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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거품이 될 기대

중앙일보 2017.01.26 00:23 종합 26면 지면보기
김영훈 디지털 담당

김영훈
디지털 담당

버락 오바마가 시민으로 돌아왔다. 그의 시대를 정리하는 뉴스도 쏟아졌다. 눈길을 끈 디지털 콘텐트는 뉴욕타임스의 ‘그려봐(You draw it)’였다. 자기가 생각하는 오바마 8년의 성적표를 그래프로 그리면, 실제는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형태(www.nytimes.com/interactive/2017/01/15/us/politics/you-draw-obama-legacy.html)다. 예컨대 불법 체류 멕시코인이 늘었는지, 줄었는지를 짐작해서 그려보는 식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하도 이슈화를 하기에 왕창 늘었을 것이라고 그래프를 그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히려 줄었다.

빗나간 예상이나 선입견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헛된 기대로 현실을 부정하거나 비트는 경우다. 그제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른 ‘전안법’이 그렇다. 공식 명칭은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다. 전기·유아용품에 적용되던 안전 확인 규정을 의류·생활용품으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보세 옷, 면봉 같은 제품까지 이렇게 하면 소상공인이 다 죽는다는 게 반발의 핵심이다. 인증을 받기 위한 비용이 결국 제품 값에 전가될 것이라고 소비자 걱정까지 해준다. 할 법한 얘기다.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 법의 시행을 1년 뒤로 미뤘다. 국회는 이 문제를 다시 보겠다고 한다. 대충대충 심의, 불충분한 홍보 등 책잡을 일이 한둘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있다. 비용과 시간 투자가 없는 안전이란 없다. 세월호가 그렇고, 가습기 살균제가 그랬다. 정부가 소상공인의 인증 부담을 덜어줄 수야 있다. 그러나 공짜는 아니다.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다. 제품 값에서 세금으로 꼬리표만 바뀔 뿐이다. 인증한다고 사고가 사라지느냐고 반문하지만 인증은 원래 기본 건강검진 같은 성격이다. 아무리 영세업종이라 해도 귀 속에 넣는 면봉인데 기본적인 유해성 확인은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을 두고 다시 보면, 모두를 만족할 뭔가가 있을 것처럼 말한다. 거품이 될 기대만 키운 셈이다. 지금 안 되는 건 그때도 안 된다.

다시 미국 얘기다. 2001년 12월 마이애미행 비행기 안에서 폭발물을 신발 뒤축에 숨긴 테러리스트가 잡혔다. 이때부터 시작된 게 신발 검색이다. 이 바람에 투입된 비용과 시간은 셀 수가 없다. 그러나 당시로는 신발 뒤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은 신발을 벗어 검색기에 넣는 것 외에는 없었다. 미국 보안 당국은 책임도 못 질 기대를 심어주는 대신 현실을 인정했을 뿐이다.

한국에선 현실과 기대가 완전히 따로 노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선거 말이다. 이번엔 ‘할 수 있다’보다 ‘이건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눈여겨볼 참이다. 일을 더 잘할지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뒤통수 맞을 가능성은 가장 작을 게 분명하다.

김영훈 디지털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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