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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이 묻고 안희정 답하다] “세대 아닌 시대교체…문빠·안빠로 하는 선거는 끝났다”

중앙일보 2017.01.28 00:02 6면 지면보기
대선 특별기획 차기 주자 릴레이 인터뷰 ①
 
나에게 대선 특별기획 인터뷰 첫 대상자로서 제시된 인물은 충청남도 도지사 안희정이었다. 공교롭게도 안 지사는 내가 직접 가르친 제자다. 나는 1982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교수로서 들어갔고, 안군은 83년도 동과에 학생으로서 들어왔다. 교정에는 ‘짭새’라 불리는 사복전경들이 쫙 깔려 있었고, 학생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교실 유리창을 깨고 삐라를 뿌리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교정에서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피 터진 채 질질 끌려가는 학생들의 풍경화가 다반사였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에서도 나는 엄마가 지어주신 까만 한복에 흰 동정 깃을 세우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고전철학을 강의했다. 그때 나의 강의를 들은 어린 학생이 지금 210만 충청남도 도민의 삶을 책임지는 도지사가 돼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대견하기만 하다. 뭐 딱 부러진 인터뷰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사제지간의 훈훈한 담소로서 독자들은 소납(笑納: 변변치 않은 글이지만 웃고 받아 달라는 뜻의 겸양어)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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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용산역 플랫폼에서 만나 철길을 따라 나란히 걷고 있는 도올 김용옥과 안희정 충남지사(왼쪽).

내 강의 학점을 딴 적이 있나?
“선생님 강의는 리포트 숙제가 많았기 때문에 데모하느라고 바빠 정식 수강신청은 못하고 청강만 했지요. 제가 입학했을 때 이미 선생님 강의는 신화였어요. 죽어 있던 학문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화라고나 할까요? 아니, 우리나라 최초의 팟 캐스트라고 해야 할 거예요. 강의하시고 나면 그 다음 날 그 내용과 재미있는 이벤트가 교정에 깔렸을 뿐만 아니라 타교에도 전달됐죠. 특강하실 때 2000명까지 모인 적이 있잖아요.”
나는 농악대 지도교수로서 학생들과 같이 길거리 데모에 앞장서곤 했다. 어느 누구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나는 교수의 신성한 의무라 생각했지. 그토록 데모를 격렬하게 열심히 하던 자네와 나는 언젠가 조국의 미래에 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때 자네가 하는 말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당시 학생들의 혁명이론들을 기성세대가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선생님은 그 어려운 한문을 통달하신 고전학자이셨지만 저는 열여섯 살 때 이미 학교를 때려치우고 트로츠키, 레닌처럼 혁명을 해야겠다고 서클을 차린 혁명아였어요. 고등학교도 두 번이나 잘리고, 검정고시 어렵게 봐서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도 네 번이나 잘리고, 두 번 징역을 갔어요. 온 청춘을 혁명에 바쳤어요.”
진짜 꾼이었군.
“아뇨, 전 정치꾼이 될 생각은 없었어요. 순결한 정치가, 혁명가가 될 생각만 있었죠. 그런데 감옥에서 나와 취직할 데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동유럽권이 몰락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우리나라에서는 3당 합당이 이뤄지고, 소련이 사라지고, 갑자기 혁명의 시대가 끝났다는 거예요. 항상 혁명의 시대의 주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텼는데, 혁명 그 자체가 종료됐다는 거예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뻐해야 할 저는 오히려 3, 4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고통에 빠졌습니다. 인생의 의미가 사라지니까 죽을 생각밖에는 나지 않았어요.

