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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넷처럼 100억 벌자”…전교 1등 출신의 일그러진 욕망

중앙일보 2017.01.18 03:00 종합 12면 지면보기
지난 3일 인천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형사 2명이 들이닥쳤다. 수사관들은 법무사 정모(34)씨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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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대인기피증에 고3 중퇴
검정고시 후 법무사 시험 합격
월 600만원 벌었지만 만족 못해
‘꿀밤’ 운영해 1년간 15억 벌어
추적 피하려 비트코인으로 결제
“본인은 결벽증에 가까운 생활”

3년 넘게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실한 법무사가 ‘소라넷’ 이후 국내 최대(회원 기준 42만 명) 불법 음란사이트인 ‘꿀밤’(성적 의미가 담긴 조어)을 운영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정씨는 부산으로 압송됐다. 성매매 업소나 도박사이트 광고를 해 매월 7000만원 광고료 등 15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지난 5일 구속됐다.
낮에는 현직 법무사로 일하고 불법 음란사이트 운영자로 일탈해 온 ‘이중생활’이 백일하에 탄로 나는 순간이었다. 정씨를 수사한 경찰은 정씨의 이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가 공무원 가정 출신으로 범죄 전과도 없는 데다 고교 시절에는 전교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인천의 한 고교에서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똑똑했던 10대 시절을 보냈다. 소위 ‘스카이’(SKY)대학 의대를 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정씨는 아토피 질환이 심해 대인기피증으로 고통받았다. 결국 고3이던 2000년 학교를 중퇴하고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일정한 직업을 못 구해 한동안 무직자였다.

떼돈을 벌어 아토피로 인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었던 정씨는 2013년 법무사 자격증을 따면서 월 600만원을 벌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당시 불법 음란사이트 ‘소라넷’이 성매매 업소 광고로 억대 수입을 거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씨는 그해 6월 꿀밤 사이트를 개설하고 6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정씨는 직원들에게 음란동영상을 올리는 대가로 월 300만~500만원씩 월급을 줬다. 남자 직원(35·보험설계사)은 자신이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영상을 직접 찍어 여성 동의 없이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소라넷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소라넷 회원들이 꿀밤으로 옮겼다. 정씨는 마케팅 차원에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음란동영상을 놓고 매달 콘테스트를 열었다. 1등 상금이 200만원이나 되자 회원들은 자신의 여자친구나 아내와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을 매달 수천 건씩 올렸다. 콘테스트가 히트를 치면서 회원이 42만 명으로 급증했고, 일일 방문자 수가 50만 명에 이르는 ‘대박’을 쳤다.

이때부터 광고가 쏟아져 들어왔다. 458개 성매매 업소로부터 월 7000만원의 광고수수료를 받았다. 1년2개월 동안 15억원의 부당 수익을 거뒀다. 술과 담배조차 하지 않던 정씨는 수익의 대부분을 인맥관리에 썼다고 한다. 미혼인 정씨는 음란사이트를 키워 돈을 벌 궁리에 치중했기 때문인지 여자친구도 사귀지 않았다고 경찰이 전했다.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최호준 경위는 “지금도 아토피를 앓고 있는 정씨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음란사이트를 택했지만 정작 정씨 본인의 생활은 결벽증에 가까워 보였다”고 전했다.

정씨는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교묘하게 움직였다. 광고료를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만 받았고, 성매매 업주와의 연락은 기록이 남지 않는 텔레그램 또는 사이트 내부 쪽지만 사용했다. 회사 직원들과는 대포폰으로 연락했고, 대포통장 30~40개를 사용했다. 음란사이트 서버는 미국에 뒀다.
 
 

하지만 범죄행각의 꼬리는 결국 잡혔다. 경찰은 음란사이트 IP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씨가 운영하는 법무사 사무실이 포착됐지만 법무사라는 직업 때문에 처음엔 정씨를 용의선상에서 배제했다. 법무법인이 거래한 30여 개 대포통장 내역을 일일이 확인하던 경찰은 한 통장에서 뭉칫돈을 인출하는 정씨를 포착하고 은행 폐쇄회로TV(CCTV)를 역추적해 검거했다. 머리가 좋아서 수사망을 100% 피해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정씨는 “내가 어떻게 잡혔는지 궁금하다”며 경찰에게 계속 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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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준 경위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적발 경위를 집요하게 알려고 했던 것 같다”며 “정씨의 혐의는 최대 형량이 징역 3년에 불과하고 전례를 보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재범할 확률이 99%나 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음란사이트 프로그램을 개발한 강모(22)씨를 함께 구속하고, 나머지 직원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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