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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간 그를 추억하며…‘유재하 장학생’들, 1년간 릴레이 콘서트

중앙일보 2017.02.02 01:00 종합 22면 지면보기
유재하 동문회는 장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정지찬(왼쪽)과 회장직을 넘겨받은 스윗소로우의 김영우 등이 주축이 돼 운영되고 있다. LP판을 들고 온 정씨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들었더니 목소리가 비슷해져 모창대회 출신이냐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재하 동문회는 장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정지찬(왼쪽)과 회장직을 넘겨받은 스윗소로우의 김영우 등이 주축이 돼 운영되고 있다. LP판을 들고 온 정씨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들었더니 목소리가 비슷해져 모창대회 출신이냐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재하(1962~87)를 추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그가 남긴 보석 같은 데뷔 음반이자 유작이 된 1집 ‘사랑하기 때문에’를 천천히 곱씹을 수도 있고, 2014년 리마스터링으로 한층 생생하게 돌아온 그의 목소리를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올해는 30주년을 맞아 보다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났다. 연초 개봉한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속에서 숨은 유재하 찾기를 하는 것도, 매달 열리는 ‘유재하 30주기 추모 릴레이 동문음악회 공연’을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들은 스스로 ‘동문’이라고 부른다. 유재하의 음악적 후예, 유재하 스쿨의 생도라는 뜻에서다. 이외에도 이들이 함께 모인 대형 콘서트와 프로젝트 앨범까지 준비 중이라니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무대가 기대된다.
유재하

유재하

유재하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작사·작곡·편곡 유재하’라고 적힌 단 한 장의 음반으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고, “음정이 불안정하다” “가창력이 떨어진다”며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지만 클래식과 팝을 절묘하게 섞으며 한국 가요의 새 지평을 열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이전 세대의 대중음악이 트로트·발라드 등 장르를 불문하고 소위 ‘뽕끼’가 강했다면, 유재하는 작곡가 이영훈과 함께 한국식 팝발라드를 탄생시켰다”며 “이영훈이 가수 이문세라는 스피커를 통해 노래했다면 유재하는 편곡까지 도맡아 음악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총괄한 프로듀서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87년 8월 발매 된 유재하 1집. 그해 11월 1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유작이 됐다.

1987년 8월 발매 된 유재하 1집. 그해 11월 1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유작이 됐다.

그 탓인지 그가 살았던 80년대는 시대를 너무 앞서 간 그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 요절한 천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유재하표 음악은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에 편입됐다. 부친 유일청씨가 아들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유재하 장학회가 단단한 기둥이 됐다. 1989년 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열린 이래 지난해 27회까지 단 한 해(2005년)을 제외하고 매년 그 해의 유재하를 발굴해 음악 세계를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수상자들은 음악계의 새로운 피가 됐다. 이는 비슷한 시기를 살았지만 김광석(1964~96)을 추모하는 방식이 동료 가수들의 리메이크 열풍이나 주크박스 뮤지컬 등 2차 콘텐트 창작으로 이어지는 것과는 다른 모양새다.

30주기 맞아 다양한 추모행사
유희열·김연우·방시혁·옥상달빛…
유재하음악경연서 상 받은 ‘동문’들
매달 추모 공연, 프로젝트 앨범 준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2013년 재정적 어려움으로 중단될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오히려 동문들이 뭉치는 계기가 됐다. 이한철(5회 동상), 스윗소로우의 김영우(16회 대상), 정지찬(8회 대상) 등을 주축으로 해 100여 명이 대회 살리기에 나섰고, CJ문화재단과 네이버뮤직의 후원으로 다시 안정을 찾았다.

군에서 만난 나원주와 7·8회 대상을 나란히 수상하고 자화상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던 정지찬은 “유희열(4회 대상)·김연우(7회 금상) 같은 발라드부터 메이트(임헌일 15회 동상·정준일 16회 은상) 같은 록그룹, 인디신의 옥상달빛(박세진 19회 장려상) 등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우리 동문들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클래식한 편곡에 가늘고 여린 목소리로 자신의 세계를 노래하는 유재하식 음악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며 “방탄소년단의 프로듀서인 방시혁(6회 동상) 등 작곡가·프로듀서를 통해 음악 계보가 이어지는 것도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대회 출신 300여 명의 동문들은 가요 외에 영화·광고·게임 음악 등에도 포진해 있다.

30년 가까이 이 대회가 이어지는 동력은 뭘까. 임진모 평론가는 “독자적인 음악 세계의 구축”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직접 만든 곡에 가창과 연주가 가능해야 한다는 지원자격 덕에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지원자들이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 대신 이 무대를 꿈꾼다는 것이다. 지난해 심사를 맡은 김형석 작곡가는 “유재하 음악은 감성적인 멜로디 코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가사 등 감동적인 소재로 대변된다”며 “요즘 트렌디한 음악과는 다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나무에 걸린 물고기’로 대상을 받은 장희원팀은 “나무에 있으면 안되는 이질적인 존재인 물고기가 소속감 없이 방황하는 우리 모습과 닮았다”며 “아직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도 된다는 허락 같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군 입대 전 솔로로 지원했다 4번이나 떨어지고 제대 후 그룹으로 붙었다고 고백한 김영우는 “어디에서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세상을 알리기 위해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시대와 맞지 않을 뿐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유재하 음악대회”라고 강조했다.

30주년을 기리는 행사는 동문들의 릴레이 콘서트로 시작한다. 장소는 장학회가 있는 경기 분당의 커먼키친. 1월 바드 박혜리(14회 동상)를 시작으로 2월 김거지(22회 대상)와 조영현(23회 대상), 3월 곽은기(15회 금상)와 이설아(24회 금상) 등 1년간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 공연을 이어간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유재하 음악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글=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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