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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멜라니아 정치에 무관심…재클린 같은 셀럽형 영부인 예고

중앙일보 2017.01.21 00:58 종합 13면 지면보기
이민자 출신 미국 퍼스트레이디
누드화보 찍은 패션모델 출신
마약 퇴치 낸시, 여권 신장 베티 등
지성·품위 내세운 전임자들과 달라

미국인들은 20일(현지시간) 이전과는 색다른 퍼스트레이디를 맞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4세 연하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47)다. 멜라니아는 수식어마다 ‘첫’이 붙는다. 첫 이민자 출신, 첫 패션모델 출신, 대통령의 세 번째 부인으론 처음 퍼스트레이디에 오른 것 등이다. 이런 수식어에 이견을 제시하는 이도 있지만, 다음 수식어 앞에선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누드 사진을 찍은 여성이 퍼스트레이디가 된 건 첫 사례란 대목에서다.

멜라니아는 패션모델 시절인 1995년과 2000년 각각 뉴욕포스트, 영국 GQ와 전신 누드 화보를 찍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가장 ‘핫’한 퍼스트레이디가 탄생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맞먹는 전례 없는 퍼스트레이디의 등장에 미국인들은 멜라니아가 어떤 퍼스트레이디상을 보여 줄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보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퍼스트레이디란 혹평부터 재클린 케네디(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인)의 재현이 될 거란 전망이 미 언론에서 흘러나온다.

대외 활동보다 패션에 애정
공개 석상에 나오는 일 줄어들어
진화해온 영부인 역할 후퇴시킬 것
멜라니아 트럼프

멜라니아 트럼프

멜라니아 트럼프(47)
●1970년 4월 26일 슬로베니아 노보메스토 출생
●신장: 180㎝
●학력: 슬로베니아 류블라냐대 중퇴
●경력: 패션모델, 주얼리 사업
●가족관계:
남편: 도널드 트럼프
친아들: 배런
의붓자녀 4명: 트럼프주니어·이방카·에릭·티파니
●특이사항:
“닮고 싶은 퍼스트레이디는 베티 포드와 재클린 케네디”
아들 학교 문제로 백악관 대신 당분간 뉴욕에 머물기로
그간 백악관의 역대 퍼스트레이디는 지성과 품위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회운동에 헌신해 남편 프랭클린 루스벨트만큼이나 존경을 받았던 엘리너 루스벨트(32대), 똑똑한 여성의 대표격으로 빌 클린턴의 국정을 도왔던 힐러리 클린턴(42대), 아동 비만 퇴치와 공교육 강화에 전력했던 하버드 법대 출신의 미셸 오바마(44대) 등 멜라니아의 전임자들은 사회 통념상 정해져 있던 퍼스트레이디의 역할과 이미지에 충실했다.

하지만 멜라니아는 전임자들과 경력이 전혀 다르다. 16세에 고국 슬로베니아에서 광고 모델을 시작해 엘르·보그 등 패션 잡지의 표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26세 때(1996년) 미국으로 건너와 자신의 운명을 바꾼 한 남자를 만난다. 트럼프는 98년 9월 뉴욕 패션위크 행사에서 멜라니아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바로 옆에 여자 친구가 있는데도 멜라니아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려고 안달이었다. 멜라니아가 끝내 전화번호를 주지 않은 건 유명한 일화다. 멜라니아는 지난해 CNN 인터뷰에서 “만약 연락처를 줬다면 나는 트럼프의 수많은 여성 중 한 명이 됐을 것이다. 며칠 뒤 내가 직접 연락해 첫 데이트를 했다”고 말했다.

당시 두 번째 부인과 이혼 절차를 밟고 있던 트럼프는 멜라니아와 열애 끝에 2005년 결혼했다. 멜라니아는 이듬해에 아들 배런을 낳았고 그해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멜라니아는 지난 10년간 배런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2010년 자신의 이름을 딴 주얼리 브랜드를 론칭했으나 2년 정도 운영하고 관뒀다. 트럼프의 정치 활동에도 무신경한 편이다. 지난해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지지 연설에 나선 게 거의 유일한 내조였다. 하지만 미셸 오바마의 과거 연설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휘말리면서 공개석상에 나오는 일이 더욱 줄었다.

미국 스크랜턴대에서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연구해 온 진 발 해리스는 “영부인의 역할이 그간 진화했다는 점에서 볼 때 멜라니아는 영부인 역할을 대통령의 아내 정도로 후퇴시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국인은 대통령 부인에게 그저 좋은 아내나 어머니를 기대하지 않는다”며 “대중 앞에 나서 대통령을 지원하고,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걸 원한다. 하지만 멜라니아는 그런 일을 편하게 느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해리스에 따르면 미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단순 내조형 아내, 셀레브리티(유명인사), 사회 활동가, 정치적 파트너로 진화해 왔다. 라디오쇼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 대외 활동으로 내조형 퍼스트레이디상을 일거에 무너뜨린 엘리너 루스벨트,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대중에게 인기가 많았던 재클린 케네디가 셀레브리티에 속한다.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퍼스트레이디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권 신장에 애쓴 베티 포드(38대 제럴드 포드 대통령 부인), 마약 퇴치에 앞장 선 낸시 레이건(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인), 문맹률 낮추기 운동에 헌신한 바버라 부시(41대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부인) 등이 대표적 예다. 적극적으로 국정에 관여한 힐러리 클린턴은 나중에 본인이 직접 정치에 뛰어든 미 역사상 가장 진취적인 대통령 부인으로 평가된다.
멜라니아 트럼프가 퍼스트레이디 모델로 언급한 베티 포드(왼쪽)와 재클린 케네디(오른쪽). 각기 스타일은 달랐지만 남편 내조에 헌신적인 퍼스트레이디였다. [중앙포토]