'내가 임꺽정, 날 따르면 뭘 주겠다'
이런 식 공약 내거는 자는 사기꾼
산전수전 다 할 수 있어야 프로
모바일 투표 등 어떤 것이든 도전

그런데 또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겠고, 깊게 깊게 생각해 보니 생명이라는 게 비탈길에 떨어지는 짱돌 같은 것이더라고요. 중력에 따라 굴러가다 서면 그것이 생의 마감이지, 나 그만 굴러갈래 하고 선택할 여지는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도대체 혁명이 뭐냐 하고 생각해 보니까, 그냥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정의가 뭐냐 하고 또 고민해 보니까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 뿐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케 되더라고요. ‘영원한 것은 저 푸른 나무일 뿐’이라는 레닌의 말이 생각났어요(원래 괴테의 말). 그래! 내가 생각했던 혁명이라는 개념은 회색이었어! 푸르질 못했단 말야!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이 마르크스를 만나면 마르크시즘이 되고, 레닌을 만나면 레닌주의가 되고, 최제우를 만나면 동학이 되고, 최시형을 만나면 개벽사상이 되고, 억압받는 시민을 만나면 시민혁명 이론이 되는 것 아니냐! 이론이 무너졌다고 제기랄 나의 진보적 삶의 가치가 무너질 게 뭐냐!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1994년에 철학과 졸업장을 획득하고 노무현과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꾸리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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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자! 많은 사람이 노무현의 치세 기간의 이미지만을 기억하는데, 그것만을 이야기한다면 노무현의 평점은 높지 않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적 가치는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시민혁명이었다. 사회 정의를 갈망하는 매우 평범한 시민들이 서민을 위한 진정한 서민 대통령을 만들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자발적으로 움직인 열망의 소산이었다. 당시 즉각 즉각 출현한 선전문구, 만화영화, 돼지저금통, 각종 행사, 연설, 표어, 그 모든 것이 조작적인 인위성이 따라올 수 없는 기발함과 진정성을 지니고 역사의 매 순간을 추동시켜 나갔다. 그 열기는 바스티유감옥을 파괴하는 혁명적 프랑스 시민의 용기를 뛰어넘는다. 문제는 이 열기가 노무현 치정의 부실로 인해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 열기는 지난 14년 동안 일부 희석되고 좌절되고 변절되고 퇴색되었다고는 하나, 언제고 다시 분출될 수 있는 영원한 활화산이다. 그 불길의 일부가 지금 ‘문빠’라는 현상으로 결집되고 있다. 혹자는 말하기를 안희정이 본격적 대선활동을 개시하기만 하면 그 ‘문빠’의 대세가 ‘안빠’로 바뀔 수도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네가 김대중, 노무현의 장자로서 홈그라운드에 참여한다는 것은 홈그라운드 자체를 확충시키는 상승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야. 자네는 그러한 카리스마와 역사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지 아니한가?
“선생님, 왜 문빠, 안빠를 말하십니까? 저에게는 문빠, 안빠가 존재하지도 않고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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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만리동 충청남도 서울사무소가 있는 빌딩 15층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도올과 안희정 지사(왼쪽).

아니, 선거를 치러야 할 자네가 열광적인 안빠의 결집이 없이 어떻게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인가?
“선생님! 선생님이 지적하시는 시민혁명의 열기는 이제 더 이상 안빠로는 결집되질 않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지났습니다. 우리시대의 문제는 더 이상 로빈 후드나 임꺽정이 출현해 해결할 수가 없어요. 내가 임꺽정이다, 나를 따르면 이러이러한 대가가 너희들에게 있으리라, 이런 공약으로 대중을 결집시키는 자는 사기꾼일 뿐이지요.”
허허! 또 옛날 생각이 나는군. 자네하고 이야기하면 자네 말이 잘 이해가 안 돼. 너무 추상적이야. 정치는 어디까지나 대중을 모빌라이즈(mobilize·동원)하는 행위인데, 어떻게 그렇게 추상적 가치로 대중을 설득시키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게야!
“선생님, 저는 지금 대중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철학을 배웠습니다. 정치는 술수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선생님 앞에 서 있습니다. 제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가 승리의 자리입니다. 저는 존재할 뿐입니다. 그 존재에 대한 명명은 저의 몫이 아니지요. 별명은 타인이 붙여주는 것이지요.”
허허! 점점 더 아리송해지는구먼! 어차피 자네는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당내 경선에 대한 공정한 룰이 확정돼야만 모든 사람이 승리할 수 있는 공평한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공정한 룰 세팅을 주장하고 있네.
“선생님, 저는 직업정치인입니다. 아마가 아니라 프로예요. 산전(山戰)을 하자면 산전을 하고, 수전(水戰)을 하자면 수전을 하는 게 프로예요. 모바일 투표를 하면 나는 안 나간다는 식의 소극적 자세로는 이길 수가 없어요. 어떠한 태클이 들어와도 되쳐내야죠. 도전이란 어웨이 경기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감내할 때만 도전이 되는 거죠. 방어자가 항상 유리한 것만도 아녜요. 도전자는 신인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회의 요소가 늘어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과연 문재인 전 대표가 방어자일까요? 챔피언이 돼본 적이라도 있나요? 대선에서, 아니 역사에서 방어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요. 모든 사람은 절대 내가 관리하는 어장의 물고기가 될 수 없어요. 모든 것은 제멋대로 살아 움직입니다. 그리고 모든 룰은 변하게 마련이지요. 우리는 지금 타이틀 매치를 할 것이 아니라 시대를 교체해야 합니다. 세대교체 아닌 시대교체야말로 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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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지사는 1983년 고려대에 입학해 95년 2월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식장에서 부모님, 부인 민주원씨(맨 왼쪽)와 장남 등이 함께했다. [사진 안희정]

