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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문재인표 한·미 관계의 딜레마

중앙일보 2017.01.19 20:24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20일(현지시간) 개막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한·미 관계를 가늠해 볼 간단한 퀴즈 하나. 다음의 두 발언 가운데 차기 지도자 선호도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은 어느 것일까? 또한 그의 정치적 뿌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어느 것일까? 발언 1. “국내에서 여러 가지 비판적 의견과 반대여론이 있(지만)… 동맹 관계를 존중하고 또 오랫동안의 우호 관계와 미래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 미국에 대한 지지 의사와 지원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발언 2. “미국이냐 북한이냐, 선택하라는… 그 질문에 대해선 미국이라고 답해야 한다는 제한된 사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 슬픈 일이죠. …미국은 우리와 오랜 우방이자 오랜 친굽니다.”

한·미 관계가 직면할 중대 장애는
국회 4당 체제와 책임회피 정치
시민이 요구할 외교안보정책과
밀실 관료주의 간의 딜레마다
문재인, 당파성 악순환서 벗어나
가치와 목표 리셋할 준비돼 있나


 실용적 동맹 관계가 강조되고 있는 발언 1은 북핵 위기와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했던 발언이다. 한편 한·미 동맹과 남북 관계의 딜레마 속에서 햄릿형 고민이 잔뜩 묻어나는 발언 2는 지난 월요일 출간된 정책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밝힌 한·미 관계 구상의 한 대목이다.

 한·미 관계는 청와대와 백악관에 어떤 리더가 자리 잡고 있는가의 조합에 따라서 냉탕과 온탕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구조이기에, 우리는 트럼프 정부의 예측불가능성 못지않게 문재인 전 대표의 대외정책 리더십에 대해서도 면밀히 점검해보아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의 내향적 의식구조를 차치하더라도 (문 대표 스스로가 밝힌 가장 화났을 때 참는 법은 ‘혼술’이다. 대담집 176쪽) 새 정부의 한·미 관계는 적어도 두 가지의 중대한 장애물과 씨름하게 될 것이다. (1)4당 체제 국회 내의 교착과 책임회피의 정치 (2)시민들이 요구하는 민주적 외교안보정책과 밀실 관료주의 사이의 딜레마. 
 예컨대 (가상적) 문재인 정부가 주한미군의 사드 부대 배치 결정을 원칙적으로 수용하되, 이는 국가 “재정부담을 초래하는 국제 간 합의이니만큼 국회비준 동의를 구한다”고 할 때에(대담집 194쪽) 부딪히는 첫 번째 난관은 4당 체제로 구성된 20대 국회가 드러낼 “책임회피의 정치(politics of blame avoidance)”이다. 무엇보다 이념상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가상적) 두 야당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배치 동의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앞장설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2003~2004년 이라크 파병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당시 보수 야당인 한나라당이 보여주었듯이, 이념상으로는 찬성하더라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당시에는 이라크 파병) 굳이 앞장서는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책임 회피의 정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초당적 외교라는 의원들의 달콤한 수사는 TV카메라 앞에서만 유효할 뿐, 의사당의 문턱을 넘지는 못한다. 게다가 사드 배치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비준 동의안을 적극적이고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강렬한 목표의식과 불같은 추진력을 포기한 적 없는 노 전 대통령조차 국회의 파병동의안을 이끌어내는 데에 거의 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과연 문재인 대표는 책임회피와 교착의 정치를 돌파할 사자 같은 의지와 토끼의 꾀를 발휘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표의 대미정책이 맞게 될 두 번째 딜레마는 시민정치와 관료주의의 충돌이다. 지난 한 해 시민들은 한국 민주정치의 일상적 절차의 총체적 실패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린 바 있다. 아울러 민주적 절차에 대한 대대적 혁신을 요구하면서 적극적 민주시민으로 다시 등장했다. 이제 적극적 시민들은 당연히 새 정부의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사드 배치와 같은 이슈들에도 민주적 투명성과 책임성의 햇볕이 환하게 비춰지길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이슈를 다루는 국방부, 외교부 관료들이 외교안보 이슈가 갖는 기밀성, 시급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는 밀실 관료주의에 젖어 있다는 데에 있다. 과연 문 대표는 뿌리 깊은 안보 관료주의의 독선적 비밀주의를 통제하면서 21세기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요구를 안보정책 결정 과정에 담아 낼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소수 여당의 한계, 지지 세력으로부터의 거센 비판을 뚫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의 역사적 성과를 남길 수 있었던 동력은 노 전 대통령 특유의 강렬한 역사의식과 목표의식이었다. 문재인 대표는 과연 4당 체제의 한계, 관료주의의 저항을 뚫고 나갈 결연한 자세와 정치력이 준비되어 있는가? 문 전 대표가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서, 한·미 관계의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는 일관된 안보정책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는 당파성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 외교안보의 가치와 목표를 리셋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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