멜라니아 트럼프가 퍼스트레이디 모델로 언급한 베티 포드(왼쪽)와 재클린 케네디(오른쪽). 각기 스타일은 달랐지만 남편 내조에 헌신적인 퍼스트레이디였다. [중앙포토]

미국 대통령 역사가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멜라니아는 재클린 스타일의 퍼스트레이디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치·사회 이슈에 무신경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패션·인테리어에 애정을 쏟는 점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 대신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화려한 퍼스트레이디가 될 것”이라고 했다.

멜라니아는 9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된다면 베티 포드나 재클린 케네디처럼 내조할 것”이라고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대한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둘 다 미국인이 무척 좋아한 대통령 부인이다. 베티는 백악관을 떠난 뒤 얼굴 주름 제거 수술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비난하자 “새 인생을 새 얼굴로 시작하고 싶다”고 받아치는 솔직함과 여유가 있었다. 우아함의 대명사 재클린을 미국인들은 재키란 애칭으로 불렀다.

아들 교육문제로 백악관 안 가
멜라니아, 의전 퍼스트레이디 역할
트럼프 장녀 이방카가 실질적 내조

하지만 지금까지 멜라니아에 대한 호감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아들 배런의 학교 문제로 트럼프 취임 후에도 백악관에 들어가지 않고 뉴욕 트럼프타워에 머물 거란 사실이 알려지자 황당해하는 이가 많았다. 최근 멜라니아에 대한 유일한 근황 뉴스는 완벽한 헤어와 메이크업·의상을 위해 극장 수준의 조명을 갖춘 의상룸을 백악관에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이방카 트럼프

이방카 트럼프

이방카 트럼프(36)
●1981년 10월 30일 미국 뉴욕 출생
●신장: 180㎝
●학력: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졸업(2004년)
●경력: 패션모델, 트럼프그룹 부사장, 주얼리 사업
●가족관계:
남편: 재러드 쿠슈너 사이에서 자녀 3명
●특이사항: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트럼프그룹 및 주얼리 사업 경영진에서 물러나, 최근 백악관 근처로 이사
이러다 보니 멜라니아는 의전용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그치고,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36)가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할 거란 전망이 흘러나온다. 이방카는 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대선 기간 활발한 유세를 펼쳐 트럼프를 도왔다. 트럼프가 음담패설 등 위기에 봉착할 때도 멜라니아가 아닌 이방카가 나서 아버지의 약점을 상쇄시켰다. 정권인수위원회에서도 내각 인선 등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방카는 "한 명의 퍼스트레이디가 있다”며 "멜라니아가 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이방카는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트럼프의 회동에 동석했고,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당선 축하 전화도 아버지와 함께 통화했다”며 “일정 부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이미 수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과거에도 딸이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한 경우가 있었다. 그간 행보를 볼 때 이방카는 가장 막강한 ‘퍼스트 도터(First Daughter)’가 될 조짐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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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방카는 최근 트럼프그룹 부사장과 자신의 주얼리 사업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백악관 근처로 이사했다”며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임명된 남편 재러드 쿠슈너를 위한 측면이 있지만 이방카 역시 트럼프 행정부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전했다.
 
[S BOX] 루스벨트 장녀 앨리스, 막강한 퍼스트도터 역할
미국 역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퍼스트 도터(First Daughter)는 누가 있을까.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이방카 트럼프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26대)의 장녀 앨리스와 비견될 만하다”고 보도했다. 루스벨트는 1905년 7월 2일 자신의 딸 앨리스를 필두로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아시아 순방 외교 사절단을 파견했다. 당시 21세의 앨리스는 아름답고 매력이 넘쳤다. 사절단은 4개월가량의 순방에서 여러 성과를 거뒀다. 한창 전쟁 중이던 러시아와 일본을 중재했다. 덕분에 루스벨트는 미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앨리스 일행은 또 일본에 가서 일본이 조선 지배권을 갖고, 미국이 필리핀 지배권을 보유하는 걸 서로 인정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38대)의 외동딸 수전 포드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 베티를 대신해 집권 초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수전은 당시 인식이 낮았던 유방암 의식 향상 캠페인을 연례화하는 정치적 업적을 남겼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37대)의 차녀 줄리는 아버지의 대변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렸을 때 100여 건의 인터뷰를 하며 아버지를 변호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32대)의 장녀 애나는 1945년 아버지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을 만날 때 동행했다. 당시 루스벨트는 병약한 상황이었다. 이를 두고 라이프지는 “딸이 아버지를 경영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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