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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문재인, 친문만으론 안 된다

중앙일보 2017.01.19 19:59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2000년 4월 총선에서 대승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제왕적 총재였다. 야당이지만 국회 권력을 장악해 그가 ‘열려라 문’ 하면 국회가 열렸고, ‘닫혀라’ 하면 폐회했다. 김대중 대통령 레임덕에 ‘홍삼 트리오(아들 3형제)’ 비리까지 겹쳐 2002년 대선 승리는 시간 문제란 분위기였다. 그러니 대선까지 2년을 보태 ‘7년 대통령’으로 불렸다. 50~60% 지지율을 넘나든 대세론 주자였다. 대세론에 걸린 노무현 후보가 1.6%를 기록할 때 얘기다.

편 가르지 말자며 편 가르는 친문
소수 정파론 집권해도 가시밭길


그러다 노풍(盧風)이 태풍이 되면서 이회창 대세론은 한 방에 무너졌는데, 재기를 막은 대못도 대세론이었다. 패색이 짙어진 캠프에선 ‘이회창 내각’으로 막판 뒤집기에 나서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박근혜 총리, 심재륜 법무…’ 등 인기 좋거나 개혁적인 인사들로 내각 명단을 꾸려 대선 전에 발표하자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론 발표하지 못했다. 총리·법무장관 등의 자리가 자기 몫이라고 생각한 소위 7인방, 9인방 하던 측근 인사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대세론은 높은 지지율에서 나온다. 한번 형성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원래 있던 사람과 몰려든 사람 사이에선 충성 경쟁이 뜨거워진다. 싸움은 선명한 쪽이 유리해서 대세론 캠프엔 대개 지지층에 ‘올 인’하는 부자 몸조심이 우선이고 외연 확대는 변절자 취급이다.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늘 같은 노래를 부르니 참신한 가수가 끼어들 공간은 작다. 그렇게 수구 강성의 보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게 ‘친창(친이회창)’ 세력이었다.

문제는 이념적으론 친창 그룹 반대편 어디쯤 위치한 문재인 캠프의 굴러가는 모양새가 이회창 캠프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문느님’으로 부른다는 친문 지지자들은 문 전 대표를 비판하면 같은 당 인사들에게도 곧바로 문자 테러, ‘18원 후원금’을 쏘아댄다. 박근혜·손학규가 그때 그런 처지였다. 민주당 안팎에선 집권 뒤 임명할 공공기관장 명단이 흘러다닌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문재인의 최순실이 누구누구란 소문도 많다.

문 전 대표는 1위 주자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상승세다. 거기에다 문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1469만 표를 얻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표를 받고 낙선했다. 대세론이 나올 만하다. 그런데 되새겨야 할 건 폐쇄성에 질린다는 반대자가 열성 지지자만큼 많다는 점이다. 문재인이 대통령 되는 걸 ‘긍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은 50%를 넘지 못한다. 지난 대선에서 48%로 패한 뒤 재수 중이지만 성적은 그대로다.

이번 대선은 어차피 짝짓기 싸움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예상대로 개헌과 선거구 카드를 꺼내들었다. 반문(반문재인) 빅텐트를 위한 건축 자재들이다. 임기단축형 개헌은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 중대선거구제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겨냥한 연대 도구일 게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다당제 연합정치가 미래”라며 거들고 있다. ‘뉴 DJP연합론’까지 거론되는 마당이니 이들이 모두 반기문 내각 명단이라면 확실한 빅텐트다.

명분 없는 이합집산이라고 몰아세울 것만도 아니다. 지금 분위기론 얼추 벚꽃 선거다. 어차피 개헌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그래도 제왕적 대통령에 질린 민심은 부든 권력이든 나누고 분산하라는 쪽이다. 총리에게 실질적으로 내각 구성권을 주는 등의 연정이라면 개헌 없이도 가능하다. 거기에다 대통령 임기까지 3년으로 줄인다고 하지 않나. 구국을 위한 거국내각 드림팀이란 포장이 먹힐 수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대선 전 발표한다는 내각은 아마도 독식 명단일 게다. 적어도 김종인·안철수·손학규는 없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사라진 이회창 내각처럼 대선 전에 안 나올지도 모른다. 기세등등한 친문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친문은 연합하고 연대해야 한다. 설사 친문만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다 해도 120석 남짓한 민주당만으론 여소야대 대결 정치를 헤쳐 가기 어렵다. 더 중요한 건 부자 몸조심만으로 집권한 대세론은 한국 대선판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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