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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신현림의 매혹적인 시와 사진 이야기 #12. 이 방에는 도로 표지판이 없네

중앙일보 2017.02.07 00:01
- 존 라프맨, 케이티 그랜넌, 윤정미, 심규동
 
작가 이전에 서민으로서 조국 미래의 삶을 생각하면 암담하다. 노후보장이 안된 한국생활은 참혹하기까지 하다. 자식 양육 문제만 해도 오래전에 나는 어떻든 애를 낳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애를 혼자 키울 바에는 낳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죽고 싶을 만치 힘들고, 고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홍익인간으로 살아야 되지 않나요. 입양이라도 하세요. 남의 아이, 내 애 가르지 말고요. 키우는 정이 더 무서워요. 입양하는 이들에게 복지혜택을 주는 법령이 생기면요.’ 라고 농 반, 진 반 던지기도 한다. 오늘은 반 고흐가 “살아가면서 의혹과 슬픔, 고독을 느끼더라도 마지막에 있을 기쁨을 생각하며 오늘의 고난을 이겨내리라” 한 말을 도로 표지판으로 삼고 싶다. 마음속에 도로 표지판을 삼을 글 꾸러미, 시 꾸러미를 많이 갖고 있으면 힘겨운 오늘을 살아내기가 조금 쉬워질 수 있다. 그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앤 색스턴의 시 <음악이 내게로 헤엄쳐 돌아오네>의 일부가 내 가슴에 헤엄쳐 온다.
 
기다리시게 신사 분. 어디가 집에 가는 길인가?
그들이 등불을 꺼버렸네.
그리고 어둠이 저 구석에서 움직이고 있네.
이 방에는 도로 표지판이 없네,
네 명의 여인네가, 80이 넘었는데.
기저귀를 차고, 각각 하나씩,
라 라 라, 오, 음악이 내게로 헤엄쳐 돌아오네.
그리고 그들이 연주하는 곡조를 나는 느낄 수 있네.
그들이 나를 떠난 그 밤.


아주 사소한 날씨의 변화에조차 민감해져 자신이 갈 길을 잃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인생에서 스스로 도로 표지판을 만들어가는 일로 모두 고민한다. 인생의 시련을 잘 이겨야 우리는 미생에서 완생으로 간다. 그 고난 중에 인생을 미생으로 만드는 지루함. 사람이 지루해하면 마음이 허하다. 배는 더 고프고, 그리움도 큰 법이다. 그럴 때 나는 존 래프맨(Jon Rafman)의 작품을 만났다.
바람에 펄럭이는 하얀 빨래, 교통사고로 전복된 자동차, 하얀 천에 덮인 시신, 불타는 차, 거리에 날아가는 호랑나비 한 마리, 매 맞는 여자, 아이들... 그가 찍은 삶의 현장들은 놀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Google Street View의 시리즈로 잘 알려진 예술가다.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81년생이다. 그냥 사진이구나 했는데, 이게 범상치가 않았다. 이게 현실인가 싶을 만치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그는 이 사진으로 도로 표지판을 찾을 길 없는 세상에서 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인생은 무어지? 라고 묻는 듯했다. 지루해하고, 배고프고 그리운 것을 못 참는 몸만 있는 사람을 나는 본다. 뜨거운 오후 3시의 나른하고 권태로운 거리에 나비 한 마리 날아간다. 마치 누군가의 떠도는 영혼만 같았다.
여기서 작가 케이티 그랜넌의 인물들을 보자. 마음의 도로 표지판을 못 찾는 게 아니라 아예 찾을 생각을 안 한다. 그러면서 지루해하고, 권태로워 간신히 시간을 견디는 표정들이다. 케이티는 모델을 찾기 위해 지역신문에 광고를 냈다. 참 굉장한 용기다. 서로 처음 본 사진가와 모델은 서로 믿음이 단단하다. 잘 찍고 싶은 마음과 깊숙한 자신의 마음까지 끌어내 보이길 원했을 마음이 만나 비밀한 에너지를 안은 사진이 태어났다.

케이티 그랜넌의 사람들 표정은 왠지 저렴하고 천박해 보였다. 멋진 옷을 입고 나섰는데도 초췌해 보였다. 사람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이 동전 양면처럼 붙어있다. 케이티는 추하고 악한 모습에 초점을 둔 것 같다. ‘이게 사람이야, 잘난 척, 강한 척은 그만하라고. 약하면 약한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솔직해 보라고, 그게 어때서. 그게 사람이 가진 모습인 걸.’ 이런 울림이 작품 속에서 스며 나오는 듯했다.

