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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우리 마음의 조현병

중앙일보 2017.01.18 21:47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1980년대 인기 통기타 그룹 ‘솔개 트리오’의 멤버 한정선씨는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공원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던 처량한 노숙자 신세였다. ‘아직도 못다한 사랑’ ‘여인’ 등 지금도 노래방에서 즐겨 불리는 히트곡들을 직접 작사·작곡했던 한씨는 어느 날 홀연히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랬던 그가 조현병을 앓는 노숙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인들이 한씨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이들의 돌봄 속에서 심신의 건강을 회복한 한씨는 드디어 이번 주말 20여 년 만에 다시 기타를 잡고 팬들 앞에 설 예정이다.

 조현병이 일견 낯선 질병 같지만 사실은 정신분열증의 다른 이름이다. 단어가 풍기는 부정적 인상과 사회적 편견을 바꾸기 위해 2011년 개명됐다. 사전적 의미는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환자가 마치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처럼 망상·환각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는 데서 비롯됐다. 전 세계 인구의 1%가량이 조현병 환자로 국내에서도 50여만 명이 앓고 있다. 100명에 한 명꼴이니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미친 사람에겐 약도 없다는 건 옛말이다. 뇌신경망 이상으로 발병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약물과 심리 치료 기법이 발달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얼마든지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병명을 바꾼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질병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조현병자를 무작정 기피하던 사회적 시선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비단 이들뿐이겠는가. 겉은 멀쩡한데 시도 때도 없이 불협화음만 내는 또 다른 형태의 조현병자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욕망과 이기심, 시기와 질투, 아집과 독설 등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정신분열적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뇌가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매일 밤 11시쯤이면 아파트 위층에서 어김없이 고성이 들려온다. 엄마는 “너 때문에 내가 죽는다”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자녀는 “대체 왜 나만 갖고 그래”라며 고래고래 맞받아친다. 밤이라 더욱 크게 들려오는 층간소음은 30분 넘게 이어지곤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멀쩡한 표정들이다. 그러고는 밤이 되면 또 죽기 살기로 싸운다. 비정상도 이런 비정상이 없다 싶을 정도다. 지난해 한 송년 모임에서 이 얘길 했더니 절반 이상이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단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밤마다 이런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회만 혼용무도한 게 아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국가적 과제만이 아니다. 개인이 건강해야 가정도, 사회도 건강하지 않겠는가. 좋은 학력과 재력과 직장을 갖고 있으면 뭐하나. 아무리 그럴싸한 현악기처럼 보여도 마음이 조율돼 있지 않으면 불협화음에 층간소음만 일으킬 뿐이다. 새해엔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탓하기 전에 우리 마음의 조현병부터 치유해 보자. 한씨의 인간 승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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