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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탁 기자의 바이오 이노베이터 (10) (끝)] 45억 아시아인의 무병장수 꿈꾼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7.01.30 00:02
성공은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이 주목받는다. 바이오 강국을 꿈꾸며 숱한 실패를 딛고 도전을 이어온 혁신기업과 CEO를 소개한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눈이 올 때는 마당을 쓸지 마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남긴 말이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이 말에서 느끼는 바가 많다고 한다. “예전엔 뭔가 하고 싶으면 곧장 매달렸습니다. 눈이 오는 데도 나가서 쓸었습니다. 지금은 눈이 온다 싶으면 문 닫고 잠을 잡니다. 순리에 따라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죠.”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 인터뷰

유전자 및 유전체 분석 시장 세계 1위
150개국 1만8000여 명 연구원 마크로젠 정보 이용


지난해 마크로젠은 한국인의 게놈 지도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인 표준 게놈지도’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네이처는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 인종 고유의 유전 정보를 확인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인 게놈 지도 분석은 마크로젠 연구팀이 네이처에 올린 10번째 논문이다.

마크로젠의 고객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이용하는 연구자는 150개국 1만8000여 명에 달한다. 네이처 등 주요 과학저널에도 매년 논문을 올리고 있다. 유전자 및 유전체 분석 시장 세계 1위 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서 회장도 무수한 실패를 겪어온 인물이다. 첫 사업부터 고배를 마셨다. 1985년 자신만만한 청년 과학자 시절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임용된 시기였다. 그는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과 바이러스와 항암제를 공동 연구했다. 암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발견하자 미국 연구팀과 함께 바이오벤처를 설립했다. 하지만 눈 앞에 있을 것 같던 성공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간발의 차이로 경쟁사에 밀렸다. 3년간 벌인 연구에서 이룬 것이 없었다. 목표로 삼았던 네이처 논문 게재도 물 건너갔다. 그는 다시는 사업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88년부터는 연구에만 매달렸다. 당시엔 의욕이 앞섰다고 한다. 네이처 게재를 목표로 연구를 독려했고, 혁신 신약을 선보이려고 무리수를 두다 번번이 실패했다. 30년 전의 일을 돌아보던 서 회장은 “마음을 비우고 기업을 바라보자 비로소 필요한 일이 보였다”며 “분명히 앞으로 가야 하지만 조급해 하며 무리하진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1992년 한국에 돌아와 연구를 하던 중 예상 못 한 사업 기회가 생겼다. 실험용 흰쥐의 유전자 조작에 성공한 것이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동물 임상은 필수다. 실험용 쥐의 몸값이 올랐고 정부에서도 연구비를 지원해줬다. “95년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사 제목은 ‘소보다 비싼 쥐’였지요. 미국과 일본에서 특허도 받았습니다.”

 
쥐 유전자 분석하며 경험 쌓아
연구비를 지원한 당시 과학기술부에서 창업을 권유했다. 97년 정보기술(IT) 창업 붐이 일었다. 고민하다 97년 설립한 회사가 마크로젠이다. 투자회사에서 100억원 투자를 제안했다. 그는 너무 큰 금액이라 거절했다. 3억원만 받아서 회사를 차렸다. 99년엔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했다. 회사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상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서 회장은 17년 간 주식을 단 한 주도 팔지 않고 모두 보유하고 있다. 그는 “힘든 상황에도 안팔았다”며 “내가 보유한 주식은 회사와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상장 직후 위기가 왔다. 2000년부터 실험용 쥐 시장이 정체에 빠졌다. 글로벌 제약사에서 유전자 실험쥐 활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연구가 신약 개발에 도움 안 된다고 판단해서다. 두 번째 도전마저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다. 그는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게놈 분석’을 떠올렸다. “우리는 쥐 유전자를 100만 번 넘게 분석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유전자 분석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할 자신이 있었죠. 목표를 정하자 공격적으로 치고 나갔습니다.”

마크로젠은 2002년 바이오 업계에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 모았다. 네이처에 5달러로 유전자 분석을 해준다는 광고를 실은 것이다. ‘5달러만 내면 48시간 안에 유전자 분석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경쟁사들의 서비스 가격은 15~20달러 선이었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기존의 4분의 1 가격에 제공한다는 광고는 세계 유전자 연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 회장은 “연구를 통해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유전자 분석 시약의 양을 줄이면서 데이터 정확도를 높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전자 분석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것이 시약의 양인데 이를 최적화해 비용을 크게 낮춘 것이다. 여기에 데이터 정확성을 높여 분석 오류를 줄였고, 이를 종합해 초저가 유전자 분석 시대를 열었다.

배송 업체 페덱스로 시약을 받은 다음 분석해서 인터넷으로 결과를 보냈다. 세계 어느 곳이든 3~5일 사이에 분석 정보를 보내줬다. 처음 스무 번은 무료로 분석을 제공했다. 주문했던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졌다. 세계 곳곳의 연구소에서 주문이 밀려왔다. 브라질 상파울로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 대학 연구실이 몇 백 미터 거리에 있는데 지구 반대쪽인 마크로젠에 주문하면 결과가 더 빨리 나온다”고 말했을 정도다.

주문이 늘며 유전자 정보도 쌓여 갔다. 마크로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보유한 기업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준비했다. 90년대 그렇게 꿈꾸던 네이처에 단골 손님처럼 논문을 올리기 시작했다. 2009년 ‘한국인 개인 유전체 전장서열 분석’, 2010년 ‘아시안 CNV(Copy Number Variation) 지도 완성’, 2011년 ‘RNA 자체 염기서열 변이 세계 최초 확인’, 2011년 ‘폐암 신규 원인 유전자 최초 발굴’, 2012년 ‘폐 선암 원인 유전자 변이 추가 규명’ 등을 네이처·게놈리서치 등의 학술지에 발표했다.

 
5달러 유전체 분석 서비스로 주목
유전자 정보 분석 능력 덕에 마크로젠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일본이 좋은 예다. 마크로젠은 일본인 게놈지도를 일본 기업보다 한발 앞서서 만들고 있다. 현지 바이오 업계에서 화제가 됐고, ‘니케이 비즈니스’는 일본인 유전자 데이터 베이스를 어떻게 한국 기업이 구축하는지 취재하기 위해 한국을 다녀간 일도 있다. 교토대 게놈의학센터의 마쓰다 후미히코 센터장은 “일본 기업은 수익성을 생각해 사업에 소극적인데 비해 마크로젠은 연구에 필요하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업체에 비해 저렴한 비용, 빠른 속도, 애프터서비스까지 앞서 있어 경쟁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마크로젠은 같은 사업을 중국과 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도 진행 중이다.

서 회장은 미래를 ‘정밀 의학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각 개인의 유전체에 맞춰 진료를 하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본다. 마크로젠은 의료기관에 환자의 유전자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정확한 유전체 정보가 있으면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는 “45억 명에 달하는 아시아 게놈 지도 완전 분석이 목표”라며 “아시아인의 무병장수에 기여하는 그날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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