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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문재인과 ‘김치 5’

중앙일보 2017.01.18 21:53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김치 5’는 이경필씨다. 출생은 1950년 6·25 전쟁통 12월 25일. 출생장소는 거제도 장승포 항구 앞 화물선. 부모는 탈북 실향민이다. 김치 5의 가족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비슷하다.

흥남 철수의 비슷한 가족사
한국판 쉰들러 동상 제막 때
“문재인 축사, 강렬하나 아쉬워
미군에 고마움 표시는 없어”
제주 해군기지는 노무현 업적
문재인의 반대 입장, 유효한가


 50년 10월 우리 군은 38선을 돌파한다. 압록강까지 올라갔다. 마오쩌둥의 중공군이 개입했다. 전세는 재역전 당한다. 미군과 국군은 동해의 흥남항구로 퇴각했다. 피란민들이 부두로 몰렸다.

 피란의 절정 장면은 ‘메러디스 빅토리’ 다. 영화 ‘국제시장’ 속 수송선이다. 1만4000 피란민들이 배에 올라갔다. 배는 12월 23일 남쪽으로 떠났다. 2박3일 항해 중 새 생명 다섯이 태어났다. 선원들은 애칭을 붙였다. 순서대로 ‘김치 1~5’. 김치 5는 크리스마스 날의 갓난아이다. 피란 사연들은 감동의 누적이다. 문재인의 부모는 미군 LST(상륙함)를 탔다. 그리고 거제로 왔다.

 메러디스 빅토리는 기적의 서사시다. 서사의 주요 인물은 선장 레너드 라루, 미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 포니 해병 대령, 한국인 통역관 현봉학이다. 현봉학의 호소는 절박했다. “민간인도 태워 달라. 여기에 남으면 몰살당한다.” 그는 한국판 쉰들러다. 배에 실린 화물이 버려졌다. 그 빈 곳을 피란민들이 채웠다.

 지난 12월 말 현봉학 박사(세브란스 의전 출신)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참석했다. 문재인은 축사를 했다. “흥남부두 피난민들 가운데 저희 부모님과 누님도 계셨습니다. 현봉학 박사님의 활약이 없었다면 북한 공산 치하를 탈출하고 싶어 했던 10만 피난민들이 대한민국으로 내려올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거제에서 태어났습니다만(53년 1월생) 아마 저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문재인의 이야기는 강렬하게 꽂혔다. 사실의 힘이 일으킨 생동감이다. 하지만 실향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미묘했다. “인상 깊은 축사였지만 아쉽고 불편했다. 알몬드와 포니의 자손들도 방한, 행사에 참석했는데 문 전 대표가 그들에게 고마움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아서다. 미군의 인도적 베풂·배려에 대한 그의 자세는 인색했다.”(이기열씨, 이북 5도민) 김치 5는 그런 감상을 모았다. “흥남 탈출엔 현봉학 박사·김백일 장군의 결정적 기여가 있었지요. 그리고 군대 철수도 힘든 상황에서 피란민을 배에 태운 구출의 결행은 미군 지휘부가 했어요. 문 전 대표 연설에서 미군에 대한 감사를 곁들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런 상념은 문재인의 가족사와 얽히면 실감 난다. “함경도 명문 함흥농고를 졸업한 아버지는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 유엔군이 진주한 짧은 동안(1950.10~12월) 시청 농업과장도 했다.”(본인 저서 『문재인의 운명』) 그 행적은 북한 입장에선 전시(戰時)반동이다. 문재인 부친이 미군 함정에 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김치 5의 아버지는 ‘거제 평화 사진관, 평화 상회’를 열었다. 김치 5는 수의사다. ‘평화가축병원’을 차렸다. “ 아버지는 은혜 갚기와 평화에 집착했어요. 전쟁은 다시는 안 된다는 외침이지요.” 나는 십 년 전 김치 5의 드라마에 매료됐다. 중앙일보에 소개했다. 우리는 ‘김치 1’을 찾아 나섰다. 김치 1(손양영)은 수출 전사의 삶을 살았다. 2년여 전 두 사람의 만남은 절제된 감격이었다. ‘김치’들은 파주 임진각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았다. “부국강병이 돼야 굴욕이 아닌 정의로운 평화가 된다. 한·미 동맹이 헝클어지면 중국·일본이 한국을 깔본다.” 그들의 신념은 명료하게 단련돼 있다.

 동북아 질서는 긴장 상태다. 문재인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입장은 산만하다. “다음 정권에 넘겨야, 국회 동의 거쳐야, 한·미 합의 감안해야, 하지만 얽매일 필요 없어.” 그런 자세는 제주 해군기지의 곡절을 떠올리게 한다. 제주 기지는 1년 전에 완공, 가동하고 있다. 기지 건설은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당시 문재인은 비서실장이었다. 그 후 문재인은 반대편에 섰다. 그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했다. 기지 건설 저지의 주력은 과거 노무현 지지층이었다. 그것은 노무현의 성취에 대한 묵살이고 배신이었다.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遼寧)의 존재는 위력적이다. 미국과 일본은 비상을 건다. 제주 기지는 중국과 일본의 함정을 추적한다. 기지의 탐지 역량은 돋보인다. 그것은 노무현의 매력적인 업적이다. 노무현은 “힘이 없으면 평화는 유지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무장(武裝)평화론’은 빛난다. 문재인의 시각은 무엇인가. 제주 기지 반대 자세는 지금도 유효한지, 아니면 철회했는지.

 사드의 깃발은 무장평화론이다. 문재인의 방식은 ‘충분한 공론화’다. 공론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언어에 상투적인 냄새가 난다. 그것은 쟁점에 대한 지루한 회피다. 지도력의 낭비다. 안보는 결단의 세계다. 리더십은 선명해야 한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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