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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쓸데없다는 판단 너무 일찍 하지 마라, 누군가엔 쓸 데 있어”

중앙일보 2017.01.29 00:02 16면 지면보기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물리학과에서 철학적 고민을 한 사람. 무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는 소리를 대학시절 줄곧 들어야 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그는 지금 세계적인 과학철학자가 되었다. 장하석(49)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석좌교수. 쓸데없다는 판단을 너무 일찍 내리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쓸데없음의 쓸데있음’을 이야기했다. 『장자』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고 묻자 “내가 살아온 삶에서 느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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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철학의 융합을 지향하는 장하석 교수. 그가 속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사ㆍ과학철학과에는 일반 교수 15명에 석좌교수 1명이 있다. 그 석좌교수 자리가 3년간 비어 있다가 장 교수의 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전민규 기자]

그는 올해 추석을 서울에서 보냈다. 고교 1학년이던 1983년 미국 유학을 떠난 이래 처음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그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실감하며 감회가 깊다고 했다.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스탠퍼드대에서 물리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5년 28세 때 영국 런던대 교수로 부임했고 2010년 40대 초반에 이미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세계 학계의 저명인사로 등극한 계기는 2004년 『온도계의 철학』이란 희한한 제목의 책을 펴내면서다. 대표작이 된 그 책으로 과학철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2006년 수상했다.

한국 대중과의 첫 만남은 2013년 EBS 특강을 통해서다.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해 한국의 대중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가 제2회 서울인문포럼의 기조강연자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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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이후 줄곧 해외생활을 했는데 한국 오면 어떤 점을 느끼나.
“80년대 중반과 지금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안 바뀌는 점도 있다. 들어올 때마다 놀랜다. 사회적으로 보면 올해는 저출산 문제를 많이 얘기하는 것 같다. 저는 한국어가 모국어지만 고교 때부터 외국생활을 해서 한국 학계의 전문용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과학이나 철학을 일상어로 설명하게 되는 데 그런 것이 오히려 저의 ‘이상한 장점’이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강연을 준비하며 한국어 번역서를 봤는데 너무 어려워 이해를 못하겠더라. 학자들의 언어가 대중과 괴리가 큰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안 바뀌는 부분은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데, 얘기해 보라면 아무래도 위계질서, 직장이나 가정에서 많이 없어졌다 해도 아직 있는 것 같고요, 역시 일류학교 따지고 인기 직종에 편중되는 것.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은 악착같이 경쟁해서 쳐내야 한다는 것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선 나라가 잘 살게 되면 대개 개인도 행복해지는데 우리는 안 그런 것 같다. 예전에 ‘헬조선’이란 말 없었다. 왜 더 힘들어지는지 모르겠다. 안타깝습니다. 잘나가는 젊은이들도 못살겠다고 한다. 제가 대책을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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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철학 분야에서 두 개의 박사학위가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이참에 바로잡고 싶다. 제가 물리학 공부를 하러 캘텍(캘리포니아 이공대학교)에 갔는데, 결국은 ‘Independent Studies Program’라는 전공으로 졸업했다. 이것은 학생 자신이 전공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서울대 등에 생긴 자유전공과 비슷하다. 그 공부 내용은 역시 물리학이 많았지만, 그 물리학의 문맥을 이해하기 위하여 철학을 비롯한 많은 인문사회과학 과목을 들었다.”
이과 학사를 하고 문과 박사를 하는 경우가 해외에 많은가.
“많지는 않은데 과학철학 분야에는 꽤 있다.”
물리학과에 들어갔다가 철학을 공부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물리학을 사랑하고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갔는데 학교에서 받은 물리학의 이미지는 달랐다. 물리학 시간에 알고 싶은 게 있어 질문하면 그건 철학적 문제인데 그런 생각을 안 해도 되고 문제만 풀라고 얘기한다. 미국의 최고 학교인데도 그랬다. 4년 동안 그런 얘기 듣다가 화가 났다. 내가 관심 있는 게 철학이라면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생각했다. 토머스 쿤이 얘기한 정상과학(normal science)에 따르면, 과학을 연구하는 일은 일정한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깊은 질문은 하지 않고 퍼즐을 푸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게 싫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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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우수한 대학 강의도 그렇군요.
