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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인 더 룸 #11

중앙일보 2017.02.04 00:01
"형! 누가 오긴 온다. 신기하네."
 
"뭐가?"
 
"인터넷 5분만 뒤져도 죽이는 야동 수두룩하게 찾는데. 진짜로 하는 거. 검색할 줄 몰라서 그러나?"
 
"얼른 먹고 가라."
 
"여기서 하는 영화 형도 봐? 시시하지 않아? 내가 검색하는 거 가르쳐 줄까?"
 
"이 새끼, 이거 다 일러야 하는데... 엄마랑 선생님한테."

 
진율이가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다. 어머니를 닮아 웃을 때는 강아지 같은 인상이다.
작년에 처음 찾아왔을 때는 성인영화관에 처음 와본다며 엄청 긴장했으나, 이제는 자기가 카운터를 본다면서 내 자리에 앉기도 한다.
 
혈흔이 낭자한 손가락에서 태어난 진율이. 잘린 손가락이 자라 진율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진율이는 내 키만큼 자랐다. 발로 차내고 겁을 줘도 꼬리 치며 쪼르르 달려오는 강아지. 내 몸통으로 자석처럼 달려들어 응석을 부린다. 진율이는 내가 쫓겨온 시골의 분위기를 몰고 이곳까지 오곤 했다. 시골집 마당에 떨어지던 낙엽의 색깔이나 추수가 끝난 들판의 허망함 따위가 진율이의 숨결과 표정에 배어 있었다.
 
진율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을 때 나는 깊은 수렁 속으로 처박혔다. 그것이 진율이 탓이었을까. 아니면 연화. 아니면 나의 어머니.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누런 코를 흘리며 '형아' 하고 들러붙는 녀석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진율이와 나에게 아버지란 무엇일까. 율이와 나의 아버지는 결이 거친 돌멩이다. 그대로 제자리에 두면 평범한 돌멩이, 손으로 만지면 무겁고 거친 감촉을 느끼게 하는, 하찮다면 하찮은 돌. 율이와 나는 다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우리 둘 다 아버지로 인한 정서가 있었다.
 
율이가 젖먹이 때였다. 손가락은 충분히 아물었고 미숙한 율이의 얼굴을 벌레 보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잠들었던 율이가 갑자기 응애 응애 하고 울음을 터트렸고, 벌을 줄 요량으로 마디가 없는 손가락으로 볼을 세게 툭툭 두드리니 율이가 얼굴을 돌려 손가락을 있는 힘껏 빨기 시작했다. 통증이 밀려올 정도로 부드러운 혀를 움직여 세게 빨 때, 얼마나 기이하면서 벅찬 기분이 들었는지 얼음조각을 문지른 듯 등에 쫘악 소름이 끼쳤다. 처음에는 손을 빼려고 했지만, 기분이 너무 이상해 움직일 수 없었다. 방에는 싸늘한 공기와 진율이와 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울음을 멈춘 후 빨간 혀를 앙증맞게 내밀고 나를 당기는 힘에, 두꺼운 솜이불에 쌓인 율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눈물이 율이의 볼에 후드득 떨어트렸다. 율이의 부드러운 혀가 손가락을 쪽쪽 빨아들일 때, 경악스럽고 황홀한 감촉을 느꼈다. 심연의 깊은 어둠과 눈을 찌르는 공허한 햇살이 공존했다. 율이와의 게임은 나의 완패로 끝났다. 율이의 감촉에 나는 바보처럼 웃다가 울었다. 나에게 지옥의 문을 열어준 것도 율이, 천국의 빛을 내린 것도 율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닮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율이와 나는 닮았다. 어린 시절 사진을 꺼내보면 율이는 영락없는 내 동생이다. 지나가는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 왜 내 그림자에서 매일 다른 나의 아버지를 보았을까. 율이가 본 아버지는 율이의 그늘에서 율이와 함께 성장했을 것이다. 오히려 망나니가 되었던 나보다는 율이가 더 성숙하게 아버지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율이의 졸업사진에는 어머니, 율이,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식구가 세월처럼 빛바랜 채 담겨있다. 유치원, 국민학교, 그리고 중학교까지. 율이는, 나의 잘린 손가락이 자라 사람의 모습이 된 것 같았다. 율이가 있는 힘껏 내 잘린 손가락을 빨아들일 때, 율이는 내 인생이 빚이 되리란 걸 예감했다.
 
"왜 안가. 용돈 달라고?"
 
"오. 천재다. 어케 알았을까..? 형은 역시 모르는 게 없어."
 
"집에서도 받잖아. 네가 나보다 더 많이 받을걸..."
 
"좀 있다 친구랑 게임 사러 가기로 했다고, 이미 약속했다고요."
 
"그럼 탕수육을 처먹질 말든가 새끼야. 먹을 거 다 처먹고 또 돈 내놓으라고?"
 
"왜 그래 형, 치사하게..."

 
기어코 지갑에 있는 지폐를 다 꺼내 율이 손에 쥐여준다.
 
"엄마가 가끔 나 부를 때 형 이름 불러... 형 설에 집에 올 거지?"
 