전시장을 나와도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내 안의 어둡고 초라할 때 모습을 들킨 듯한 기분이 들어서일까. 당신은 누구지? 나는 누구일까? 다시 묻게 된다. 스스로도 낯설어질 때, 실망하고 창피해하면서도 조금은 더 겸손해질지 모른다. 불만도 없어지고, 조금 더 내 앞길이 잘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예술의 중요한 역할인 정서적 균형감을 되살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선하고 순수한 근성 쪽으로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지 않을까. 인생의 시련이라 할 때는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있을 때다. 시련이 아닌 운명은 무엇일까. 그 운명은 국가적 사회적이랄 수 있겠다. 빈부격차가 심한 우리나라에서 무연고 죽음과 가난으로 인한 자살을 사회적 살해라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위 질문을 우리나라 중견 사진가인 윤정미 작품에서 한 단면을 읽었다. 그녀의 “It Will Be a Better Day _ 근대소설”은 그녀가 1920년대에서 70년대까지의 한국단편소설 모음집을 보며 인간들의 근본적인 욕망, 오해, 의심, 질투, 빈곤에 관한 문제, 물질만능의 세태에 대한 얘기 등등 인간 사회의 뿌리들을 살피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그녀가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의 마지막을 재현한 장면이다.

행랑살이를 하는 어멈과 남편 화수분이 추운 겨울날 고개에서 얼어 죽고 어린아이만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로 전영택은 ‘이것이 인생’이라는 비극적 세계관을 그려냈다. 그녀는 이 소설을 오늘의 시선으로 사진을 재현한 것이다. 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장소 헌팅하고, 인물에게 입힐 옷을 사러 다니고, 연출하기 위한 노고가 참 컸으리라 생각된다. 여기서 나는 전영택 소설가의 결정론적 인생관은 지금 시대와는 또 다르다고 본다. 지금의 무연고 죽음과 가난으로 인한 죽음은 ‘국가적. 사회적 살해’라고 말하고 싶다. 윤정미 사진가도 조금이라도 빈부격차가 심한 우리 사회가 달라지길 간절히 바라며 작업했을 것이다.
심규동은 곧 나올 눈빛 사진가 시리즈에 <고시텔-영혼의 집>란 사진집으로 데뷔한다. 기대되는 신예 사진가로. 자신이 머물렀던 고시텔을 찍었다. 그 고시텔에서 느낀 감정들이 고스란히 배여있어 충격적이다. 보기만 해도 우울해지고 슬퍼지는 고시텔. 7포세대, 흙수저라는 비관하는 청춘들의 생존 현장이다. 또한 오갈 데 없는 중장년층의 집이다. 어떻게든 잠 잘 수는 있어도, 어떻게도 일하고 놀 수 있는 장소로는 보이지 않는다. 심규동의 칼라작업은 색감까지도 권태와 우울과 피로감이 얼룩져 있다. 항상 솔직할 때라야 타인과 세상에 진정 스밀 수 있고, 일깨우고 공감하고 저항할 수 있다.

세상의 위선과 위험을 깨부수고 나갈 수 있다. 어쩜 감추고 싶을 공간, 자기 약점일 수 있는 그 여린 살까지 드러내 보여 관객의 눈길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렸다면 어떻게 전달이 될까. 그림으로 그려야 할 것이 있고, 사진으로 찍어야 할 것들이 있다. 두말이 필요 없는 사진만이 가진 힘, 다큐의 힘이다. 그의 사진을 통해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읽게 된다. 참으로 이 방에는 도로 표지판이 없다. 정말 누가 젊은 청춘들을 고시텔로 내모는가?
나는 초기 사막의 교부 실비누스의 경고를 곱씹고 싶다. “가진 재능보다 더 큰 명성을 누리면 너희는 불행하다” 이 말은 자신의 노력에 비해 많은 것을 가졌거나, 약탈했거나, 나누지 않고 독점한 이들에 대한 경고다. 지금의 정치 상황은 곳곳에 썩어 곪아 터진 것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누지 않고 독점하고 약탈한 거짓 인생이 무언가를 최순실 게이트에서 충격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미래의 도로 표지판이 어디로 향할지 걱정되는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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