“어떻게 보면 강훈련을 시키는 학교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칼텍은 과학의 신병훈련소라고 불리는 학교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정통적인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물이 H2O인지 어떻게 알아냈나 궁금
8년 공부해 『Is Water H2O?』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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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H2O인가’.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제에 장하석은 의문을 던졌다. 물이 H2O라는 것을 과학자들이 어떻게 알아내었는가를 8년간 탐구한 끝에 2012년 『Is Water H2O?』라는 책을 펴냈다. 이에 앞서 10년간 연구해 2004년에 펴낸 『온도계의 철학』도 ‘온도계도 없는 상태에서 물이 (같은 기압 하에서) 항상 같은 온도에서 끓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그것을 100도로 정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에게 쓸데없는 질문이란 없다.
철학은 쓸데없는 것을 공부하는 것인가.
“철학은 쓸데없는 것을 하기 때문에 쓸데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래서 한국에서 철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 쫓기고 경쟁에 시달리며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눈앞에 닥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사회에서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라면 다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쓸데없는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철학자조차 없다면 사회가 붕괴될 것이다. 쓸데 있음과 없음은 요즘 화제인 지진 문제로도 얘기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지진 안 난다고 했기 때문에 그동안 잘 살았죠. 그런데 쓸데없는 지진 전문가를 키워놓았으니까 이제 필요한 세상이 되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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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대학에서 석좌교수는 일반 교수보다 지위가 높다고 한다. 프레스티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석좌교수는 대개 기금교수인데 영미에서는 그게 아니다. 권위있는 자리라고 보면 된다. 대개 젊어서는 되기 힘든데 나이로 따지는 것은 아니다. 케임브리지대 과학사ㆍ과학철학과에는 교수 15명에 석좌교수 1명이 있다. 그 석좌교수 자리가 3년간 비어 있었는데 장하석 교수가 그 자리를 들어갔다.
장하석 교수를 과학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본인은 과학자인가 철학자인가.
“둘 다다. 외국에서 엄격히 구분하면 철학자죠. 박사학위도 철학이고 학과도 그렇죠. 그러나 과학적인 내용을 대상으로 하기에 학부 전공도 있고 해서 과학자라고 해도 된다. 그래서 『온도계 철학』을 쓰면서 내가 하는 학문의 성질을 표현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상보 과학’이란 말이다.”
‘상보 과학’이 무슨 뜻인가.
“과학적인 문제인데 현재 과학자들이 다루고 있지 않은 문제라는 뜻이다. 전문 과학자들한테 ‘온도계를 어떻게 만들어서 쓰게 되었는지 아세요?’ 하고 물어보면 알지 못한다. 알 필요가 없이 그냥 사용하면 되니까, 첨단 연구할 시간도 부족하니까 그렇다. 과학적 질문임에도 현재 과학자들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을 ‘상보 과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과학사를 보면 옛날 과학자들이 했던 질문들이다. 과학은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에만 답한다. 과학의 강점은 이렇게 하면 잘 풀리겠다는 문제를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껄끄러운 문제를 배제하죠. 그러나 대답을 하기 힘들다고 질문을 해선 안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답이 없는 질문에도 도전을 한다. 철학은 모든 질문에 도전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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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과학자들은 어떤 질문을 던졌었나.
“처음 뉴턴의 중력 이론이 나왔을 때를 보자. 두 가지 물체가 있을 때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했는데 반응이 컸다. 공식만 써놓고 무슨 과학이냐, 지구와 태양 사이에 진공밖에 없는데 어떻게 끌어 당기냐 이런 설명을 안 해주면 제대로 된 과학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 뉴턴 자신도 고민했다. 그런데 그 다음 세대에서는 그런 문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정리됐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지금도 뉴턴 초기에 나왔던 문제도 생각해보면 좋겠는데 안 한다. 그래서 과학 연구에 빠진 것을 보충해준다는 의미로 상보적이라고 한 것이다. 음양사상하고도 통한다. 양만 보고 좋다고 하지만 음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은 대개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는 골치 아픈 과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이나 영국의 중고교 교육 과정에서는 어떤가.
“비슷한데 한국이 좀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미국 영국에서 창의력 기르는 교육 한다고 해도 생각같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외국에서도 과학 교육 지겨워하는 학생 많다. 왜냐면 선생이 아무리 훌륭하고 재미있게 가르친다고 해도 물리학 같으면 공식 배워서 숫자 대입해 문제 푸는 것이 기본이죠. 생물학과 화학에서 외울 것은 외워야 하고.”
