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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52·끝> ‘마르팅 브랑쿠’로의 느닷없는 초대

중앙일보 2017.01.26 00:01
언덕 위 성곽에서 내려다본 카스텔루 브랑쿠 전경.

언덕 위 성곽에서 내려다본 카스텔루 브랑쿠 전경.


‘초대’라는 말은 언제나 좋다. 친구 혹은 선배 집에 초대받아 따뜻한 밥 한 끼, 술 한 잔 하다 보면, 그래 이런 게 사람 사는 재미란 생각이 든다. 초대 중에서도 느닷없는 초대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낯선 도시에서 어쩌다 알게 된 현지인에게 식사 초대를 받는 것.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아무리 여행을 많이 해도, 일어나기 드문 일이라 더 그렇다.
 
도시의 구석구석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알려 준 실비아와 주제.

도시의 구석구석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알려 준 실비아와 주제.


포르투갈 동부 ‘카스텔로 누보(Castelo Nuvo)’에 갔을 때다. 스페인 접경의 여러 성곽 마을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한 달 간의 포르투갈 여행 막바지라 조금은 지쳐 있었다. 반면 카스텔로 누보시 홍보 담당자 실비아(Silvia)는 고건축을 전공한 친구 주제(José)까지 동원해 안내에 발 벗고 나섰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카스텔로 누보 취재 요청을 한 한국인 여행작가는 내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영어를 잘 못했다. 통역과 부연 설명을 첨가해 줄 친구가 필요했던 거다. 
 
바로크식 정원의 정수를 보여주는 자르딩 두 파수 에피스코팔.

바로크식 정원의 정수를 보여주는 자르딩 두 파수 에피스코팔.


그 덕에 카스텔루 브랑쿠의 역사를 알고, 도시를 지켜 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에 오르자 중세에 성곽도시의 위엄을 뽐내던 성벽 몇 토막이 남아있었다. 뒤로는 분수가 있는 공원,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내주는 오솔길이 차례로 연결됐다. 그 길은 구시가로 연결됐다. 실비아와 주제는 구시가의 옛 성곽 원형이 어땠으며, 앞으로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귀띔까지 해줬다. 꽃 향기 만발한 오렌지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 ‘자르딩 드 파수 에피스코팔(Jardim de Paço Episcopal)’도 둘러봤다. 원래 옛 주교의 겨울 별장으로 지어진 곳으로, 아름다운 정원에는 역사가 깃들어 있었다. 예정된 일정은 딱 거기까지였다.
 
은퇴한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 시스투 센티두의 레스토랑.

은퇴한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 시스투 센티두의 레스토랑.


그런데 실비아는 여기까지 왔는데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했다. 그것도 근교의 작은 마을, 마르팅 브랑쿠(Martim Branco)에 가서 먹자고 했다. 주제도 그곳의 시스투 마을을 꼭 보여주고 싶다며 거들었다. 뜻밖의 초대였다. 못이기는 척 따라 나섰다. 차로 이동하는 사이 포르투갈어로 시스투(Xisto)가 우리말로는 편암이란 걸 알게 됐다. 편암은 조암 광물이 수직방향으로 재배열된 변성암의 일종으로 잘 쪼개진다. 포르투갈 중부에선 편암이 흔해, 수 세기 전부터 편암으로 농가를 지어 왔단다.  
 
편암으로 지은 시스투 집과 올리브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편암으로 지은 시스투 집과 올리브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얼마쯤 달렸을까. 어느새 졸졸 개울물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올리브나무 사이를 지나자 독특한 돌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바라만 봐도 맘이 느슨해지는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식사 장소는 농가를 레스토랑 겸 숙소로 개조한 ‘시스투 센티두(Xisto Sentido)였다. 들어가기도 전에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앞치마 차림으로 나와 반겼다. 뭘 좋아할지 몰라 이것저것 다 준비했다며 웃는 모습이 푸근했다. 내겐 느닷없는 초대였지만 실비아에겐 계획적인 초대였던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집밥 먹는 기분으로 포르투갈 가정식과 와인을 마셨다.

지구 반대편에서 집밥 먹는 기분으로 포르투갈 가정식과 와인을 마셨다.


은퇴 후 시스투 센티두를 운영한다는 부부는 귀한 손님 대하듯 음식을 내왔다. 패브릭 주머니에 담긴 빵하며, 푹 익을 때 까지 오래 요리한 양고기 찜하며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가정식 요리였다. 주인아저씨는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에 맛있는 와인이 빠질 수 없다며 와인을 고르러 갔다. 한쪽 벽면에 꾸민 바에서 꺼내온 와인 이름은 ‘테라스 드 시스투(Teras de Xisto)’ 였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알렌테주(Alentejo) 지방에서도 편암이 많은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고 했다. 와인은 감미로웠고, 양고기 찜은 한국의 갈비찜과 맛이 비슷했다. 잔을 비울수록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의 웃음소리도 한 옥타브 높아졌다. 웃으며 와인을 함께 나눠 마시는 시간이 좋았다. 술이란 어떤 술이든 누구와 어디서 마시느냐에 따라 그 맛이 증폭되는 것 아니던가. 그렇게 우리는 와인 잔을 비우고 달콤한 디저트에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까지 아주 오래오래 점심을 먹었다.
 
술 한 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레스토랑 한쪽은 바(Bar)로 꾸몄다.

술 한 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레스토랑 한쪽은 바(Bar)로 꾸몄다.


시스투 센티두를 나서는데, 마음이 온기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좋아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내게 실비아와 주제가 약속이라도 한 듯 물었다. 점심도 먹었으니 다 같이 카스텔루 브랑쿠의 현대미술관 전시 오픈에 가면 어떻겠냐고. 끝나고 저녁까지 먹고 가도 좋다는 태세였다. 예약해둔 리스본의 숙소나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만 아니었다면 전시회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아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다 카스텔루 브랑쿠에 눌러 살았을지도. 하하. 넉살 좋은 두 친구 덕분에 웃으며 헤어졌다. 우연한 초대로 여행이 낭만적으로 마무리된 기분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회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꼬박 1년 동안 매주 <우지경의 Shall We Drink>에 여행 이야기를 채워왔다. 마시러 떠난 여행도 있었고, 떠나보니 마시게 된 술이나 차 이야기도 있었다. 여행은 그랬지만 칼럼은 작정하고 썼다. 때로는 비행기 안에서도 쓰고, 버스 안에서도 썼다.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된 여러분을 뜻밖의 여행지로 초대하고 싶어서였다. 부디 그 초대가 즐거웠기를. 칼럼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지만, 우리 모두 틈틈이 여행지에서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본다. 더불어 그 한 잔에 담긴 문화를 느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쿵짝이 맞는 술친구와 함께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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