABO식 혈액형을 발견하면서다. 피부에 이어 이식에 성공한 신체기관은 각막이다. 각막 이식이 일찍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거부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부반응은 이식 수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었다. 1950년대 과학자들은 우리 몸이 외부에서 온 조직을 거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면역억제제와 마취제가 발달한 뒤부터 본격적인 장기이식의 시대가 열렸다. 1954년 미국 조셉 머리(Joseph Murray) 박사는 세계 최초로 신장 이식수술에 성공한다. 이어 췌장·간·심장·폐 등의 이식이 차례로 이뤄진다. 1990년대부터 팔과 다리처럼 더욱 복잡한 조직의 이식이 가능해진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