올해 우리 사회에 ‘인공지능’(AI) 바람이 불었다. 인공지능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영국에서도 대단한 사건으로 관심을 끌었다. 그거는 제가 딱히 인공지능 전문가는 아니지만 생각을 해보면,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과학자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을까, 실험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데 과연 진정한 창의력을 인공지능이 발휘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저는 그것도 미지수라고 본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인간과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할 때 그 기계를 인간이라고 봐야하는지, 인권을 부여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다. 진화과정에 호모사피엔스와 비슷한 종족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종족들이 지금 살았다면 다른 종류의 지능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지 인간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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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진리 아닌 사실 밝히는 것
지식 100% 확실하다 믿는 건 오류

 
EBS 특강을 풀어쓴 『과학, 철학을 만나다』 에서 “과학의 성공은 진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과학에서 진리를 밝힌다는 생각이 이번 서울인문포럼에서도 말씀드릴 문제인데 그런 문제는 종교에서 나왔다. 서양 과학의 뿌리는 종교와 같다. 이것은 동양과 다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유럽에서 현대과학을 만들었다. 그 사람들이 자연신학의 틀에서 생각을 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첫째 성경을 읽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자연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17세기 과학혁명기에 서양 과학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다. 과학이 밝혀낼 것은 절대적 진리라는 생각이 거기에 들어가 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기본 생각을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다. 진리와 진상은 영어에서는 다 ‘truth’로 구분이 안 된다. 영미권에서 법정 증언할 때 ‘truth’를 얘기하겠다고 하는 것은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그것이 진리를 얘기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과학도 진리를 밝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진리를 밝히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양대 이상욱 교수는 ‘진상도 진리와 유사해서 장하석 교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해 주셨고, 그것을 고려하면 '진상'보다 '사실'이 더 적합할 듯하다.”
사실과 진리의 차이는.
“법정에서 밝히는 것은 사실을 밝히는 일이다. 검찰이 진리를 밝히겠다고 하면 안 되잖은가.”
‘truth’를 진리라고 번역한 것이 잘못인가.
“지나쳤다고 본다. 영어에서도 ‘truth’는 문맥에 따라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아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냥 다 진리라고 번역했다.”
영어에서 ‘truth’ 용례를 하나 들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나는 ’truth‘만 얘기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은 무시하되 자기 생각과 느낌을 숨기지 않고 얘기하겠다는 의미다. 영어에서도 ‘truth’ 자체가 혼동스러운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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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특강 교재였던 책 제목이 『과학, 철학을 만나다』였다. 『철학, 과학을 만나다』라고 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거는 EBS에서 지어준 제목이다. 제가 그 제목이 괜찮다고 본 것은 보통 과학철학 하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융합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암묵적으로 얘기한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지난 세기 서양 자연과학의 우월성은 동양을 압도했다. 우리는 그걸 따라잡기에 바빴다. 그런데 환경파괴, 인간소외와 양극화, 테러와 폭력 등은 서구문명의 뿌리를 위협하고 있다. 인류는 과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무한히 진보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진보의 의미부터 새기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무엇이 진보인가. 그래서 이번 서울인문포럼에서 말씀드리려는 것이 인본주의와 과학 문제다. 인간이 진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인간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 대답만 할 수 있으면 진보의 정의는 풀린다. 그런 가치를 살리는 것이 진보다."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가.
"가치관을 생각하다 보면 사회 내부에 상충되는 점도 드러나고 서로 논의가 안 되는 것도 드러나고,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제가 말하는 다원주의 생각이 필요하다는 대답이 나오게 된다. 과학 제일주의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옛날에는 종교가 모든 대답을 주었듯이 이제는 과학이 모든 대답을 줄 것이다, 그래서 과학만 모두 보고 있는 거죠. 저는 그렇게 안보는 거죠. 미지의 것,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과학인데 사람들은 과학에 정답만을 요구한다. 사회 내에서 정치적으로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싸울 일이 있더라고 정말 점잖게 해결하는 법을 배운 것이 민주주의다. 과학도 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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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
어떻게 그 집착 벗을까 책 쓸 것

 
과학과 민주주의가 연결되나.
"과학을 잘못 아는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100% 동의하지 않으면 진리를 모르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그게 문제다. 지구온난화를 예를 들면 과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정치에서 타협점을 찾고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듯이 과학자도 그런 과정을 거친다. 이런 혼동이 오는 것은 과학자의 자업자득이기도 한데, 과학이 진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 철학의 기본이다. 이성으로서 궁극적 해답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 인간의 이성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기본 메시지다. 주제넘은 짓을 하지 말라는 것. 그러나 칸트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이성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신앙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저같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자는 것이다. 진리는 모르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거든요."
종교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 같은데.
