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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삶이 아픈가요, 응급약 같은 시

중앙일보 2017.02.11 01:00 종합 19면 지면보기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정호승 지음, 창비
170쪽, 8000원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지음, 문학세계사
120쪽, 1만1500원

세상 파도가 높고 거세 삶이 위태로울수록 갈급한 건 멀리 있는 피난처의 좌표가 아니다. 당장 매달릴 수 있는 구명조끼, 통증과 출혈을 즉각 멈추게 하는 응급약이다. 소개하는 두 시집이 이를테면 그런 성격이다. 언어실험이나 자기 갱신 같은 예술적 기획보다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보듬어온 시인들의 작품집이어서다.

두 사람 중 연장자(김종해)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곁불” 같은 서정시집들인데, 두 시집의 내력은 다르다. 생년이나 등단 연도에서 모두 10년 가량 선배인 김종해(76) 시인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는 50년 넘은 시인 인생을 결산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펴낸 11권 시집, 700편 중에서 가려 뽑은 서정시 33편을 실었다.
정호승(左), 김종해(右)

정호승(左), 김종해(右)

베스트셀러 시인 정호승(67)의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는 4년 만의 신작시집이다. 요즘 시국과 관련해, 시사적으로도 읽을 수 있는 제목(가령 가짜 희망을 거절한다는 뜻이다!)의 시집에는 110편이 꾹꾹 눌러져 있다. 그중 3분의 2 정도가 미발표 작품이라고 한다.

상처나 가려운 곳, 다른 식으로 말하면 독자의 감수성을 콕콕 찌르는 언어 구사의 달인들인지라 시집의 어느 쪽을 펼쳐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소통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알기 쉬운 시편들이다 보니 턱 막히는 문장 앞에서 고민할 일도 없다.

김씨의 시집은 차분한 정물화, 정감 넘치는 풍경화 같은 느낌이다. 그 중 ‘사모곡’은 이 땅의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보편적인 ‘불효자 의식’을 건드린다.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

정씨의 시편들은 묘사보다는 진술이 두드러진다. 그러니 인생 통찰 식의 잠언 성격이 강한데 이런 측면이 오히려 사람들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데는 제격일 게다.

‘어느 산 밑/ 허물어진 폐지 더미에 비 내린다/ 폐지에 적힌 수많은 글씨들/ 폭우에 젖어 사라진다/ 그러나 오직 단 하나/ 사랑이라는 글씨만은 모두/ 비에 젖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첫 머리에 실린 ‘폐지(廢紙)’ 전문이다. 시집의 작품들이 인생의 단맛, 쓴맛, 신맛을 두루 겪은 중장년층에 특히 어울릴 것임을 예고한다.
 
[S BOX] 노랫말이 된 정호승 시만 40여 편
혀에서 살살 녹는 달콤한 사탕 같은 시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시의 출발은 노래인지라 두 시인의 작품은 노래로 만들어진 것도 적지 않다. 노래 분야에서는 정호승씨가 앞서 있다.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가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우리가 어느 별에서’ 등 40여 편이 노랫말로 쓰였다. 이번 시집에서도 가령 이런 구절은 감성적이다. ‘섬진강 강가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비로소 강물을 사랑한다는 것이다’(‘강가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부분).

김종해 시인 시집에서는 ‘바람 부는 날’ 등 세 편이 성악곡·국악가요 가사로 쓰였다고 한다. 그중 ‘그대 앞에 봄이 있다’는 지난해 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려 자신의 심경을 피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시 구절대로 이번 추위가 지나면 봄이 코앞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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