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속으로] 놀이가 문명을 이끈다

중앙일보 2017.02.11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원더랜드
스티븐 존슨 지음

권력욕·물욕 등 ‘진지한’ 욕구 아닌
유희 욕구가 산업·정치혁명 낳아

장난감·스마트폰·인공지능처럼
새롭고 즐거운 것이 곧 인류 미래

홍지수 옮김, 프런티어
444쪽, 1만6000원

『창세기』에 따르면 사람에게 노동은 죄에 따른 업보다. ‘노는 게 일’이었던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이 처음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하지만 ‘신(神)의 모상(模像)으로 창조됐다’는 인간은 결코 만만치 않은 존재다. 금방 적응했다. 적어도 인간 중 일부는 일을 즐겁게 한다. 사람은 유희인(遊戱人·호모루덴스)이다. 4만3000년 전에도 사람은 곰의 뼈로 만든 피리로 음악을 즐겼다.

베스트셀러 과학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이 쓴 『원더랜드』에 따르면, 사람은 일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진보한다. 존슨이 생각하는 놀이(play)는 “일이 아닌 모든 것”이다. 취미·게임·레저·여가·쇼핑·마술·스포츠, 시간을 때우려고 하는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존슨은 말한다. “사람들이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모든 곳에 미래가 있다.” 사람은 입고, 먹고, 맛보고, 수다 떨고, 즐기는 가운데 ‘미래의 에덴’을 향해 나간다는 게 존슨의 주장이다. 권력욕·물욕·명예욕 같은 ‘진지한’ 욕구가 아니라 ‘놀이 욕구’가 산업혁명·정치혁명과 진보·혁신을 낳았다는 것이다. 놀이는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친숙한 인과관계를 존슨은 뒤집는다. 혁명과 진보 덕분에 사람들에게 시간 여유가 생기고 놀거리가 다양해진 게 아니다. 놀이는 혁신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왜 그럴까. 사람은 새롭지 않은 것에서는 흥미를 찾을 수 없다.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처음 생긴 지 10년 만에 83곳으로 늘어났다. 프랑스 파리의 살롱과 달리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남성 전용이었다. [사진 프런티어]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처음 생긴 지 10년 만에 83곳으로 늘어났다. 프랑스 파리의 살롱과 달리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남성 전용이었다. [사진 프런티어]

15세 때부터 작가를 꿈꿨던 존슨은 자신의 테제를 입증하기 위해 선사시대에서 시작해 8세기 바그다드를 거처 21세기 실리콘밸리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수많은 ‘신기한’ 예를 든다. 이런 것들이다. 바그다드에서 생산된 ‘로봇 코끼리’ ‘자동 피리부는 사람’ 같은 ‘장난감’은 톱니바퀴·펌프·밸브·실린더로 움직였다. 공학의 원리가 장난감 속에 들어 있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지롤라모 카르다노(1501~1576)는 도박에서 이기기 위해 확률론을 창안했다. 확률론은 보험업이나 디자인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케 했다.

타이어를 비롯한 고무제품의 조상은 라틴아메리카 올멕 족이 공놀이에 사용한 공이다. 술집과 찻집에서 사람들이 노닥거리는 가운데 계몽주의, 민주혁명과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운동이 싹텄다. 16·17세기에 점점 정교하게 만들어진 뮤직박스는 컴퓨터의 먼 조상 중 하나다.

세계화나 인공지능(AI)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존슨에 따르면 걱정할 필요 없다. 그의 핵심 주장인 “사람들이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모든 곳에 미래가 있다”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이나 포켓몬 같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곳에 미래가 있다. 놀이 속에 산업혁명 4.0이 있다.

21세기도 놀이가 이끄는 발전은 계속된다. IBM의 왓슨은 퀴즈쇼 ‘제퍼디!’에 등장하더니 암 진료 등 의료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바둑이라는 인류가 개발한 가장 고상한 놀이에 첫 선을 보인 알파고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로봇학 박사인 데니스 홍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UCLA) 교수는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 자연에서 뛰어 논 게 홍 교수 창의력의 비결이다. 존슨은 홍 교수의 말이 맞는다고 ‘지원사격’하려는 듯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관찰해보면, 그들은 의식하지 않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한다.”

『원더랜드』를 우리말로 옮긴 홍지수 번역가는 KBS 뉴스 앵커 출신이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컬럼비아대 국제대학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공부했다.
 
[S BOX] 상식 넘는 반직관적 글쓰기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탄핵 사태가 민주당·국민의당에 불리하고 자유한국당·바른정당에는 유리하다’는 주장은 반직관적(反直觀的·counterintuitive)이다. 반직관적인 말은 얼핏 봐서는 거짓말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을 찌른다. 상식적인 것의 안정성을 좋아하는 독자와 상식을 깨는 즐거움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다. 후자가 존슨의 팬이다. 『원더랜드』의 저자 스티븐 존슨은 반직관적 글씨기의 마술사다. 상식을 넘어서는 미래의 새로운 상식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존슨에 열광한다. 브라운대(기호학)와 컬럼비아대 대학원(영어영문학)에서 공부한 존슨은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이머전스』 『굿바이 프로이트』 등 10권의 책을 썼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