"종교의 폐단도 그거다. 서로 진리라고 공격하고 전쟁하는 것. 중동의 문제도 그렇고. 그런 절대주의적 사고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과학인데 과학을 그렇게 절대주의적으로 해석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과학과 종교가 또 싸우게 되고 그런 것이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사실을 밝히는 학문이고, 그런 과학적 사실이 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훌륭한 삶을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윤리학이고 종교라고 본다. 다른 한편에서 종교가 사실을 가지고 얘기하려는 것도 문제다. 미국에서는 교회에서 진화론을 학교 교육 과정에 가르치지 말라는 간섭을 많이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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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지진 말씀하셨는데,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인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그게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과학이 최선을 다해서 사실을 규명하지만 실수할 수도 있다.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고, 생각이 짧을 수도 있으며, 측정을 잘못했을 수도 있다. 칼 포퍼가 얘기했듯이 지금 알고 있는 과학지식이 100% 확실하다고 믿는 것은 오류다. 그런 확실한 지식을 찾는 것이 병폐라고 봤다. 인류가 성숙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류가 성숙하다면 불확실성을 알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포퍼는 흔히 보수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포퍼는 열린사회를 주장했다. 그게 도리어 억압적이었던 반공주의와 연결되면서 불분명해졌다. 본래 포퍼는 모든 것을 개방적으로 하자고 했다. 과학도 항상 모든 이론은 끝까지 가설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을 계속 검증해서 틀리면 다시 가설을 세우고. 아무리 과학을 해도 확실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절대적으로 보수적이라고 할 수 없죠. 과학자는 항상 혁명적으로 살아야한다고 했다."
포퍼와 경쟁했던 토마스 쿤은 어떤가.
"포퍼에 반해 쿤은 사람은 혁명적으로 살 수 없다고 했다. 틀 안에서 살아야 일을 하고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혁명을 하는 것인데 너무 자주하면 안 된다고 했다."
포퍼와 쿤, 두 사람이 논쟁한 이유는.
"포퍼는 과학자는 안주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론은 가설이기 때문에 항상 자기 비판을 해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 과학의 임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쿤은 기본적인 것을 토대로 하지 않으면 과학연구를 할 수도 없다는 거죠."
그렇게 보면 쿤이 보수적인 것 같은데 종종 진보로 여겨진다.
"그게 오해인데요. ‘과학혁명’을 얘기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만 집중해서 그렇다. 과학혁명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했고 또 과학이 노멀(normal)하게 갈 때는 상당히 보수적인 활동이고, 그 틀을 받아들인 후에 지엽적인 것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유하자면 쿤의 입장은 구조개편 계속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일단 안정적으로 진행해야 일이 되지 계속 구조개편 하면 아무 일도 안 된다는 거죠. 그게 맞는 말이고. 이게 제가 말한 상보적 과학과도 연결된다. 안정적 구조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 무시되는 측면이 있는 데 그걸 누군가는 짚어서 생각해줘야 한다. 말하자면 일부에 편중성은 필요악이라고 나는 보는 거죠. 쿤도 그렇게 봤고, 나는 거기에 덧붙여 누군가 고려할 가치는 있다고 상보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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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왜 반공적 자세를 취했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쿤은 미국에서 편하게 자랐고. 포퍼는 오스트리아에서 유태계로 자라나 피난민 생활을 했다. 반나치 운동을 하다 2차대전 이후 전체주의는 공산주의든 나치든 다 통한다고 본거죠. 포퍼는 과학이 문명사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봤고, 쿤은 과학은 그냥 과학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은 사실을 밝히는 작업일 뿐이라고 보는 점에서 나는 쿤 생각에 동의한다."
포퍼와 쿤을 융합시키는 게 장 교수 작업이군요.
"쿤에 동의하는 것은 일단 과학은 기본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활동이 거기서 멈춰선 안 된다는 점에서 포퍼에도 동의하는 것이다. 사회적 제도와 관습에 맞춰서 살아가야 사회가 유지되지만 그런 틀에 맞지 않는 사고를 하는 철학자나 소설가, 예술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의 분업이라고 본다. 너도나도 다 그런 자유분방한 작업을 할 수는 없죠. 예술가는 좀 우리 생각을 흔들어주듯이 인문학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쿤과 포퍼의 논쟁 사례를 이념 갈등이 심한 우리 사회와 비교해본다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제가 느끼는 것은, 도식화된 좌우 이념 그런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인 인간의 가치관부터 토론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가치관을 세우는 방법을 놓고 현실적인 토론을 하고, 싸움도 현실적인 싸움을 해줬으면 한다. 좌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이렇게들 얘기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꼭 좌익이라고 할 수 없다. 더 잘하자는 게 진보라면 좌익이 꼭 진보여야 하나. 쿤의 생각을 보면 진보는 보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시각 자체를 다시 정비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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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국 컬럼비아대 초청 강연에서 1800년대 발명된 ‘볼타 전지’를 재현하고 있는 장하석. 온도계와 물에 이은 그의 세 번째 연구 주제는 배터리다.

