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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우리 영향력이 베트남보다 못하나

중앙일보 2017.01.24 01:1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925명. 트럼프 취임식 날의 참석자 1000명 중 백인 숫자다. 어떻게 나온 숫자일까.

“8년 전 오바마 때는 새벽 6시에 지하철에서 내려 역 지상으로 올라가는 데만 1시간40분이 걸렸대.” 주변에서 하도 겁을 주길래 전날 워싱턴 내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잤다. 20일 취임행사가 열리는 의사당 앞 광장에 도착한 게 오전 7시30분. 한산했다. 속았다 싶었다. 더 놀란 건 행사장의 ‘색깔’. 죄다 백인이었다. 다시 의사당 앞 ‘캐피톨 사우스’ 지하철역으로 갔다. 행사장으로 향하는 1000명의 인종 구분을 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간단했다. 흑인은 단 2명, 아시안은 58명,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게 15명이었다. 솔직히 내가 더 주목한 건 지나치게 많은 백인도, 지나치게 적은 흑인·히스패닉도 아니었다. 어떻게 아시아계는 정확히 인구비율(5.6%)에 맞게 취임식에 왔을까. 답은 사실 전날 밤에 있었다.

19일 밤 워싱턴 메이플라워 호텔에선 ‘트럼프를 지지한 아시아계’의 비공식 파티가 있었다. 한국·중국·대만·인도·필리핀·일본계 등 500명가량이 모였다. 미국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정치인·경제인 등이 단상에 올라 미국 내 자국의 파워를 외쳤다. 한국계 인사들은 힐러리 지지로 쏠린 탓인지 눈에 띄게 적었다.

테이블 옆자리의 50대 인도인에게 “미국 내 인도계들은 트럼프를 지지했냐”고 물었다. 그는 씩 웃으며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양쪽에 딱 절반씩 후원금을 낸다”고 했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한다는 얘기였다. 맞은편 40대 중국계 변호사의 말. “당연하지. 미국에서 막강 세력인 유대인을 봐라.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다. 중국도 그렇게 따라 한다.”

그렇다. 우리만 빼고 대다수 아시아계는 영리한 베팅을 했다. 인구비율과 거의 같은 아시아계가 취임식에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취임식 다음날 공화당 주최 아시아계 행사도 주역은 인도와 대만·중국이었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니키 헤일리(유엔대사 내정)의 인도!”라고 외치자 인도계 참석자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엘라인 차오 장관(교통장관 후보자)의 대만!”을 외칠 때는 대만계 인사들이 난리가 났다. 한국 참석자들은 그저 구석에서 조용히 박수만 쳤다. 열렬히 환호할 장관, 대사, 연방의원 한 명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내 한인은 대략 200만 명. 인도·중국(대만 포함)·베트남계와 거의 같다. 그런데 연방의원 숫자는 인도계 5명, 일본계 4명, 중국계 2명, 베트남·필리핀·대만·태국계가 각각 1명씩이다. 우리는 0. 김창준 이후 18년째 맥이 끊겨 있다. 경제·교육적으로는 다른 아시아계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자랑하지만 숫자로 드러난 정치적 영향력은 베트남보다 못한 게다. 지난 상·하원 선거에서도 당선 후보는커녕 출마 후보도 없었다. 어디 정치인뿐이랴.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스타’도 없다.

아도 마치다.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의 막후 실세였던 일본계다. 법률회사 에이킨 검프에서 일했던 로비스트다. 2007년부터는 아예 일본계 로비회사 ‘더 카이젠’(개선이란 뜻의 일본어)의 회장으로 활동했다. 통상·에너지·규제개혁 등 14개 분야 정책 청사진 마련을 총괄한 최대 실세였다. 문제는 물밑에서 일본 대사관·대기업 관계자들과 수시로 전략회의를 열었다는 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마치다는 일 정부가 가장 예민해한 국방·안보 분야 인수위 담당자에 아예 일본계 후배를 배치했다. 물론 아베 총리와 이방카·쿠슈너 부부를 연결한 첫 단추도 마치다로부터 비롯됐다.

공공외교의 지향점은 우리 편, 우리 팬 많이 만들기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우리 사람 키우기’ ‘우리 사람 활용하기’다. 그런데 우리는 김창준 같은 사람을 지긋이 키우질 못한다. 트럼프와 한국의 공통점 때문이다. ‘S(서로)N(남)S(씹기)’에 너무나 익숙하다는 점. 우리의 고질적 약점이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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