아, 정말 어렵다. 자네하고 말하고 있으면 좀 어지러워. 자네 말뜻을 빨리 좇아갈 수가 없으니 말야! 나의 보성학교 선배 이상 선생이 ‘날개’라는 소설 속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19세기일랑 봉쇄해 버리시오.” 사랑하는 여인 금홍이를 창녀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그 심정이 어땠겠나? 그래서 그 소설 마지막에 보면 미쓰코시 옥상에 올라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지. 결국 날개가 안 나왔으니 떨어져 죽었겠지. 나는 평생 내 보성 선배 김해경(이상의 본명) 선생의 그 절규에 공감하고 살았어. 그런데 19세기는 봉쇄되질 않았어. 아직도 노론과 친일파의 횡포가 계속되고 있고, 사드 운운하는 정세가 19세기 말의 격랑의 재탕이란 말야! 자네가 무슨 수로 시대교체를 하겠다는 겐가. 시쳇말로 개헌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현재 개헌에 관한 모든 논의는 기득권자들이 권력을 더 효율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방법론의 싸움일 뿐이지요. 해밀턴이든, 제퍼슨이든 미국의 헌법을 만들고 새로운 제도를 창조한 것은 그들이 미국의 초창기 역사의 과정에서 충분한 업적과 신뢰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 부형이 자기 자식 데리고 같이 떡볶이를 즐겁게 먹는 것은 떡볶이 집 주인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떡볶이 집 사장이 자기 새끼 입에 들어갈 떡볶이를 따로 만들고, 열악한 식자재에 조미료 범벅의 떡볶이를 판다면 누가 그 집에서 먹겠어요. 우리 국민이 근원적으로 정치인들을 불신하는데, 그들이 헌법을 개정한다고 해서 더 나은 사회가 도래하리라는 보장이 있겠습니까? 입시제도가 그토록 지배계층의 편의에 따라 계속 변했는데 진실로 교육의 진보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모든 직업 영역은 국민의 그 직업에 대한 신뢰도만큼만 발전합니다. 정치도 하나의 직업입니다. 그런데 신뢰도가 너무도 빈약합니다. 그러니 정치 영역이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법치에 대한 인치를 말하는 것인가?
“선생님께서도 『시진핑을 말한다』라는 책 속에서 인치를 전제로 하지 않는 법치는 무의미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인치, 법치를 따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양자를 통합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죠. 개헌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현행법 질서 내에서도 얼마든지 혁신적인 해석과 공정한 집행으로 세상을 혁명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정의는 정치의 지향점이고, 그 정의의 실현 방법으로 법과 제도의 공정성을 꾀해야 하고, 그 결과 국민의 평화로운 삶이 도래한다는 것이죠.”
또다시 아리송해지는군! 자네가 지금 나에게 어떤 형이상학이나 규범윤리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을 설파하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되기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직업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의 틀이 래디컬하게 바뀌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 그것을 위해서도 개헌이 필요하지 않은가?
“제도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이것은 닭과 달걀의 얘기와도 같은 것이죠. 그러나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바로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승리의 자리라고. 저는 지금 현재 충남도지사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저는 직업정치인으로서 존경받고 싶고 신뢰받고 싶어요. 존경까지는 몰라도 꼭 신뢰받고 싶어요. 저는 정말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국 도지사 중에서 도민의 신뢰도, 지지도가 가장 높다는 것도 오로지 성실함 그 하나 덕분이지요. 지금 어느 누구와 제도적인 문제를 전문적으로 논한다면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거를 대서 저의 의견을 관철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선생님과 하다 보면 제 모습이 구차스러워집니다. 그것이 본(本)이 아니기 때문이죠. 모병제? 이것은 우리가 어떠한 무기체계를 확보해 어떠한 방위체계를 구축하느냐에 부속된 하위 개념일 뿐이죠. 모병제, 징병제를 먼저 운운할 게 아닙니다. 경제민주화? 지방자치 분권? 농촌 살리기 문제? 중대선거구 개편? 이런 의제들이 모두 국가체제 전체에 대한 비전과 유기적 관련 속에서 해결돼야 합니다. 지금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 조미료를 많이 뿌린 화려한 반찬을 너무 많이 차려놓고 있어요. 진짜 순결한 쌀밥 한 그릇, 단군조선의 냄새가 밴 된장국 한 그릇이 없는 것이죠. 문제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권력자가 아닙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탁받은 직업인일 뿐입니다.”
잘 알겠는데 누가 자네 보고 ‘진지빤쓰’라고 말하더라. 진지한 것도 좋지만 유머 감각을 더 배우게.
“깊은 가르침 가슴에 잘 새겨두겠습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이렇게 썼다.

  형설지공반백년(螢雪之功半百年)
  물성완견접비비(勿成頑繭蝶飛飛)


  ‘형설지공이 이제 50년이나 흘렀구나.
  완고한 고치를 짓지 말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라.’


기획·진행=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김포그니 기자 glutton4@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도올의 안희정 충남지사 인터뷰 전문은 10월 17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11월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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