『과학, 철학을 말하다』에서 ”진리는 과학적으로 탐지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럼 진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제 생각은 진리를 찾지 말하는 것이다. 진리를 초월해야 한다."
장 교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이 있나.
"뜻이 맞는 사람이 모여 ‘truth’의 번역어를 새롭게 찾아보고 영어 자체에서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진리라고 할 때는 영어의 'T'를 대문자로 크게 쓰는 방법도 있다. 소문자 't'이면 사실을 뜻하고."
과학철학 학문이 등장한 배경은 어떤 것인가.
"뉴튼 시대에 과학이란 말은 안 쓰고 자연철학이라고 했다. 사이언스란 말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라틴어에서 지식일반을 사이언스라고 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확실한 지식을 사이언스라고 썼던 것. 현대적 과학 의미로 사이언스라고 쓴 것은 200년 되었다. 직업적 과학자의 개념이 나뉘고 나서 사이언티스트가 나왔다. 그 전에는 과학철학이라는 게 있을 필요가 없었다. 철학자가 과학을 다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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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영국 에딘버러대학에서 열린 과학사-과학철학 융합 학회에서 기조강연하는 장하석.

200년 전 최초의 과학철학자는.
"케임브리지대학의 휴얼. 과학을 하다 1830년대에 『과학사』라는 책을 쓰고 과학철학 용어를 사용했다. 프랑스의 콩트도 동시대에 과학철학적 연구를 시작했다. 19세기 초반이다. 과학이 전문화되고 직업화되는 데 대한 것이다."
과학철학이 일반적인 철학과 다른 점과 같은 점은.
"공통점은 철학은 그냥 조용히 깊이 생각하는 것, 뭐가 되었든 간에. 과학철학은 깊게 생각하되 과학에 대해 하는 것."
서양철학 하면 대개 플라톤, 칸트가 떠오르는데 과학철학의 입장에서 플라톤이나 칸트의 철학은 어떻게 보는가.
"제 개인적 입장에서 칸트 철학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한계를 얘기했기 때문이다. 인간 지식의 한계도. 저는 플라톤은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적 진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리를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는가를 대답하기 위해 기가 막힌 얘기를 만들어냈다 플라톤이. 저는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런 기막힌 얘기 만들어 내기 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더 잘 알고 잘 살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온도계의 철학』을 준비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는데, 그 10년 동안 온전히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나. 한국에 있었다면 그런 책 쓸 수 있었을까.
"저는 특히 일이 많은 학교에 있었다. 런던대학교. 저희 학과가 특수 상황이어서 행정적인 일이 많고 강의 부담도 많았고 그런 상황이라 10년이 걸렸다. 빨리 연구해서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생각이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급히 냈다면 미숙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04년 『온도계의 철학』을 펴낸 후 2012년엔 『Is Water H2O?』라는 책을 펴냈다. 최근엔 ‘전지(電池)’를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과 전지는 어떤 계기로 탐구하게 됐나.
‘전지(電池)’를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과 전지는 어떤 계기로 탐구하게 됐나.
”배터리가 세 번째 연구주제인데 최근의 현상과 맞물려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몇 년 더 걸려 2019년 정도에 나올 듯하다. 제가 온도계 연구하며 맛을 들인 게, 과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쉬운 내용을 파헤치고 그런 기본 지식을 얻는 것이 사실 얼마나 힘든 작업인가를 밝혀내는 일이다. 우리가 배터리 없이 생활 못하게 됐는데 배터리가 어떻게 해서 작동하는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실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배터리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19세기 내내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내역을 자세히 규명하고 싶다. 물을 연구하다 전기로 흘렀다. 물의 정체에서 중요한 게 물의 전기분해다. 그렇게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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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가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한국학생회 회원들과 간담회.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어떻게 진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까를 주제로 책을 쓰고 죽고 싶다."

세계 과학철학계의 스타를 한국 대중에게 처음 알린 계기를 마련한 이는 서울인문포럼 배양숙 이사장이다. 2011년 가을 케임브리지대에서 장 교수가 ‘H2O는 물인가’를 주제로 주최한 포럼에 배 이사장이 참석했다. 그의 강연을 들은 감동을 EBS측에 전달함으로써 12회의 특강이 국내에 선을 보이게 됐다. 배 이사장은 "EBS 특강 이후 강연 요청이 많았는데 연구에 집중하겠다고 모두 사양하면서 ‘꼭 강연을 해야 한다면 서울인문포럼일 것’이라고 했는데 이번에 그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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