"아니, 안 가."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싣고 서울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반겨준 것은 극장의 헐벗은 간판이었다. 다행히도 서울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스포츠머리의 배에 괴수의 이빨 같은 깨진 병을 쑤셔 박았을 때, 내 분노가 막다른 골목까지 온 것을 직감했다. 바닥까지 왔다고 깨달았을 때 충분했다. 잘못을 뉘우쳐 더 이상의 사고를 안 만든 게 아니라, 더 나빠질 것이 없기에 만족했다. 누구의 죄로 내가 그곳까지 가게 되었는지, 누구를 용서해야 할지 알지 못했지만 하얀 도화지에 소년원 사람들의 얼굴을 채워가는 것이 지나온 사람들에게 주는 유일한 위안이라는 것을 소년원에 들어가고, 그곳 생활에 적응한 후가 돼서야 깨달았다.
 
어머니의 위치는 소년원 생활을 하게 된 나로 인해 점점 좁아졌고, 동네 유지였던 주인 영감은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 주인 영감이 갖고 있던 몇 개의 건물 중에 가장 값어치 없고 처치 곤란한 이 극장으로 그렇게 흘러오게 되었다.
 
율이는 속 사정을 알고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걸까. 평생 살았던 곳이지만 반겨줄 사람은 없다. 괜찮다. 원래 다른 사람들로 인해 지나온 시간들은 그렇게 지나치게 두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연화가 가끔 꿈에 나오기는 했다. 신 행세를 하며 죽이려 했고, 마음에 두었으며, 깊숙이 남겨둔 유일한 사람이 연화였다. 연화의 얼굴을 본 마지막은 소년원에서 나온 뒤, 서울로 오기 전이었다.
 
연화와 내가 지나왔던 길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친구이자, 첫사랑, 그리고 이제는 조카. 탐욕스러운 새아버지 덕에 나는 조카를 향한 욕망을 다른 여자들에게 투영해 처리했다. 읍내로 친구들과 어울려 나오던 연화는 어느 날부터 흔적을 감췄고 한 번도 내가 살던 집으로 건너오지 않았다. 모르겠다. 술에 취해 다른 여자들과 살을 비비고 있을 때 다녀갔는지도. 1년 뒤 연화를 마주쳤을 때 연화의 동그란 눈은 사슴처럼 커졌고, 역시 놀란 사슴이 뒷걸음치듯 재빨리 사라졌다. 그리고 소년원을 나왔을 때 연화를 다시 보았다. 집이 아니라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연화의 집 근처였다.
 
"황연화."
 
연화는 키가 더 커졌고 눈은 까만 아름다운 밤하늘처럼 공허했다. 그 깊은 눈을 내리깐 채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어... 범구, 오랜만..."
 
"저번에도 봤지? 네가 도망갔잖아."

 
연화는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렸다.
 
"어?... 나... 나 그런 기억 없는데."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걸까.
 
"그래 뭐. 네가 없다고 하면 없는 거지."
 
"범구야... 나 일이 있는데...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중에 언제."

 
계절이 얼마나 지나야 마주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연화와 이야기하는 것이 오늘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좀 나중에... 범구야."
 
"나중에 뭘 또 봐. 나 불편하잖아. 싫고."
 
"나는 그냥..."

 
침묵을 깨고 분위기에 맞는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미안해."
 
안절부절 초조해하는 연화의 모습을 보니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나와버렸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을 삭히고 왜 나는 연화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을까. 상관없다. 앞으로 나는 모르는 사람이 될 테니까.
 
"... 어?"
 
"미안하다고."
 
"뭐가 미안해..?"
 
"그냥 미안해. 갈게."

 
내 말을 듣자마자 연화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라 당황했다. 어쩌면 내가 연화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미안하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연화가 그날 밤 일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손은... 괜찮니?"
 
다행히 연화의 방에 갔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제 다 나았어. 봐봐."
 
숨을 한차례 돌린 뒤 손가락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화도 많이 나고 했는데, 다 지난 일인데 뭐."
 
연화가 망설이다 대답했다.
 
"너 애들한테 뭐 하고 다녔는지 얘기 다 들었어."
 
이 정도는 예상했다. 어차피 시골 읍내 바닥이야 소문나는 건 금방이니까.
 
"왜 한 번도 안 나타났냐. 나 피해 다녔어?"
 
"가기 싫어졌어. 갑자기."
 
"나 며칠 뒤면 서울로 쫓겨날 거 같아. 오늘 마지막일 수도 있어. 노인네가 영 불편한가 봐. 잘 됐지 뭐."
 
"못 보니? 이제?"

 
이젠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지만 더 이상 말을 잇기 힘들었다.
 
"잘 지내라. 다 잊을 거야. 그동안 있었던 일들."
 
연화에게 얘기했던 게 아니라 나에게 한 약속이었다.
 
 
 
*
 
 
"형 그림도 그려?"
 
"응. 심심하잖아 하루 종일 여기에 있으면."
 
"오 좀 그리는데~“
 
"덮어놔. 괜히 뒤적거리지 말고."
 
"뭐야 거의 다 비슷한 포즈네.. 어? 이거 여기 오는 사람들이구나!"
 
"이제 알았냐..."
 
"어? 여자도 있네? 여기 여자도 와?"

 

작가 소개  
조금 어린 나이의 결혼 그리고 빠른 나이의 이혼, 통신회사, 콜센터, 어학원 운영 중 경영악화로 빈털터리가 됨. 2년간 낙오자라는 패배감으로 자폐적인 시간을 보내던 중 무작정 세계 여행을 시작. 1년 정도 해외 여행 중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 성을 사회적, 문화적으로 조망하는 시와 수필을 SNS에 연재 중이다.
 
<아스팔트에 핀 꽃> 동인 시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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